나에게 미래를 상상해보라고 한다면, 어렴풋이 <아이로봇>이라는 영화에서 그려진 2035년의 시카고 거리가 떠오른다.
화면은 걸어가고 있는 주인공의 듬직한 등을 비추고 있었다. 그를 스쳐 지나가던 수많은 사람들과 개, 그리고 그 개 줄을 끌고 가는 로봇의 모습은 인상 깊었다. 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로봇. 로봇이 우리 생활의 일상적인 한 폭에 자리 잡게 되리라는 미래의 평범한 일부가 나에게 크게 다가온 것이다. 어쩌면 미래의 그 거리를 실현시킬 주인공 중의 하나가 내가 될 수도 있기에.
나는 엔지니어가 되고 싶어 하는 지금의 진로를 한 번 더 생각해 보기 위해 도서관에 갔다.
500번대 기술과학 책들이 나열된 책꽂이 앞에서 몇 없는 엔지니어에 관한 책들 중 읽을 것을 찾았다. 그때 눈에 들어오는 책이 있었다. <교양 있는 엔지니어>. 이것이 그 책의 제목이었다. '교양 있는' 엔지니어는 특별한 무언가가 더 있을까?
과학고에 다니면서 너무 이공계 쪽으로 편협한 지식을 쌓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생물을 탐구하고 고분자에서 매력을 느끼는 자연과학 계통의 과학고 학생들도 '교양'의 일부인 인문학을 따로 공부하지 않는다. 그런데 생명력이 느껴지지 않는, 기계의 수동적인 메커니즘을 연구하는 분야의 사람들에게서의 '교양'이란 어떤 것일까? 그러나 생각과는 달리 작가인 플러먼은 건축기사로 활동하며, 엔지니어들의 세계에 대해 느낀 점을 서술했다. 그러면서도 틈틈이 교양의 완성인 인문학과 관련된 그의 견해가 제시되어 있었다.
그는 첫 장에서 자신이 엔지니어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그렸다.
대학원 때 영문학을 전공하면서 인문학을 공부할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는 것에 만족하고 후회 없는 선택이었다고 강조했다. 나는 중 2때, 일본어에 빠져버려 한참 진로를 고민했다. 지금도 엔지니어의 길과 문학 계통 직업들 사이에서 가끔 흔들린다. 그런 나에게 인문학과 공학의, 상반되는 선택을 모두 하였던 그의 용기 있는 결정은 무척 존경스러웠다. 또 그 과정을 무사히 마치고 흔치않은 공학계 책을 발간한 그의 능력에 대해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작가는 엔지니어들이 신문명을 개척하며 시대의 문화에 참여함으로써 역사의 일부에 자리를 잡고, 그 업적에 대한 책임을 질 줄 알아야 한다고 했다. 그 내용은 엔지니어가 될 나에게 후에도 긴장의 끈을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을 당부하는 말처럼 느껴졌다. 또한 실패할 경우 위험의 감수와 책임이 부가적으로 가중되어야 함을 일깨워줬다. 엔지니어는 안전을 지켜야 한다는 의무가 있고, 양심에 대한 교육이 필요함을 강조했다. 예로 프로보노라는 것을 소개하였는데, 이것은 봉사활동이면서도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일석이조의 과정인 것 같았다. '협소한 책임감을 뛰어넘는 관리자 의식을 가져라.' 인용된 웰리엄 로렌스의 말은 이러한 사회적/전문가적 엔지니어의 자세를 통틀어 표현하고 있었다.
기술적 착오로 인한 피해를 경계해야 할 사회는, 특성상 유능한 엔지니어를 선호하게 된다고 한다.
생각해보니 어떤 계기로 인해서든지, 사소한 실수로 인해 벌어지는 크고 작은 사고가 미치는 영향은 매우 크다. 또 플러먼은 챌린저 호의 사고를 예로 들며, 선택의 중요성과 실패의 관계를 부각시켰다. 전문적인 일에서, 엔지니어와 그 외 사람들 사이의 갈등에서 작용하는 여러 이해요소는 차치하고라도, 엔지니어의 의견이 가장 최우선시 되어야 할 것을 재차 강조하였다.
작가의 견해와 동감하는 부분은 인문학이 이공계에서 필요하다고 느끼고는 있으나 그리 선호되지 않음에 대한 안타까움이었다. 그는 사회에서 점점 크게 요구되는 면이 이공계학생들이 인문학을 기피하는 태도에 반해 인문학적 요소가 점점 크게 자리 잡게 될 것임을 암시하고 우려하였다. 이런 이야기들을 접할 때 마다 나는 좀 더 전반적으로 세상을 볼 줄 아는 눈을 키워나갈 수 있도록 책을 소홀히 하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하게 된다.
과학고에서 가장 놀란 것은 책에 대한 학생들의 태도였다.
과학계통 책뿐만이 아니라 소설, 수필, 자기계발서, 역사책 모두를 읽어보고 의미를 찾는 학생들이 드물었다. 나는 이공계 학생들의 결여된 무언가를 우려하는 소리에 대해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가끔 학교 선생님들께서, 과고생은 커서 인문계생의 밑에서 벌어먹고 산다는 말씀을 하신다. 한 연구기관이 조사한 바도 그러했다. 공대로 유명한 MIT의 학생들이 사회에 나와서는 하버드의 인문계생들을 상사로 두고 일하는 수치가 높다는 것이다. 그 이유가 인문학을 공부한 정도에 크게 좌우된 것이라고 하였다. 그도 그럴 것이, 나라를 이끌어가는 입법, 사법, 행정에 있어서 많은 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인문학도인 것이다. 나는 이러한 사실들을 외부에서 일깨워주는 것뿐만이 아니라, 스스로가 터득함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예상치 못한 수확으로 짧게나마 여성공학도에 대한 내용을 볼 수 있었다.
여성공학도들은 남성공학도보다 좀 더 인문계통을 자발적으로 접하고 있다고 한다. 그들의 잠재성에 대한 글쓴이의 긍정적인 시각은 막 첫발을 떼려고 하는 나에게 훈훈하게 다가왔다.
나는 엔지니어의 길을 걷고 있는 무수한 사람 중 하나이다.
특히 로봇 인공지능이란 분야를 위해 전자공학, 물리 뿐 아니라 심리학과 정신에 관한 과학, 철학적 책을 많이 읽고 있다. 그 과정에서 알게 된 인문학의 가치는 매우 소중한 것이었다. 교양 있는 엔지니어를 통해 엔지니어의 능력, 속성, 역사, 가치관, 의무, 사회적 위치, 그들을 위한 커리큘럼, 더불어 그들 중 일부는 자각하지 못하는 이공계에서의 인문학의 필요성까지 모두 알 수 있었다.
나는 이미 한 사람의 엔지니어이지 않을까?
엔지니어는 끈기와 노력이 필수이며, 달성한 일에 대한 마땅한 책임과 의무가 부여된다. 또한 독립성, 독창성이 요구되고, 공학에 대한 친밀감과 신념이 있어야 한다.
그것을 알고 있고 기꺼이 받아들일 줄 아는 나는 이미 엔지니어인 것이라 생각한다.
나의 길 위에 서서, 그곳으로 향하는 한걸음 한걸음 속에서 '교양있는 엔지니어'를 그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