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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라유리 Aug 13. 2023

어떤 여행

자각몽 no.9

비가 와서 질척해진 땅을 신발도 없이 걷고 있다.

꼭 홍콩 거리같이 어수선한 가산동 골목에서

이상하게 잡아탄 버스에서 서둘러 내렸다.

몇 번 발걸음을 옮기지 않았는데도 하얀 양말은 벌써 흙탕물로 바닥이 검게 변했다.


가만있자. 내가 질척한 더러운 거리를 양말바람으로 걷고 있는게 '내가 마땅히 받을 만한 대접'인가?

아니다. 그래. 이건 꿈이다.


이게 꿈이라는 걸 안 이상 걸을 필요가 없다.

나는 그 자리에서 바로 날아오른다.

거기 건물 따위가 있고 없고는 중요하지 않다.

머리위에 있는 철근과 콘그리트를 내 몸이 스스륵 빠져나가는 것을 느낀다.

다만 날아갈 때 추위가 문제다.

나는 그 전에 이미 경험이 있기 때문에, 이 순간이 얼마나 추운지 안다. 지금 이불로 몸을 둘둘 감고 있는게 천만 다행이다. (예전 비행때는 하도 추워서 첫 번째 행선지를 노스페이스 매장으로 정해 방한복 한벌을 장만해서 입고 간적도 있었다.)


복잡하게 얽혀있는 항만의 붉은 철제 하역 구조물들시야에서 점점 멀어지는 것을 느끼며 나는 점점 더 위로 날아오른다. 하지만 곧 어디로 가야할지 몰라 갈팡질팡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찾아 나설까?'

'첫 사랑한테 데려다 달라고 할까?'

'그런데 그게 진짜 사랑었는지 아닌지 어떻게 알지?'


이렇게 고민하다 감정이 고양되는 순간이 오면, 의식이 돌아오며 안타깝게도 여행은 끝이다. 나는 곧 또 다른 잠에 빠져들 것이다.

다름에는 아무래도 행선지를 미리 정해놔야겠다. 아주 세심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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