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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LP창고 no.6

가장 보통의 한 때...원스 OST

by 보라유리

왠지 그럴 때가 있다.

하늘이 낮게 깔린 흐린 날, 어깨는 소 두 마리를 짊어진 것처럼 무겁다. 오늘 하루 나에게 주어진 미션들을 꾸역꾸역 클리어해내기 무섭게 우울한 소식을 마주친다.


오늘이 그랬다. 아이들도 날씨를 타는지 평소에 잘 나오던 아이가 결석을 하고, 상습 결석생은 역시 결석이고, 우리반 가장 아픈 손가락이었던 한 명도 결석을 했고 어머니에게서 결국 학교를 자퇴하고 싶다는 연락이 왔다.


글을 쓰려고 며칠 전부터 미리 골라두었던 재즈 LP를 치우고 그냥 손에게 선택을 맡겼다. 손은 LP몇개를 대충 휘적이더니 '원스OST'를 꺼내든다.

내 눈은 앞 뒤를 확인하기도 귀찮았는지 LP플레이어에 B면부터 올렸나보다. 그 덕분에 그 유명한 'falling slowly'가 아닌 생소한 노래가 들려와 그제서야 귀를 기울인다.


앨범 자켓의 흐린 하늘이 꼭 오늘 날씨같다.

두 번째 노래를 지나 벌써 세 번째 노래가 재생된다.

Glen Hansard는 왠지 오늘 이런 나의 마음을 아는지 'leave'를 목놓아 외친다. 음악에 맞춰 고개를 이리저리 그냥 가는대로 흔들어본다. 덧없는 세상을 향해 'leave'를 열심히 외치고 있는

그 날것의 목소리와 에너지에 슬픈 마음이 갑자기 밀려오며 눈에 이슬같은 무언가가 아주 살짝 고인다.

그래서 오늘 나의 픽은 B면 세번 째 곡 <leave>!


ONCE 영화에는 사실 이렇다 할 특이한 사건이 없다. 나에게 유일하게 기억되는 것은 길거리에서 청소기를 끌고다니던 여주인공. 그러나 사람들은 ONCE의 음악은 기억한다. 그 흔한 세션 하나 없이 통기타와 보컬로만 연주되는, 너무나 평범해서 그냥 일상 같은 그 음악이 그래서 더 마음에 거리낌없이 훅 하고 들어온다. 그래서 그런지 ONCE ost는 오히려 적당히 먼지낀 지지직 소리와 일정치 않은 판의 회전이 만들어내는 미세한 떨림이 있는 LP로 듣는게 더 어울린다.


3월이 되면 공부해야지...운동을 시작해야지...하며 겨울내내 미뤄뒀던 무언가를 봄에 야심차게 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시작했던 것들은 3월 말이 되자 동력이 서서히 떨어지기 일쑤다. 올해는 더 부지런해야지 다짐했지만 여전히 몸은 피곤하고, 작년같이 또 평범한 일상을 그냥 살아내야 할지도 모른다.


그래도 괜찮다.

오늘같이 이렇게 흐린 하늘도,

통기타 반주와 꾸밈 없는 목소리 하나도,

어느 길에서 만났다가 또 길에서 헤어지는 인연도

가장 보통의 한 때, 그래서 더 아름다운

내 인생의 단 한 번의 순간, ONCE니까!


#LP

#LP레코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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