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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영 변호사 Jun 13. 2024

사형수 변론의 기억

사형집행을 하지 않음은 누구를 위함인가?

사형은 한 사람의 생명을 박탈하는 형벌이다.


사형은 한 사람의 존재가 사라져 버리는 형벌이기에 사형이라는 단어는 마음을 무겁게 한다.

생명을 이미 박탈당한 피해자가 존재하고, 또한 새롭게 생명을 박탈하는 사형이라는 형벌은 모두 그 무게가 무겁기에,

필자로서는 사형제도가 존재해야 하는지, 폐지해야 하는지에 대해 어떤 강력한 의견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니다.


다만, 필자는 2014년경 수원지방법원 국선전담변호사로 근무할 당시에 사형선고를 받은 피고인을 변론하면서,


사형을 선고했는데 사형을 집행하지 않는 것은
누구를 위한 것일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필자는 공무집행방해로 1심에서 벌금형이 선고되고 피고인이 항소한 사건의 항소심 국선변호인으로 선정되었다.

증거기록(범죄경력조회결과서 등)을 확인하면서 위 피고인이 2명의 피해자들을 살해하고 1명의 피해자를 살해하려다가 미수에 그쳐 사형 선고를 받은 피고인임을 알게 되었다.


위 피고인에 대한 범죄경력조회결과서에는 사형선고 이후에도 폭행, 모욕, 공무집행방해 등의 벌금형 전과가 다수 기재되어 있었다,

우리나라는 1998년 이후 현재까지 사형집행이 중단된 상태이기에 위 피고인은 오랜 기간 동안 사형이 집행되지 않아 서울구치소에 수감된 상태에서, 다른 사람을 폭행하거나 모욕하고, 교도관등 공무원을 폭행 또는 협박하는 행위를 하여 계속적으로 벌금형 전과가 생기고 있는 것이었다.


판결이 확정된 수감자들(기결수)은 교도소로 이감되지만,

사형수의 경우는 구치소에 수감되어 있다가 사형이 집행되므로 교도소로 이감되지 않고 계속 구치소에 수감되어 있다.

위 피고인 역시 사형이 선고되어  확정되었지만 사형수이기에 교도소가 아닌 서울구치소에 수감되어 있었다.



필자는 서울구치소로 가 위 피고인을 접견했다.

피고인에게 물었다.


왜 그러셨습니까?


피고인은 말했다.


구치소에서는 술도 못 마시고 담배도 못 피고
규칙적인 생활을 하고 운동도 해서
건강이 나빠질 리가 없는데, 자꾸 몸이 아파요.

몸이 아픈 이유는
구치소에서 나에게 약물을 주입하기 때문입니다.

나는 사형수이기 때문에
언제 죽을지 모르는 사람이라서
구치소에서 나를 마루타처럼 이용하고 있어서
몸이 아픈 거예요.

공무집행방해행위를 한 이유는
나를 마루타로 이용하기 때문에
교도관을 폭행한 거예요.



피고인은

사형을 선고받고 사형집행을 하지 않으니, 자신이 어차피 사형을 당할 사형수이기 깨문에 구치소에서 자신을 마루타처럼 이용하여 약물을 주입시키는 실험을 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었다.


피고인은 자신의 몸에 약물을 주입했는지 여부를 확인하기 위하여 ‘신체감정’을 신청해 달라고 했다.


그 피고인은 사형을 선고받았는데 사형집행을 하지 않으니 마음이 불안하여 정신적으로 힘겨운 상황을 겪고 있는 것 같았다.


생각해 보면, 그 피고인은 2명을 살해하였고, 1명을 더 살해하려 했지만 미수에 그쳤는 바, 그 피고인으로 인해 2명은 목숨을 잃었고, 1명은 중한 상해를 입은 것이다.

또한, 사형을 선고받은 후에도 그 피고인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폭행을 당하거나 모욕을 당했다.


결국 그 피고인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목숨을 잃거나 육체적 정신적 피해를 입고 있었다.



또한, 사형수였던 피고인 입장에서도

사형이 선고되었지만 집행이 되지 않기에 언제라도 사형이 집행될 수 있다는 불안감이 압박했을 것이다.

피고인은 자신을 마루타로 사용할 수 있다는 불안감으로 인해 극심한 정신적 고통을 받고 있는 것이었다.


사형선고를 받고 집행을 기다리는 사형수들 중에는 자살한 사형수들도 있다.


사형제 폐지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생명권 등 인권을 그 근거로 제시한다.

과연 그 인권은 누구를 위한 인권인가?
사형을 선고했는데 사형을 집행하지 않는 것은
누구를 위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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