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 되어준 ‘산’. 고속도로 위에서 배운 계절

by 김혜영 변호사

오랫동안 내게 '산'은 정복해야 할 대상이자 고통스러운 과정의 은유였다.

4년의 고시 공부라는 산을 넘으니 사법연수원이라는 더 큰 산이 나타났고,

변호사가 된 후에는 매일같이 깎아지른 절벽 같은 사건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게 산은 즐기는 곳이 아니라, 숨 가쁘게 넘어야만 하는 과제였다. 그래서 산이 눈에 들어올 리 없었다.


하지만 2018년 여름, 어머니의 사고와 함께 나의 삶이 송두리째 흔들리던 그때부터 산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내게 다가왔다.


하루살이의 일요일

주 5일 재판을 하며 백 여 건의 사건을 짊어진 국선전담변호사에게 슬퍼할 여유조차 사치였다.

나는 그저 오늘 하루를 버티기 위해 아침 6시마다 기계적으로 운동을 하고 샤워를 하는 '루틴으로 하루하루를 버텨내는 하루살이' 같았다. 유일하게 병실의 어머니를 뵐 수 있는 일요일, 나는 고속도로를 달렸다.

고속도로를 달리던 내 차 안은, 세상으로부터 단절된, 오로지 나만의 유일한 휴식처였다. 그때 창밖의 산들이 말을 걸어오기 시작했다.


계절을 가르쳐준 나무들

정신없이 앞만 보고 달릴 때는 몰랐는데, 어느 날 보니 초록이던 나무들이 붉게 물들어 있었다.

또 어느 날엔 잎을 다 떨군 채 앙상한 가지로 서 있었고, 곧 흰 눈을 머금은 겨울 산이 되어 있었다.


하루하루를 사투하듯 살아내느라 계절이 바뀌는 줄도 몰랐던 내게, 산은 묵묵히 제 몸의 색을 바꾸며 시간의 흐름을 알려주고 있었다.

“이제 가을이야, 단풍이 예쁘지?
이제 겨울이야, 많이 춥지?
이제 봄이 왔어,…“


하루하루 버텨내며 하루살이처럼 살고 있던 나는

일요일마다 고속도로를 달리면서 그렇게 산과 대화를 나눴던 것 같다.

오롯이 나 혼자만의 공간에서 계절을 알려주는 산을 보면서 난 잠시 편안함을 느꼈다. 산은 그렇게 나를 위로해 줬다.


운전하는 그 시간 동안 산을 바라보며 나는 비로소 숨을 쉬었고, 내가 여전히 살아있음을, 그리고 계절이 바뀌고 있음을 느꼈다.


이제 나는 더 이상 산을 넘어야 할 숙제로 보지 않는다.


봄의 연두색부터 겨울의 설경까지, 제때를 알고 변하는 나무들을 보며 삶의 순리를 배운다.


그때부터 산은 나를 위로해 줬던 것 같다.

이제 난 나무들을 보며 계절을 느끼는 사함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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