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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사변호인의 의미 찾기

지나간 일은 바뀌지 않는데 왜 변호를 할까?

by 김혜영 변호사

형사사건 중에는 변호인의 노력으로 결과가 바뀔 수 있는 사건도 있지만,

변호인이 변론을 열심히 하더라도 결과가 바뀌지 않는 사건들도 많이 있다.


변호인의 변론이 있었던 일을 없었던 일로 만들거나 없었던 일을 있었던 일로 만들 수는 없기 때문이다.

특히 1심에서 유죄가 선고되어 피고인이 항소한 사건의 경우에는, 항소심에서 1심과 다른 사정이 없다면 항소가 기각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변호인이 아무리 열심히 항소이유서를 작성해 준다고 해도 결과는 바뀌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국선전담변호사로서 12년 동안

슈천명의 피고인들을 변론하는 일을 직업으로 가졌던 필자에게

수도 없이 찾아오는 의문이 있었다.

‘내 변호가 무슨 의미가 있는 걸까?‘



지나간 일은 바뀌지 않는데 왜 변호를 할까?

그 변호가 과연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



(물론, 이론상 피고인들의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를 실현하여, 피고인의 인권을 보장하고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보장해 주며, 인간의 불완전성에 대한 제도적 보완책이 되고 있다는 등의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필자는 피고인들로부터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듣고,

왜 그와 같은 행동을 하게 되었는지 이해하려 애썼고,

피고인들의 입장이 되어 그와 같은 행동을 하게 된 경위를 재판부에 알리려고 애썼다.


그렇게 사건을 파악하고 피고인들에게 진심을 담아 작성한 의견서를 전달했다.

피고인들은 필자가 건넨 의견서를 읽고는, 감사 편지 등의 여러 가지 방법으로 감사의 미음을 보내줬다.

피고인들로부터 감사의 인사를 받는 일이 많아지면서

필자의 변론이
삶에 지친 피고인들의 마음에 위로가 된다면
그래도 의미가 있지 않을까 ’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피고인들의 삶은 고단하고 피곤한 경우가 많았다.


누구라도 피곤하고 힘들 때는

좋은 마음을 내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누군가로부터 감사한 마음을 받았을 때

나도 또 다른 누군가에게

좋은 마음을 낼 수 있을 것이다.

필자가 아무리 열심히 변론하더라도

지나간 일은 바뀌지 않기 때문에

피고인의 행위에 따른 선고결과를 바꿀 수는 없었다.

필자의 변호가 비록 선고결과를 바꿀 수는 없었지만,

필자가 진심을 다해 변론을 하면,
피고인들의 마음에 위로를 줄 수는 있었다.

그 위로가 피고인들의 현재와 미래에
조금이라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면,

비록 재판결과에는 영향을 주지 못하더라도
그래도 필자의 변호에 의미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범죄를 저질러 형사재판을 받는 피고인들을 변론하는 일이 직업이었던 필자는

그렇게 나름대로 필자가 가진 직업의 의미를 찾았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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