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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영 변호사 Feb 22. 2024

사기죄 성립 여부는 ‘ 행위 당시’를 기준으로 판단

대법원 2016. 4. 28. 선고 2012도14516 판결

【판시사항】

사기죄가 성립하는지 판단하는 기준 시점(=행위 당시) 및 차주가 돈을 빌릴 당시에 변제할 의사와 능력을 가지고 있었으나 그 후 변제하지 않고 있는 경우, 사기죄가 성립하는지 여부(소극) / 대주가 장래의 변제 지체 또는 변제불능에 대한 위험을 예상하고 있었거나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경우, 차주가 그 후 제대로 변제하지 못하였다는 사실만으로 변제능력에 관하여 대주를 기망하였다거나 차주에게 편취의 범의가 있었다고 단정할 수 있는지 여부(원칙적 소극)


【판결요지】


사기죄가 성립하는지행위 당시를 기준으로 판단하여야 하므로, 소비대차 거래에서 차주가 돈을 빌릴 당시에는 변제할 의사와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면 비록 그 후에 변제하지 않고 있더라도 이는 민사상 채무불이행에 불과하며 형사상 사기죄가 성립하지는 아니한다.
따라서 소비대차 거래에서, 대주와 차주 사이의 친척·친지와 같은 인적 관계 및 계속적인 거래 관계 등에 의하여 대주가 차주의 신용 상태를 인식하고 있어 장래의 변제 지체 또는 변제불능에 대한 위험을 예상하고 있었거나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경우에는, 차주가 차용 당시 구체적인 변제의사, 변제능력, 차용 조건 등과 관련하여 소비대차 여부를 결정지을 수 있는 중요한 사항에 관하여 허위 사실을 말하였다는 등의 다른 사정이 없다면, 차주가 그 후 제대로 변제하지 못하였다는 사실만을 가지고 변제능력에 관하여 대주를 기망하였다거나 차주에게 편취의 범의가 있었다고 단정할 수 없다.



【주 문】


원심판결 중 유죄 부분을 파기하고, 이 부분 사건을 인천지방법원 본원 합의부에 환송한다.


【이 유】


상고이유를 판단한다.
1.  사기죄타인을 기망하여 착오에 빠뜨리고 그 처분행위를 유발하여 재물을 교부받거나 재산상 이익을 얻음으로써 성립하는 것으로서, 기망, 착오, 재산적 처분행위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어야 한다(대법원 2000. 6. 27. 선고 2000도1155 판결 등 참조). 어떠한 행위가 타인을 착오에 빠지게 한 기망행위에 해당하는지 및 그러한 기망행위와 재산적 처분행위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는지 여부는 거래의 상황, 상대방의 지식, 성격, 경험, 직업 등 행위 당시의 구체적 사정을 고려하여 일반적·객관적으로 판단하여야 한다(대법원 1988. 3. 8. 선고 87도1872 판결 등 참조). 또한 이러한 기망행위에 대한 고의로서 편취의 범의는, 피고인이 자백하지 아니하는 한, 범행 전후의 피고인의 재력, 환경, 범행의 내용, 거래의 이행과정, 피해자와의 관계 등과 같은 객관적인 사정을 종합하여 판단하여야 한다(대법원 1996. 3. 26. 선고 95도3034 판결 참조).


그리고 위와 같은 요건들을 갖추어 사기죄가 성립하는지 여부는 그 행위 당시를 기준으로 판단하여야 하므로, 소비대차 거래에서 차주가 돈을 빌릴 당시에는 변제할 의사와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면 비록 그 후에 변제하지 않고 있다 하더라도 이는 민사상의 채무불이행에 불과하며 형사상 사기죄가 성립하지는 아니한다.
따라서 소비대차 거래에서, 대주와 차주 사이의 친척·친지와 같은 인적 관계 및 계속적인 거래 관계 등에 의하여 대주가 차주의 신용 상태를 인식하고 있어 장래의 변제 지체 또는 변제불능에 대한 위험을 예상하고 있었거나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경우에는, 차주가 차용 당시 구체적인 변제의사, 변제능력, 차용 조건 등과 관련하여 소비대차 여부를 결정지을 수 있는 중요한 사항에 관하여 허위 사실을 말하였다는 등의 다른 사정이 없다면, 차주가 그 후 제대로 변제하지 못하였다는 사실만을 가지고 변제능력에 관하여 대주를 기망하였다거나 차주에게 편취의 범의가 있었다고 단정할 수 없다.


한편 형사재판에서 유죄의 인정은 법관으로 하여금 합리적인 의심을 할 여지가 없을 정도로 공소사실이 진정하다는 확신을 가지게 할 수 있는 증명력을 가진 증거에 의하여야 하며, 이와 같은 증명이 없다면 설령 피고인에게 유죄의 의심이 간다고 하더라도 유죄로 판단할 수는 없다(대법원 2001. 8. 21. 선고 2001도2823 판결, 대법원 2006. 3. 9. 선고 2005도8675 판결 등 참조). 또한 형사항소심은 속심이면서도 사후심으로서의 성격을 가지고 있는 점과 아울러 형사소송법에서 정한 실질적 직접심리주의의 정신 등에 비추어 볼 때, 제1심이 증인신문 등의 증거조사 절차를 거친 후에 합리적인 의심을 배제할 만한 증명이 부족하다고 보아 공소사실을 무죄로 판단한 경우에, 항소심의 심리 결과 일부 반대되는 사실에 관한 개연성 또는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하더라도 제1심이 일으킨 합리적인 의심을 충분히 해소할 수 있을 정도에까지 이르지 아니한다면 그와 같은 사정만으로 범죄의 증명이 부족하다는 제1심의 판단에 사실오인의 위법이 있다고 단정하여 공소사실을 유죄로 인정하여서는 아니 된다(대법원 2016. 2. 18. 선고 2015도11428 판결 참조).
 
2.  원심판결 중 유죄 부분에 관한 공소사실의 요지는, 피고인이 2002년 8월경 약 3,000만 원 내지 4,000만 원 상당의 채무를 부담하고 있는 반면 특별한 재산이 없어 피해자로부터 돈을 빌리더라도 변제할 의사나 능력이 없었음에도, 2002. 8. 11. 피해자에게 “2,000만 원을 빌려주면 원금과 이자를 틀림없이 변제하겠다.”고 거짓말하여 이에 속은 피해자로부터 그 자리에서 차용금 명목으로 2,000만 원을 교부받아 이를 편취하였다는 것이다.
 
3.  그런데 원심판결 이유와 기록에 의하면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 수 있다.
가.  피고인은 1998년경 보험설계사로 일하던 중 피해자를 알게 되어 서로 친하게 지내 왔다.
 
나.  피고인은 2000년 가을경 의류사업을 시작하였으나 사업이 잘되지 아니하여 2001년경부터 피해자의 신용카드를 이용하여 현금서비스를 받고 그 카드대금을 피해자에게 지급하는 방식으로 피해자와 반복적으로 금전거래를 하면서 2001. 1. 29.부터 2002. 7. 26.까지 피해자의 KB 국민은행 계좌로 13회에 걸쳐 합계 20,874,993원을 송금하였으나 카드대금 전부를 변제하지는 못하였다.
 
다.  피해자는 피고인이 카드대금을 변제하지 못하자 이른바 돌려막기 형식으로 다른 신용카드를 이용하여 기존의 카드대금을 변제하여 왔고, 그 과정에서 피고인은 위 연체된 카드대금의 변제에 사용하기 위하여 2002. 8. 11. 피해자로부터 2,000만 원을 차용하면서 피해자에게 월 3부 이자를 지급하기로 약정하였다. 위 차용 무렵 피고인은 채권최고액 6,000만 원의 근저당권이 설정되어 있는 아파트와 자동차를 소유하고 있었고, 의류사업 영업이 잘되지 아니하여 2003년 1월경 위 사업을 그만두기는 하였으나 그 전후로 보험설계사로서의 영업은 계속적으로 해 왔다.
 
라.  한편 피고인은 차용일 이후인 2002. 8. 27.부터 2004. 3. 5.까지 피해자의 계좌로 48회에 걸쳐 합계 61,063,965원을 송금해 주었는데, 그중 2002. 9. 27.자 690,000원, 2002. 11. 11.자 600,000원, 2002. 12. 10.자 600,000원, 2003. 1. 21.자 600,000원, 2003. 2. 11.자 600,000원, 2003. 3. 10.자 600,000원, 2003. 4. 10.자 600,000원, 2003. 4. 29.자 600,000원은 차용금 2,000만 원에 대한 월 3부 상당의 이자 명목으로 송금한 것으로 보인다.
 
마.  이후 피고인은 2004년 2월경 피해자로부터 그동안 밀린 카드대금과 위 차용금 등에 대한 변제를 약속하는 의미에서 약속어음을 작성해 달라는 요구를 받고 금액 3,500만 원으로 된 약속어음을 작성해 주었고, 이와 함께 2004. 2. 3. 피고인 소유의 위 아파트에 관하여 채무자 피고인, 근저당권자 피해자, 채권최고액 3,500만 원으로 된 2순위 근저당권을 설정해 주기도 하였다.
 
바.  피해자는 2006. 8. 10. 피고인이 위 카드대금과 위 차용금 등을 변제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피고인을 사기죄로 고소하였고, 피고인은 체포영장에 의해 체포된 다음 날인 2007. 5. 13. 남편 공소외 1과 딸 공소외 2의 연대보증 아래 피해자에게 47,944,570원을 지급하기로 약속하는 내용의 지불각서를 작성해 주었으며, 피해자는 위 지불각서에 기해 피고인, 공소외 1, 공소외 2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여 2011. 10. 11. 승소판결을 받았고 위 판결은 그 무렵 그대로 확정되었다.
 
4.  위 사실관계와 기록에 의하면 아래와 같이 판단된다.
피고인은 2001. 1. 29.부터 2004. 3. 5.까지 이 사건 차용금의 약 4배에 이르는 81,938,958원을 카드대금 등의 변제 명목으로 피해자에게 지급하였을 뿐 아니라, 의류사업이나 보험설계사로서의 영업을 하면서 지속적으로 소득을 얻고 있었으며, 이 사건 차용일 이후 비교적 꾸준하게 월 60만 원 상당의 약정이자를 지급해 온 사정 등에 비추어 볼 때, 비록 피고인이 지금에 와서 위 돈의 차용 사실 자체를 부인하고 있다 하더라도, 차용 당시 차용금 2,000만 원을 변제할 의사나 능력이 없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그리고 피해자는 피고인과 계속하여 여러 차례의 금전거래를 하는 동안, 피고인의 카드대금 연체 사실은 물론 그 자금 사정까지 잘 알고 있었다고 보이므로, 피해자는 이 사건 차용 당시 피고인의 자금능력이 충분하지 아니하여 변제기에 변제가 어려울 수 있다는 위험을 예상하고 있었거나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고 보이며, 또한 피고인이 그 당시 변제능력이나 변제의사 등에 관하여 허위 사실을 말하였다는 등의 적극적인 기망행위가 있었음을 인정할 증거는 없다.

위와 같은 사정들을 앞에서 본 법리에 비추어 살펴보면, 피고인이 이 사건 차용 당시 차용금을 변제할 의사나 능력이 없었음에도 피해자에 대하여 거짓말을 하여 돈을 편취할 고의가 있었다고 단정하기 어려우므로 그에 대한 증명이 부족하다는 취지의 제1심의 판단은 합리적 의심에 기초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원심이 판시한 것과 같이 피고인이 이 사건 차용 후 의류사업을 그만두었고 이른바 ‘카드 돌려막기’ 방법으로 채무를 변제하는 등 이 사건 차용 당시 변제 자력이 충분하지 아니하였으며 이 사건 차용금을 변제하지 못하였다는 사정을 참작하더라도, 그 사정들만을 가지고 제1심이 일으킨 위와 같은 합리적인 의심을 충분히 해소할 수 있다고 보기 어렵다.
 
5.  그럼에도 이와 달리 원심은 이 부분 공소사실에 대하여 범죄의 증명이 부족하다는 제1심의 판단이 위법하다고 인정하기에 충분하지 아니한 판시와 같은 이유만을 들어 피고인에게 편취의 범의가 있었다고 단정하고 이를 유죄로 인정하고 말았다. 따라서 이러한 원심판결에는 사기죄의 기망행위, 착오, 인과관계, 편취 범의와 유죄 인정에 필요한 증명의 정도 및 사후심으로서의 항소심의 심리·재판 등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여 판결에 영향을 미친 위법이 있다.
 
6.  그러므로 원심판결 중 유죄 부분을 파기하고 이 부분 사건을 다시 심리·판단하게 하기 위하여 원심법원에 환송하기로 하여, 관여 대법관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대법관 이기택(재판장) 이인복 김용덕(주심) 김소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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