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예뻤어"
항상 더 많이 사랑하는 쪽은 예외 없이 나였다.
뒷목이 시큰하고 머리카락이 쭈볏 섰다.
물론 감동적인 어떤 곡들은 듣다가 팔에 소름이 돋을 때도 가끔 있다. 그렇지만 이정도는 아니었다.
이 노래는 처음 만났을 때 부터 심상치 않았다.
센터 4층에 있는 밴드 동아리실에서부터 흘러나와
냉방으로 꽉 닫혀 있는 창문과, 두꺼운 벽을 가볍게 뚫고
2층 사무실 모니터에 코를 박고 정신없이 일하고 있는 나의 귀, 그리고 머리, 그리고
결국에는 나의 마음까지 두드리고 있었다.
가사 내용도 제대로 들리지 않았지만, 그 분위기에
'도대체 이 곡은 뭐지?'싶었다. 그래서 아예 작정을 하고 출근길에 더 자세히 들어본 것이다.
'예뻤어~' 가 헤드셋에서 흘러 나오는 순간
나는 출근길에 주저않을 뻔 했다.
도대체 이 정체가 무었인지 궁금했다.
지금 이 기분과 너무나 어울리지 않는 초가을 아침 햇살을 받으며, 아직 아무도 출근하지 않은 사무실 블루투스 스피커 볼륨을 높이고 노래를 찬찬히 들어보기로 했다.
가장 불안하다는 마이너 세븐 플랫 파이브(min7b5)코드로 시작해서, 디미니쉬(dim)로 움츠러들고 메이저(Major)로 풀어졌다가 다시 마이너 세븐 플랫파이브로 돌아가는 인트로는 이미 마음을 들쑤셔놨다. 거기다 심장이 두근거리는 것 같은 8비트 리듬. 그리고 곧 시작되는 첫마디.
지금 이 말이..우리가 다시 시작하자는 건 아니고,
그냥 너의 남아있던 기억들이 떠올랐을 뿐이야.
이렇게 몇마디 던지다가 갑자기 나오는
"예뻤어~"
너의 목소리와
날 바라봐 주던 눈빛까지 다 예뻤다는
한갖 대중가요인 그 멜로디와 가사가 뭐라고
눈에 갑자기 힘이 들어간다.
내가 이러다 눈물을 흘릴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대한 방어태세의 시작이다. 그러다 결국 아무도 없는 사무실에서 나는 눈물 몇 방울을 기어코 흘리고 만다.
너무 궁금했다. 뭐가 내 마음을 들쑤시고 자극하는건지.
가사를 다시 곱씹어봐도
내가 말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은 아니다.
그리고 가사를 들어도 예전에 내가 사랑했을지도 모르는 그 어떤 누구의 얼굴도 겹쳐지거나 떠오르지 않는다.
그렇다면 나는 화자가 아니라 청자인 걸까?
3일 뒤 오늘 나는 내 작업실의 카우치에 누웠다.
'음악 심리치료의 이해' 과목을 수강하며 나는
매주 수요일 나만의 셀프 세션을 진행한다.
지난학기에 꾸준히 했던 것을 여름방학을 맞아 잠시 쉬었는데 오늘은 도저히 그냥 지나갈 수가 없다.
배운대로 심호흡을 몇 번 하고,
이번엔 가사를 보며 노래를 따라부른다.
도망가지 않고 그 혼란에 기꺼이 나를 맞닥뜨리고, 그 정체가 무엇인지 찾아보는 것이다.
멜로디를 어설프게 따라가며 가사를 내 입으로 발음해보고, 내 목소리로 끌어올려본다. 그러는 동시에 그 소리에 귀를 기울여 본다.
1절이 끝나고 드디어 후렴이 시작되는 부분
"예뻤어~"
눈물이 떨어진다.
안약 넣은 배우들 마냥 그냥 눈에서 떨어지는 눈물이라면 이렇게 힘들지 않을텐데
이건 무슨 지하 암반에서 끌어올려지는 물처럼 너무나 멀리서, 바싹 마른 수건의 마지막 한 방울의 물이 나오는 것 처럼 쥐어 짜이며 너무나 힘들게 올라온다.
'눈물이 난다'고 하는 표현보다 '눈물을 게워낸다'라고 하는 편이 낫겠다.
나는 이 노래가 뭐가 그렇게 슬픈걸까.
두 번째로 노래를 따라 부른다. 이제는 멜로디를 익혔으니 좀 더 목소리도 크게 내고, 노래가 아닌 내 마음에 집중해볼 수도 있다. 그리고 문제의 그 부분
"예뻤어~"
어김없이 눈물이 쏟아진다.
"잘 지내라던 그 목소리 그마저도 내겐 예뻤어.
내게 보여준 눈물까지, 너와 가졌던 순간들은 다..
다 지났지만 넌
너무 예뻤어"
이건 내가 듣고 싶었던 말이었구나!
내가 사랑하던 사람들에게
진심을 다해 사랑했던 그들에게 정말로 듣고 싶었던,
그렇게도 듣고 싶었지만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던
바로 그 말이다.
박진영 소속사의 아이돌 밴드로 만들어진 데이식스는
그렇게도 내가 듣고 싶었던 말을 대중가요라는 어법으로 그냥 담담하게 나에게 던지고 있었던 것이다.
세 번째로 노래를 듣는다. 이번엔 따라부르지 않고 눈을 감고 그냥 듣기만 한다. 그렇게도 내가 듣고 싶었던 말들을 마치 누군가가 대신해서
나에게 지금이라도
"예뻤어"라고 말해주듯.
그 시절 최선을 다해 열렬히 그 누군가를 사랑했던
과거의 나에게, 너는 찌질이나 못난이가 아니라
"예뻤어"라고 내 자신에게 말해주듯.
남들과 눈물 코드가 다른 나는 거의 울지 않는다.
가까운 누군가 돌아가신 장례식이나, 주변 사람들이 눈물 콧물 다 빼는 슬픈 영화를 보는 영화관에서도 나는 눈물이 나지 않아 당황스러울 때가 많다.
그런데 그런 나에게
내 안에 어디까지 슬픔이 있길래 이렇게 눈물이 나는 걸까 할 정도의 찐한 눈물이 쥐어짜인다.
이렇게 울고 나니 내가 어쩐지 좀 가벼워진 것 같기도 하다. 유튜브 알고리즘은 신기하게도
실컷 운 다음 나른해져 눈을 감고 있는 나를 위해
바로 다음 곡으로 라쎄린느의 C'mom through를 틀어준다. 인생의 가장 힘든 시기를 건너가고 있을 때, 신기하게도 나에게 위안이 되었던 바로 그 곡을 말이다.
항상 더 많이 사랑하던 쪽은 예외 없이 나였다.
그래서 더 많이 상처받았고, 자존감은 물론이거니와 존재감마저 희미해져버린 나는
내가 받은 상처를 그냥 아무렇게나 덮어 한쪽 구석으로 밀어놓기 바빴다.
그렇지만 지금의 나는 이제야 나에게 조용히 이렇게 말해본다.
'그래, 예뻤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