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형은 한 사람의 생명을 박탈하는 형벌이다.
이미 누군가의 생명이 빼앗긴 자리에
국가가 다시 한 사람의 생명을 거두겠다고 선언하는 일.
그 말의 무게는 언제나 무겁다.
그래서 나는 사형제도를 유지해야 하는지,
폐지해야 하는지에 대해 쉽게 단정하는 사람이 되지 못했다.
다만 수원지방법원에서 국선전담변호사로 근무학던 시절,
사형을 선고받은 피고인을 변론하면서 오랫동안 내 안에 남은 질문 하나를 얻게 되었다.
사형을 선고했는데, 집행하지 않는 것은
누구를 위한 것일까.
그 피고인은 공무집행방해 사건으로 항소심 재판을 받고 있었다.
나는 그 사건의 국선변호인으로 선정되었다.
기록을 넘기다가 나는 그의 과거를 알게 되었다.
그는 이미 두 사람을 살해했고, 한 사람을 더 살해하려다 미수에 그쳐 사형을 선고받은 사람이었다.
그의 범죄경력조회서에는,
사형 선고 이후에도 폭행, 모욕, 공무집행방해 등의 벌금형 전과가 계속 덧붙어 있었다.
사형이 선고되었는데도 그는 여전히 살아 있었고,
서울구치소 안에서 계속 사람들과 부딪히며 또 다른 범죄를 만들고 있었다.
나는 접견을 위해 서울구치소로 갔다. 그리고 물었다.
“왜 그러셨습니까.”
그는 내 질문에 뜻밖의 이야기를 꺼냈다.
구치소에서는 술도 마실 수 없고, 담배도 피울 수 없고,
규칙적으로 생활하고 운동도 하는데
자꾸 몸이 아프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몸이 아픈 이유는 구치소에서 자신에게 약물을 주입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자신은 어차피 사형수이고,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사람이기 때문에 구치소에서 자신을 마루타처럼 이용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공무집행방해를 한 이유도 그 때문이라고 했다.
자기를 마루타로 이용한다고 믿었기 때문에 교도관을 폭행했다는 것이었다.
그는 진심으로 그 말을 믿고 있는 듯했다.
자신의 몸에 정말 약물이 들어갔는지 확인하고 싶다며 신체감정을 신청해 달라고 했다.
그의 말을 듣는 동안, 나는 한 사람의 죄를 넘어 한 사람의 불안을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의 불안을 먼저 말하는 일이 피해자들의 고통을 덜어내는 핑계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는 두 사람의 생명을 빼앗았다. 또 한 사람을 거의 죽을 뻔하게 했다.
사형을 선고받은 뒤에도 주변 사람들에게 폭행과 모욕을 가했다.
그의 주변에 있었던 사람들은 계속해서 신체적, 정신적 피해를 입고 있었다.
그런데도 사형은 집행되지 않았다.
그래서 이상한 풍경이 만들어졌다.
피해자는 이미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사형을 선고받은 사람은 죽음의 예고 속에서 오래 살아남아 점점 더 불안과 의심 속으로 가라앉고 있었다.
그리고 그 주변 사람들은 계속 피해를 입고 있었다.
그를 보며 나는 생각했다.
사형을 선고하고도 오랫동안 집행하지 않는 시간은 도대체 누구를 위한 시간일까.
피해자를 위한 시간은 아닌 것 같았다.
이미 잃어버린 생명은 돌아오지 않으니까.
사회를 위한 시간도 아닌 것 같았다.
그 시간 동안 또 다른 폭력과 불안은 계속 생겨나고 있었으니까.
그 사람 자신을 위한 시간이라고 말하기에도 너무 잔인해 보였다.
그는 언제 닥칠지 모르는 죽음의 그림자 속에서 스스로를 지켜내지 못한 채
오래 흔들리고 있었으니까.
사형제 폐지를 말하는 사람들은 생명권과 인권을 이야기한다.
그 말은 분명 무겁고도 중요하다.
하지만 한편으로 나는 이 질문도 놓을 수 없었다.
형을 선고해 놓고 집행하지 않은 채 끝나지 않는 불안 속에 머물게 하고, 그로 인해 주변 사람들이 계속 피해를 입고 있는데
사형을 집행하지 않는 것이 과연 누구의 인권을 위한 것인가.
나는 아직도 그 질문에 답하지 못한다.
다만 분명한 것은, 그 접견실에서 내가 본 것은
단순한 사형수가 아니라
끝나지 않는 형벌 속에 오래 방치된 한 사람의 불안이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 불안은 피해자를 살리지도 못했고,
사회를 더 안전하게 만들지도 못했으며,
그 사람을 구원하지도 못했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을 찾지 못했다.
사형을 선고했는데 집행하지 않는 것은
도대체 누구를 위한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