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장 있어도 아깝지 않은....<엑소더스>, 밥 말리
호킹지수라는 것이 있다.
스티븐호킹이 쓴 <시간의 역사>는 베스트셀러이지만, 복잡성과 난이도 때문에 그 책을 끝까지 읽은 사람은 많지 않다. 그 책의 호킹지수는 약 6.6%로, 100명이 이 책을 사면 평균적으로 약 6~7명만이 끝까지 읽는 셈이다. 엄청나게 유명한 책들도 구매만 하고 안읽는 사람이 수두룩해 호킹지수 2%대를 기록하는 베스트셀러도 있다고 한다.
호킹지수를 알려주신 분은 자기도 책을 읽고 나서 서가에 정리하려는데 옆에 똑같은 책이 이미 꽂혀있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고 한다. 심지어 예전에 읽었던 책인데도 내용까지 생소해 처음 읽은 책인줄 알았더란다.
이 이야기를 듣고 나도 두 장 산 LP가 생각났다. 바로 밥 말리의 <엑소더스>(Exodus, Bob Marley&the Wailers>! 1년전에 샀던 것을 까맣게 잊고 있다가 지난 겨울 새로 주문했다. 소장용으로 LP를 산 후 제대로 듣지 않았던 것이 문제다.
LP 한 장을 앞 뒤로 온전히 들으려면 적어도 한 시간이라는 '시간'이 필요하다. 유튜브로 한 곡씩 소비하는 짧은 템포에 익숙해진 나는 솔직히 LP를 사서 듣기보다는 언젠가는 듣겠지...하고 쌓아 놓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생긴 두 장의 똑같은 LP를 떠올리며, 호킹지수를 이야기 하는 강사님 말씀에 겉으로는 웃었지만 속으로는 엄청 찔렸다.
나같은 사람이 또 있다면 아마 'LP지수'같은 게 있지 않을까? 실제로 음반을 사놓고 끝까지 듣는 비율을 조사해본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 궁금하다.
'이럴줄 알았으면 음반을 사기만 하지 말고 제대로 들을 걸..'하는 후회와 함께 '그래도 밥말리 음반이니까 괜찮아..'하는 합리화도 한꺼번에 한다. 그래야 같은 LP를 두 번 사는 짓을 한 내가 덜 창피하니까.
그런데 정말 <엑소더스>는 두 장 살만하다. 이 음반은 1977년 밥말리가 자메이카에서 영국으로 이주하고 전성기를 맞이했을 때 발매되었다고 한다. 끝없이 이어지는 레게 비트를 듣고 있으면 복잡한 세상이 단순해지는 것도 같다. 그리고 '인생 뭐 있겠어..'하는 생각도 든다. 듣고 있자면 아무 생각 없이 빠져드는 것이 밥 말리 음악의 묘미이다. 그러나 한 편 밥말리 음악에는 엄청난 사회적 메세지를 숨겨놓고 있기도 하다. (비록 엑소더스는 두 장 샀지만 500페이지가 넘는 밥말리 평전은 지난 겨울방학에 끝까지 읽었다^^)
오늘의 나의 픽은 B면 첫 번째 곡 'Jamming'! A면이 보다 정통 자메이카풍이라면 B면에 있는 곡들은 발라드와 결합하여 훨씬 온화해지고, 화성도 다양해지며 듣기가 편해진다. 비록 음반명과 동일한 A면 마지막 수록곡 'Exodus'가 가장 유명하긴 하지만, '같이 Jam 할래요?'가 마치 사랑 고백처럼 들리는 이 곡이 나에게는 가장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짐작하겠지만 나의 LP지수(?)는 매우 낮다. 실은 똑같은 LP를 두 장 산게 이 것 말고도 하나가 더 있다는...
TMI : 밥말리를 다룬 영화 <One Love>와 동명의 제목 곡인 'One Love'가 이 앨범의 가장 마지막에 실려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