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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영 변호사 Jun 08. 2024

이해할 수 있었던 거짓말, 그리고 안타까움

필자는 형사법정에서 피고인들을 변론하면서, 자신이 살기 위하여 남을 죽일 수도 있는 거짓말을 하는 수많은 사람들을 목격하게 되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무고한 사람들을 범죄자로 만들어버리거나,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타인에게 뒤집어 씌우는 수많은 거짓말들을 마주할 때마다 화가 나고 불편했다.


필자가 형사법정에서 경험한 대부분의 거짓말들이 이해하기 어렵고 불편했던 거짓말들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그 거짓말 자체는 잘못이지만, 그와 같은 거짓말을 하게 된 피고인의 심정은 이해할 수 있는 사건들도 있었다.


필자의 기억에 남아있는 사건은, 2014년경 필자가 수원지법 국선전담변호사로 근무하면서 맡았던 항소심 사건이었다.

(형사재판은 3심까지 받을 수 있다. 위 사건은 1심에서 피고인에게 유죄가 선고되었고, 피고인이 항소하여 2심으로 올라온 사건이었다.)


그 피고인은 1심에서 억울함을 호소하며 무죄를 강력하게 주장했다.

여러 명의 증인들을 불러 증인 신문을 진행하면서 오랜 시간 동안 재판을 받았지만, 결국 유죄가 선고되어 1심 판결선고일에 법정구속되어 구치소에 수감된 상태였다.


필자는 사건기록을 검토한 후, 1심에서 강력하게 무죄를 주장했던 피고인이기에 항소심에서도 무죄를 주장할 것이라고 예상하고 구치소로 접견을 갔다.


그런데, 강력하게 무죄를 주장할 것이라는 필자의 예상과 달리 그 피고인은,

범죄사실을 인정하고 형량만 다투겠습니다.

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1심에서는 억울함을 호소하며 무죄를 주장했던 피고인이 항소심에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이유가 궁금했다.


피고인은 말했다.


“변호사님, 제가 1심에서 공소사실을 인정할 수 없었던 이유는 그때 아내가 이혼하자고 하는 상황이었는데 제가 범죄를 저질렀다고 인정하면 이혼을 당해야 해서 공소사실을 인정할 수 없었습니다.
이혼해서 혼자 남게 되는 것이 두려웠습니다.

그런데 1심 재판도중에 이혼도 했고
유죄가 선고되어 구속도 되었으니
이제 제가 붙잡아야 할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제 잘못을 모두 인정합니다.
그냥 형량이 몇 개월이라도 줄어들었으면 좋겠습니다"


아~ 그랬구나


그 피고인이 거짓으로 억울함을 호소했던 이유는

혼자 남는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다.


필자는 피고인들을 변론할 때, 필자가 그 피고인이 되어 본다. 필자 스스로 필자의 변론을 받는 그 피고인이 되어보면, 피고인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었다.


이 사건에서도 필자가 피고인이 되어보니,

마치 벼랑 끝에 서 있는 것 같은 피고인의 절박한 두려움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아내가 이혼을 요구하는 상황에서 범죄사실을 인정하면, 형사 처벌도 받고, 이혼을 당해 혼자 남겨지게 될 테니 모든 것이 두려웠을 것이다.


피고인은 자신이 살기 위하여 공소사실을 인정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거짓은 진실을 이길 수 없다.

거짓으로 억울함을 호소하더라도 결국 재판과정에서 실체진실이 밝혀질 수밖에 없다.


또한, 냉정하게 생각해 보면, 형사처벌을 받게 된 상황도,

아내가 이혼을 요구하는 상황도,

모두 피고인 자신이 뿌린 씨앗이 결과로 나타난 것이리라.




그 피고인이 거짓말을 하게 된 두려움은 이해할 수 있었지만,

그 피고인은 자신이 뿌린 씨앗에 대한 대가는 치러야 했다.


안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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