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고인들의 억울함
“변호사가 검사입니까!
변호사가 피고인 말을 들어줘야지
왜 나한테만 잘못했다고 합니까!”
필자가
처음 국선전담변호사가 되어 피고인들을 변론할 때,
피고인들로부터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다.
변호인은
재판 준비를 위하여 피고인을 접견해야 한다.
피고인을 접견하는 과정에서
피고인에게 공소사실이 사실인지를 물어봐서
공소사실을 인정할 것인지 부인할 것인지를 결정해야 한다.
공소사실 기재 내용이 사실이라면(범죄의 구성요건에 해당하면), 위법성조각사유나 책임조각사유가 존재한다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피고인은 공소사실을 인정하고 형사처벌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피고인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피고인에게도 자신이 그 행동을 하게 된 억울한 사정이 있었다.
그런데 경찰, 검찰에서는 피고인의 억울한 부분을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피고인의 행위가 범죄의 구성요건에 해당하는지 여부만 물어보니 억울했던 것이다.
(사실, 피고인들에게 억울한 사정이 있더라도 그 사유들은 대부분 공소사실을 부인해야 할 사유는 아닌 경우가 많다. 그래도 피고인들은 억울하다.)
경찰, 검찰에서도 자신의 얘기는 들어주지 않고 피고인에게 잘못했다고만 했기에, 피고인들은 자신의 입장을 들어주는 사람이 없어서 억울한 것이었다.
그렇게 기소가 돼서 형사재판을 받게 되고 피고인을 변호해 준다는 변호사를 만난 것이다.
피고인들은 아마도,
변호사는 피고인을 변론하는 사람이니,
이제는 내 말을 들어줄 사람을 만나는구나’
라고 생각했으리라.
그런데, 변호사를 만났더니 변호사도 자신의 억울한 부분을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수사기관과 마찬가지로 피고인이 공소사실을 범했는지 여부를 먼저 확인하니, 피고인으로서는 변호사까지 자신의 억울함을 들어주지 않는다는 생각에 화가 나는 것이었다.
이와 같은 이유로 피고인들이
공소사실 인정여부를 먼저 물어보는 필자에게,
“변호사가 검사입니까!
변호사가 피고인 말을 들어줘야지
왜 나한테만 잘못했다고 합니까!”
라는 말을 한 것이었다.
필자는 피고인들을 처음 변론하기 시작할 때는, 피고인들의 이런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서 피고인들을 접견할 때 피고인에게 공소사실 인정여부를 먼저 물어보았었다.
점점 피고인들을 변론하는 시간들이 길어지면서 피고인들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었다.
피고인들의 입장을 이해하게 된 후부터,
피고인들의 억울한 마음을 먼저 들어주고, 그 부분을 의견서로 작성해서 마음을 풀어줬다.
그렇게 피고인이 변호인을 신뢰하게 된 후에,
증거기록을 보여주면서 피고인들에게 공소사실 인정여부에 대해 확인했다.
처음부터 피고인들에게 공소사실 인정여부를 확인했을 때는
공소사실을 인정하는 피고인들보다, 공소사실을 부인하는 피고인들이 많았다.
하지만.
필자가 피고인들의 억울한 마음을 짚어주고 이해해 준 후에 피고인들에게 공소사실 인정여부를 확인한 후부터는,
공소사실을 인정하는 피고인들이 많아졌다.
그리고 언젠가부터 피고인들로부터
“변호사가 검사입니까!”라는 말을 듣지 않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