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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LP창고 no.3

아침을 춤추다...스파이로 자이라 <morning dance>

by 보라유리

소설가 한강의 에세이에는 종이 건반 이야기가 나온다. 피아노가 배우고 싶었지만 집안 형편이 어려워 피아노를 살 수 없어 종이 건반을 쳤다는 이야기.

사실 나도 종이건반을 쳤다.


8평짜리 연탄 주공아파트에서 피아노를 사달라고 조르는 나에게 엄마는 종이 건반을 그려주셨다. 나중에 이 종이 건반은 엄청나게 큰 건전지(밧데리)로 소리가 나는 작은 건반으로 바뀌었다. 갈색 가방을 열면 건반이 들어있고, 위에 작은 악보가 그려져 있는 것이었다. 거기 제목으로 써져있던 '타향살이'가 무슨 뜻이냐고 엄마에게 물어봤던 기억이 난다. 이쯤 되면 나의 년식이 탄로난다.


나이가 들면 아침 잠이 없어진다고 누가 그랬나...

저녁형을 넘어 자정형 인간인 나는 주말에 늦잠을 자고 정오를 넘어 눈을 떴을 때가 가장 상쾌하다. 정신은 여전히 내 방 침대 위에 두고 유체 이탈 상태로 몸만 출근하는 나에게 가장 어울리지 않는 음악은 바로 'Morning Dance!'


이 곡을 처음 만나게 된 건 대학교때 경희대 앞 피자집에서다. 경희대 앞에서 자취를 하던 남친은 집 앞 몇 몇 허름한 식당에 식권을 사놓고 거기서 끼니를 해결했다. 그런데 이 날은 그런 식당이 아니라 피자집이었으니 특별한 날이었던 모양이다. 그래도 피자가 양식이라고 거기에서 특별한 음악들이 나왔다. 음악이 하도 좋아 식당을 나오기 직전 사장님께 지금 나오는 음악이 뭐냐고 여쭤보았다. 사장님은 자기도 잘 모르겠다며 'soft jazz request'라고 적힌 CD케이스를 하나 내미셨다. 나는 다음날 신나라 레코드 가게에서 그 CD를 샀고, 2장으로 되어있던 CD가장 마지막에 실려있던 곡이 스파이로 자이라의 <morning dance>였다.

오랫동안 잊고 있었다가 우연한 기회에 다시 <morning dance>를 듣게 되었는데 어쩐지 낯이 익다 했다. 컴필레이션 음반 대신 제대로 된 음반을 LP로 갖고 있으면 아침잠이 많은 나도 아침에 왠지 춤을 출 수 있을 것 같아 구입하게 되었다.


오늘의 나의 픽은 역시 B면 첫 곡 'Heliopolis'! 왜 뮤지션들은 항상 좋은 곡을 B면에 숨겨놓는지 모르겠다.

신나는 퍼커션 리듬과 신스, 비브라폰이 어우러져 뿜는 에너지는 정말로 태양신의 도시(helio(태양신)-polis(도시))를 깨울 수 있을 것 같다. 음반 제목과 같은 첫 곡 'morning dance'가 가장 유명하긴 하지만 이 곡은 아침춤이 절로 추어지는 환경을 만든다고나 할까..


음악을 들으며 몸을 깨운다면, 스파이로 자이라의 앨범의 표지를 보면서 숨은 그림 찾기를 하다보면 뇌를 깨울 수 있다. 세밀화로 그려진 표지 속에 재미있는 이미지가 많이 숨겨져 있다.


초록색 덩쿨이 우거진 표지 디자인의 유래가 궁금했는데 비밀은 팀의 이름에 있었다. 스파이로 자이라는 처음에 밴드명 없이 클럽에서 공연을 했었는데 클럽사장으로 인해 갑자기 밴드의 이름을 정하게 됐다. 클럽 리더가 대학교 생물학 시간에 들어봤던 ‘Spirogira(담수 녹조류)’를 농담으로 말했더니 클럽사장이 그걸 발음 나는 대로 ‘I’를 ‘y’로 바꿔보라고 하여 스파이로(나선형)▪︎자이라(소용돌이) 됐다고 한다. 역시 이름은 이렇게 갑자기 지어져야 한다.

아침에 잠이 덜 깬 시간, 조금이라도 일찍 출근하여

학교 밴드실에서 단 10분이라도 건반으로 머리 깨우는 루틴을 만들었다. 여자라서 군대는 안가봤지만 3월 개학 첫날에는 꼭 휴가 나왔다 자대 복귀하는 기분이 든다. 3월 개학 첫날엔 'Morning dance'를 치며 나의 아침을 춤춰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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