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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땅콩 Jul 05. 2022

05. 우울증과 술 (2)

나는 어떻게 알코올 중독에서 벗어났나

(저번 화와 이어짐)


    약을 끊으며 다시 술을 먹을 수 있게 되었다. 술을 마시지 않는 동안 올바른 음주 습관을 완벽하게 정립했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나는 그렇게 힘겹게 금주를 이어가고 있지 않았다. 종종 술을 마시고 싶었던 날이 있지만, 이미 습관이 되어서 예전만큼 간절하게 술을 마시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설령 다시 술을 먹게 된다고 해도 그렇게 건강하지 못한 방법으로 술을 마실 것 같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완벽한 오산이었다. 술을 마시기 시작한 지 겨우 몇 달 만에 예전처럼 건강하지 못한 방법으로 술을 마시는 나를 발견했다. 과음을 했고, 술을 마시고 한 행동을 기억하지 못했고, 혼자 자주 술을 마셨다. 특히나 당시 혼자 자취를 했기 때문에 혼자 술을 마시기에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마치 몇 달간 술을 마시지 못한 것에 대한 보상이라도 받듯 다시 매일 술을 마셨다.


    그래서 지금은 어떻게 되었냐고 물어보면, 나는 여전히 술을 좋아한다. 가끔 과음을 하고 가끔 필름이 끊긴다. 그래도 예전처럼 술이 나를 잡아먹을 정도로 마시지는 않는다. 참고로 현재는 우울증이 많이 완화된 상태다. 물론 알코올 중독에서 벗어나기 위해 나름의 노력을 하기도 했다. 주종 별로 한 번에 얼마나 마실 것인지를 정해 본 적도 있고, 한 달에 몇 번이나 마실지 정해본 적도 있다. 몇 주 정도는 계획대로 되는 듯했으나 결국 번번이 실패했다. 물론 그 노력이 전혀 의미가 없는 행동이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적어도 나의 문제를 계속해서 자각하게 되었고, 자제를 하기 위해 습관적으로 계속 노력하게 되었다. 하지만 난 그것이 알코올 중독 해결의 공신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알코올 중독에서 벗어난 것일까? 정답은 우울증의 치료에 있었다고 생각한다. 우울증을 치료받으며 자연스럽게 알코올 중독도 치료되었다. 내 생각엔 난 당시 그 어떠한 것에도 매우 중독될 수 있는 상태였다. 나의 경우 그것이 술이었을 뿐이다. 공허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현실에서 도피하기 위해 의존할 무언가가 필요했다. 술은 그러한 욕구를 채워줄 수 있는 값싸고 빠른 방법이었다. 단 돈 몇 천 원이면 나는 다른 세계로 갈 수 있었다. 우울증이 개선되며 술이 아닌 그 어떠한 것에도 지나친 의존을 할 필요가 없어졌다.


    알코올 중독에는 여러 원인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모든 병이 그러하듯, 특히 정신 질환은 더욱 그러하듯, 병의 원인과 양상은 매우 다르다. 따라서 해결 방안 또한 매우 다르다. 따라서 환자마다 다른 방식의 접근이 필요하다. 다만 어떠한 병이듯 근본적 문제를 파악해보는 것은 매우 중요한 절차다. 나의 경우는 알코올 중독 그 자체보다 당시 나의 우울증이 보다 근본적 문제였다.


    우울증이 우리에게 찾아올 때, 홀로 오지 않는다. 생각보다 많은 어두운 것들을 데리고 온다. 때로는 무기력증을 데리고 오기도 하고, 때로는 이처럼 술을 권하기도 한다. 이는 한 때 나에게 매우 절망적으로 다가왔다. 난 겨우 우울증에 걸린 것뿐인데, 생각보다 너무 많은 것을 빼앗긴다는 느낌이 들었다. 과연 우울증이 완치된다고 해도 여러 후유증에서 잘 살아남을 수 있을지 불안하기도 했다. 하지만 우울증이 나에게서 떠나가며 깨달은 사실이 있다. 우울증은 떠나갈 때도 자신의 짐을 잘 챙겨서 떠나간다. 우울증이 내게서 떠나갈 때는 알코올 중독도 함께 갔다. 물론 놓고 가는 짐들도 있기에 그것들을 잘 처리해야 하는 임무가 남기도 한다. 그리고 다 떠난 줄 알았는데 그가 남긴 짐들을 보고 아직 떠나지 않았음을 깨닫기도 한다.


    이는 비단 우울증과 술에 국한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나는 이 경험을 바탕으로 어떠한 문제가 생겼을 때 최대한 넓은 시야로 바라보려고 노력한다. 해답은 너무나 당연한 곳에 숨어있었을 수도 있고, 전혀 생각지 못한 곳에 숨어있었을 수도 있다. 그래서 이곳저곳 들춰보며 해답을 찾으려는 태도가 중요하다. 원인뿐 아니라 결과도 다양하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어떠한 원인이 불러오는 결과는 매우 다양할 수 있으니, 다각화된 시선에서 그 결과를 분석하는 태도가 중요하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내가 해결하려던 문제보다 더 많은 문제들이 해결되어 있을 수 있다.


인스타그램에서는 만화를 그려요. @peanuts_diary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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