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건의 피고인은
사회에 첫발을 내디딘 지 얼마 되지 않은 사회초년생이었다.
수습기간 중이던 그는
일요일,
업무를 마치고 회사 차량을 몰고 귀가하던 길이었다.
그날 사고는 아주 짧은 순간에 일어났다.
우측에서 좌회전하던 차량을 피하려고 본능적으로 핸들을 꺾었고,
그 순간 그 차량 뒤에 정차해 있던 오토바이를 미처 발견하지 못했다.
충격은 그대로 이어졌다.
오토바이를 운전하던 피해자는 한 가정의 가장이었다.
사고로 인해 그는 스스로 몸을 움직일 수 없을 정도의 심각한 상해를 입었다.
그날 이후 그의 아내는 홀로 남편을 간병해야 했고, 생계를 책임져야 했으며, 아이를 키워야 했다.
한 사람의 사고가 한 가족의 삶 전체를 무너뜨리고 있었다.
1심에서 피고인은 피해자와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1천만 원을 공탁했지만 결과는 바뀌지 않았다.
금고 6월, 집행유예 2년. 그리고 사회봉사 80시간, 준법운전강의 40시간.
검사와 피고인 양측 모두 항소했다.
나는 위 사건의 항소심 국선변호인으로 선정됐다.
피고인은 자신의 잘못을 알고 있었다.
다만, 두려워하고 있었다.
이 사건이 자신의 앞으로의 삶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지.
집행유예 전과가 남는 것,
취업과 사회생활에서의 불이익,
그리고 생계를 이어가야 하는 현실까지.
그에게는 벌금형이 절실했다.
결국 이 사건의 핵심은 ‘합의’였다.
나는 피해자의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니, 바로 전화를 걸진 못했다.
먼저 문자를 보냈다.
“전화드려도 괜찮을지 여쭤봅니다.”
나 역시 어머니가 교통사고로 생사의 갈림길을 지나셨기에 피해자 아내의 마음을 알 것 같았다.
그 상황에서 누군가의 전화를 받는 것 자체가 또 하나의 고통일 수 있었다.
전화가 연결되었을 때, 수화기 너머의 목소리는 차가웠다.
짧았고, 단단하게 굳어 있었다.
나는 그 목소리를 이해할 수 있었다.
통화를 이어가며 나는 느낄 수 있었다.
이 사고 이후 그녀가 감당하고 있는 삶의 무게를.
남편의 간병,
생계를 위한 노동,
아이의 양육.
몸도 마음도 이미 한계에 가까운 상태였다.
나는 그 마음을 함부로 건드리지 않으려 했다.
대신 그저 조심스럽게 그녀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내가 알고 있는 고통을 꺼냈다.
나 역시 어머니가 교통사고로 생사의 갈림길에 계셨던 시간을 겪은 적이 있었고,
그 기억은 지금도 선명했다.
나는 그녀의 상황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아니라,
이미 한 번 그 고통을 지나온 사람으로서 말을 건넸다.
그녀는 분명히 말했다.
“합의는 하지 않겠습니다.”
그 말은 단호했고,
그 선택은 충분히 이해되는 것이었다.
나는 더 설득하지 않았다.
“네, 알겠습니다.
피해자분께서 원하지 않으신다면
합의하지 않으시는 것이 맞습니다.”
그렇게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며칠 뒤였다.
재판을 마치고 사무실에 돌아왔을 때 메모 하나가 남겨져 있었다.
“전화 부탁드립니다.”
피해자의 아내였다.
전화를 걸었다.
그녀는 말했다.
“변호사님, 합의하겠습니다.”
나는 순간 잠깐 멈췄다.
다시 한번 확인하듯 물었다.
정말 괜찮으신지.
그녀는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피고인도 많이 반성하고 있고…
사회초년생이라면서요.
앞으로 살아갈 날이 더 많을 텐데…”
말을 끝까지 잇지는 않았지만, 그 뜻은 충분히 전해졌다.
그날 이후 합의서는 재판부에 제출되었고,
항소심 재판부는 검사의 항소를 기각했다.
피고인에게는 벌금형이 선고되었다.
집행유예는 사라졌고, 사회봉사와 수강명령도 면제되었다.
그 사건을 통해 나는 다시 한번 깨달았다.
피고인을 변론할 때, 나는 늘 내가 그 사람이 되었다고 생각하며 변호하려고 애썼다.
그의 입장이 되어, 그의 두려움을 대신 설명하고, 그의 삶을 대신 설득하려 했다.
그런데 그날 나는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피해자를 대할 때도 마찬가지라는 것을.
피해자가 되어보지 않고서는 그 마음을 이해할 수 없고,
그 마음을 이해하지 않고서는 어떤 설득도 결코 닿지 않는다는 것을.
합의는 설득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