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지금도 가끔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필자가 수원에서 국선전담변호사로 근무할 당시에 목격했던, 아들을 끈에 묶고 걸어가던 아버지와 아들의 모습이다.
필자가 근무하던 사무실은 수원 월드컵경기장에서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있었다.
월드컵 경기장에는 운동을 위해 걷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필자가 출근을 위해 필자의 승용차를 타고 사무실로 갈 때마다,
아버지가 10대 초반의 청소년인 아들을 끈에 묶고 월드컵 경기장 쪽으로 걸어가는 모습을 목격하곤 했다.
그 아버지는 항상 필자가 출근하는 시간쯤인 아침시간에
아들의 몸을 끈으로 묶고 월드컵 경기장 쪽으로 걸어가곤 했다.
그 모습은 필자가 수원에서 국선전담변호사로 근무하는 6년 동안 계속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왜 아들이 제대로 걷지도 못하게
끈으로 묶어서 끌고 가고 있을까?,
저렇게 아들을 끈으로 묶어서 끌고 가도 되는 걸까?
경찰에 신고해야 하나?’
처음 국선전담변호사로 근무할 당시에
출근시간마다 끈에 아들을 묶고 걸어가는 아버지를 보면서, 필자는 혼자 여러 가지 생각을 했었다.
그렇게 몇 년의 시간이 지났다.
피고인들을 변론하는 시간이 늘어가면서
국선 전담변호사로 근무하기 전에는 필자가 알지 못했던 사실들을 알게 되었고, 보이지 않던 것도 보이게 되었다.
아들을 끈에 묶고 걸어가는 아버지를 보는 필자의 시각도 변했다.
한눈에 봐도 아들이 정상적이지 못한 것으로 보였다.
너무 마르고 걷는 모습도 평범하지 않았다.
신체적으로 장애가 있거나 정신적으로 아픈 상태인 것처럼 보였다.
아마도 아버지가 아들의 몸을 끈으로 묶지 않으면
아들은 혼자 걷다가 차도로 걸어갈 수도 있고,
아버지와 떨어져 길을 잃어버릴 수도 있는 등
위험한 상황에 처하게 될 가능성이 클 것 같았다.
또한 아버지와 아들임을 알 수 있을 정도로 아버지와 아들이 닮아 았었다.
아버지와 아들 모두 키가 크고 뼈가 드러날 정도로 너무 야윈 체형이었다.
그런데 그래도 아버지가 아들보다 육체적이나 정신적인 면에서 더 건강해 보였다.
아버지에 비해 아들은 뭔가 위태로워 보이는 모습이었다,
국선전담변호사로 근무하던 초기에는
아버지가 아들을 끈으로 묶은 것이 ‘문제가 있는 행동’인 것처럼 보였지만 ,
시간이 지나면서
아버지가 아들을 끈으로 묶은 이유가 오히려 ‘아들을 보호하기 위함’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사람들 눈에는 문제 있는 행동으로 보일 수도 있고, 더 안전한 방법도 있었겠지만,
아마도 아버지가 처한 여러 가지 여건에서는 아버지가 할 수 있는 최선의 행동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또한, 매일 아침 아들을 데리고 월드컵 경기장 쪽으로 걸어가는 이유도
아들을 치료하기 위해 걷기 운동을 시키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처음에는 위태롭게 걸어가던 아들은
(여전히 끈에 묶인 채로 걷고 있었지만)
몇 년이 지나자 처음 필자가 목격했을 당시보다 훨씬 더 안정적으로 걷고 있었다.
필자가 차에서 내려서 그 아버지에게 물어본 적도,
어떠한 방법으로도 사실확인을 하지도 않았기에
아직도 그 아버지가 아들을 끈으로 묶고 걸어가는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다.
다만,
시간이 지날수록 아들이 걷는 모습이 안정적으로 변한 것에 비추어보면,
어쩌면 아버지 나름의 방법으로 아들에게 걷는 운동을 시키며 아들을 치료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거의 매일 아침마다
아들을 끈에 묶고 걷고 있던 그 아버지의 모습이
지금도 가끔씩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