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말씀 辯)호(보호할 護)
그 피고인은 저혈당 증세가 심하여
기절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사건당일 오전에도
저혈당 증세로 기절하여 응급실로 실려갔는데
피고인은 입원을 원했지만 입원을 거절당했다.
피고인이 기억하는 사건당시의 상황은
병원에서 나와 종로를 걸어 다니다가
또다시 저혈당 증상이 나타났고,
본능적으로 살기 위하여 식당 앞에 있는 음식물인지 쓰레기인지를 정신없이 주워 먹다가 구토를 했다,
스스로 위험을 느낀 피고인은
도움을 요청하기 위하여 112에 신고했다.
그 후에 누군가가 피고인의 몸에 올라 타 목을 조르는 느낌이 들었다.
피고인으로서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목을 조르는 시람을 폭행했다.
그 후 또 정신을 잃었다.
피고인은 누군가 피고인의 목을 조른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피고인이 112에 신고하여 경찰이 충돌했던 것이었다.
출동한 경찰관이 피고인을 깨우려 한 것이었고, 피고인은 그 경찰관을 폭행한 것이었다.
결국 피고인은 공무집행방해라는 죄명으로 처벌받았다.
위 피고인은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아 구속된 상태로 항소를 했고,
필자가 위 피고인의 항소심 국선변호인으로 선정되었다.
필자는 위 피고인의 기록을 검토하면서
피고인의 두려움과 불안함을 느낄 수 있었다,
피고인은 고시원에 혼자 살고 있었다.
아픈 자신을 돌봐줄 사람이 없는 것이
무서웠을 것이다.
혼자 사망해도 아무도 모르는 건 아닌지…
아픈 자신이 혼자인 사실도 두려웠을 것이다.
아픈 피고인에게 자기 보호 본능은 더욱 강해졌을 것이다.
그 피고인에게는
1) 저혈당 증세로 인한 쇼크,
2) 혼자이기에 아픈 자신을 돌봐줄 사람이 없다는 불안함
3) 스스로 자기 자신을 보호해야 한다는 강박 등이 내재해 있었고,
이 모든 요소가 결합되어 공무집행방해라는 행위를 하게 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필자는 구치소에서 피고인을 접견하면서
위와 같은 피고인의 불안함 등을 짚어주고 위로해 줬다.
그리고 출소 후에는 치료를 받아
지금과 같은 범죄를 저지르지 마시라고 당부했다.
피고인은 구치소에서 접견을 마치고 돌아가면서도 계속 뒤돌아보며
필자를 향해 고개 숙여 인사하기를 반복했다.
그리고 위 피고인의 항소심 공판기일이 되었다.
위 피고인은 항소심 법정에서 최후진술을 하면서
울먹이는 목소리로 필자의 이름을 부르며,
“김혜영 변호사님, 감사합니다!”
라고 큰소리로 외쳤다.
피고인이 최후진술을 하며
재판부에 감사를 표현하는 것은 흔한 일이다.
하지만, 변호인 이름을 부르며 감사를 표시하는 경우는 필자 역시 처음경험했기에,
그 순간 판사님들도, 검사님도, 변호인석에 앉아 있던 필자 역시 많이 당황했던 기억이 있다.
그날의 기억은 강렬했지만. 필자는 항상 100건 이상의 사건을 변론해야 하는 상황이었기에 하루하루 변론준비와 재판으로 평상시와 다름없는 하루를 보내면서 그 피고인 사건에 대해 잊힐 쯤이었다.
그날도 재판을 마치고 사무실로 돌아왔는데, 책상 위에 메모가 붙어있었다.
“건강하게 출소했습니다.
감사합니다.”
그 피고인은 재판정에서도 필자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는데,
항소심에서 항소가 기각되어 형량이 줄어들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형기를 마치고 출소하면서 필자의 사무실로 전화하여 메모를 남겨놓았다.
형사변호인은 범죄를 저지른 피고인들을 변호해야 한다.
그런데, 잘못한 사람을 변호하는 일은 생각보다 더 힘든 일이었던 것 같다.
(잘못한 사람에게 "잘못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위치가 부러운 적도 많았다.)
변호사가 피고인을 변호한다고 해도
있었던 일을 없게 만들어 줄 수도,
없었던 일을 있게 만들어 줄 수도 없을 것이다.
변호를 한자 그대로 직역하면
(말씀 辯, 보호할 護)
말로 보호해 주는 것이라고 직역할 수 있을 것이다.
필자가 생각하는 형사변호인의 역할은,
있는 사실관계를 바탕으로
피고인이 가장 유리한 판단을 받을 수 있도록 법률적 도움을 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법률적 도움과 함께 변호인이 피고인의 입장이 되어
피고인도 미처 깨닫지 못했던 피고인의 마음을 피고인에게 설명해 주고
그 불안한 마음을 짚어주고 위로를 건네주고
재범방지를 위한 조언을 해주면
피고인을 말로 보호해 주는 변호를 한 것이 아닐까?
필자가 12년 동안 국선전담변호사로 근무하는 동안 수도 없이 들었던 질문인,
“나쁜 사람들을 어떻게 변호하나요? ”
라는 물음에 대한 대답이 될지 모르겠지만,
필자는 그렇게 잘못을 저지른 피고인들을 변호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