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의 나를 만나서 안아주기
어떤 영화를 보면 처음부터 끝까지 복기하고 싶어질 때가 있다.
오늘 영화가 그랬다.(스포 주의)
<스즈메의 문단속>은 제목에서부터 '어디로든 문'을 연상시키는
시공간의 공존이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점심시간에 달려간 사무실 근처 영화관에는 관객이 나포함 두 명.
영화와 내가 만날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이다.
영화에서 고2 여학생으로 등장하는 스즈메는 영화가 끝날 무렵에는 얼굴이 어쩐지
더 성숙해진 느낌이 난다. 부모와 결별하고, 보호자를 떠나 자기 안에 자꾸 등장하는 어린 시절의 나를 찾아 나서는 그녀의 이야기를 보면서 미친듯이 여행이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여정에서 만나게 되는 여성들.
무거운 귤 상자를 두 박스나 자전거로 배달하고, 집에서 운영하는 목욕탕도 청소하는 또래 친구. 성별이 다른 쌍둥이 아이 둘을 키우며 밤에는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일하는 술집 여사장. 언니가 남기고 간 조카를 키우느라 혼기를 놓쳐버린 이모, 왠만한 목공 일은 혼자 직접 할 수 있는 엄마까지.. 그녀의 주변에는 평범하지만은 않은 여성들이 있다. 그녀들은 모두 스즈메가 과거의 '어리고 버려지고 슬펐던 나'를 찾아 마주하게 하는 환경이 된다.
이 곳에서 남자들의 역할은 그에 비하면 부차적이다. 눈의 여왕의 저주에 꽁꽁 얼어붙은 카이를 연상시키는 남주인공은 스즈메의 키스로 깨어난다. 다른 남자 등장인물들도 백마탄 기사가 아니라 '트럭'과 '오픈카'라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운전 '기사' 노릇을 한다. (그리고 선과 악이 도저히 구별 되지 않는 흑 백의 두 고양이가 나온다.)
스즈메의 문은 '저세상'으로 통하는 문이지만, 나에게는 '꿈'이 다른 세상과 통하게 하는 문이다.
그 중 꿈을 꾸면서도 내가 꿈을 꾸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는 '자각몽'이라는 것이 있다.
이런 꿈을 꿀 때 나는 전혀 의도하지 않았지만 몇 번에 걸쳐서 어린 시절의 나를 만났다. 꿈에서 깨어 생각해보면 내가 만난 그 아이가 바로 '나의 모습'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신기하게도 그런 꿈 속에서는 나를 데려다주거나 함께하는 동반자가 있다.)
나는 그렇게 만난 아이에게
'지금 그 떼를 멈추지 않으면 너를 죽여버릴거야'라고 말하기도 하고,
그 아이의 장본인이 되어 '나는 그냥 이대로 살거니까 날 건들지마'라고 말하며 악을 쓰기도 한다. 그리고 나의 그런 모습을 내려다보며 증오하기도 한다.
나에게도 단속해야 할 문이 많은가보다.
그런데 다음에 다시 그 문을 열었을 때는 그 아이에게 화내거나 당황하지 않고
"나는 말이야, 이주원의 내일이란다.
너는 빛 속에서 어른이 되어 가는 거야.
소중한 건 오래전에 다 받은 거였어."
라고 말해주고 싶다. (비록 나는 스즈메에 비해 한 25년은 늦긴 하지만 그녀는 영화 주인공 아닌가!)
처음에 교복 단화로 출발한 스즈메는
신발을 물에 적시고,
신발 한쪽을 잃어버리고 결국
피투성이 양말 바람이 되었다가
나중에는 발에 맞지 않는 남자 워커로 갈아신는다.
신발 따위는 길을 떠나는 스즈메에게는 아무것도 아니다.
나의 삶의 여정에서 어떤 길을 만나건, 어떤 신발을 신고 가던
문을 활짝 열고 그 경계를 가뿐하게 넘어
거기서 기다리고 있을 '나'를 만나서 따뜻하게 말 한 마디 건네봐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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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re the future,
and you've come for what is yours
당신은 미래이고 당신의 것을 가지러 여기 왔죠
The hidden treasure,
locked behind the hidden doors
숨겨진 문들 뒤에 감춰진 숨겨진 보물들
And the promise of a day that's shiny new
그것들이 새롭게 빛나는 날의 약속이죠
Only a dreamers could afford this point of view
오직 꿈꾸는 사람만이 이 광경을 누릴 수 있어요
'Brand New Heavies'곡 <You are the Universe> 가사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