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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땅콩 Jul 07. 2022

6. 가족 이야기

틀린 감정은 없다

    세상에는 참 다양한 모습의 가족이 있다. 어떤 가족은 상당히 수직적 권력 형태를 유지하고, 어떤 가족은 수평적 의사소통이 원활하고, 또 어떤 가족은 겉으로는 화목해 보이지만 속은 곪아있다. 당연히 우울증 환자의 가족 관계도 다양하다.

    우선, 가족이 우울증의 꽤나 직접적 원인이 되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면 가정에서 일어나는 물리적, 정서적 폭력, 차마 가족이 했다고는 인정하고 싶지 않은 여러 가지 일들이 우울증의 도화선이 되는 경우가 있다. 가족으로 인해 우울증이 심화되는 경우도 있다. 우울증, 조울증 등 정신 질환을 가족에게 밝혔다가 평생 씻지 못할 상처를 받기도 한다. 한편 어떤 환자는 가족으로부터 큰 힘을 얻으며 살아간다. 가족이 아닌 그 누군가는 채워주지 못할 부분을 가족이 채워주고, 그렇게 얻은 힘을 통해 세상을 다시 열심히 살아간다.


    나의 경우는 너무 애매했다. 그래서 참 힘들었다. 내가 이렇게 우울해진데 있어서 분명 가족의 영향이 없지는 않다. 하지만 그렇다고 가족이 나에게 엄청난 잘못을 하지는 않은 것 같다고 느꼈다.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까웠다. 부모님은 나를 평생 사랑했다. 자식 사랑하지 않는 부모는 없다는 말이 있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모든 사람이 사랑하는 법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의 부모님은 나를 분명 사랑했다. 가족 때문에 힘들어할 때도 부모님이 나를 사랑한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다. 우울증에 걸린 후에도 부모님은 나를 위해서 꽤나 노력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가족 때문에 힘들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나도 가족도 모두 좋은 사람들이었지만 우리는 너무나 달랐다.


    보통 가족으로부터 너무 큰 상처를 받은 경우 손절을 하라는 조언이 일반적이다. 과거에는 그래도 가족은 용서를 하고 살아가야 한다는 의견을 가진 사람들이 많았다면 지금은 달라졌다. 아무리 가족이라도 해로운 관계는 끊어낼 수 있어야 한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가족을 용서하지 않아도 된다고, 가족을 미워해도 된다고 말한다. 하지만 나처럼 애매한 경우에 있는 사람들에게 해줄 수 있는 조언은 많지 않은 듯하다. 나도 가족을 미워해도 되는 것일까? 나를 그렇게 사랑하는, 그렇게 큰 잘못도 하지 않은 그들을?


    미디어에는 두 종류의 가족이 나오는 듯했다. 아주 불행한 가족과 아주 행복한 가족. 우리 가족은 그 어느 쪽에도 속하지 못했다. 주위를 돌아보면 집안에 문제가 하나 씩 있는 것 같아도 왠지 다들 나보다 가족들과 잘 지내는 것 같았다. 특히 내 주위에는 살가운 자식들이 많았다. 난 살가운 자식이 아니었다. 그런 아이들을 볼 때마다 나는 왜 가족들과 잘 지내지 못할까 하며 나를 탓했다.


    우울증을 치료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임무를 수행했다. 나에게 해로운 사람들과의 관계를 정리했고, 어떠한 행동이 나를 더 행복하게 만들어주는지 계속 연구했다. 가족은 그런 나에게 남은 마지막 숙제였다. 본가에서 계속 사는 한 나의 우울증이 완치될 수 없겠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 그러면서도 가족을 향한 그런 부정적 생각을 갖는 것에 있어 몹시 죄책감을 느꼈다. 어떤 날에는 가족들이 참 고마웠다. 그런 날에는 지난날을 후회하며 가족들에게 더 잘해야겠다고 다짐했다가도, 또 어떤 날에는 그들 때문에 지쳤다. 이러한 양가감정 속에서 너무나도 힘들어했다. 차라리 가족 때문에 더 힘들더라도 그들을 미워할 수 있는 분명한 명분이 있는 편이 더 좋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다.


    사실 아직도 가족 문제는 너무나 어렵다. 무엇이 정답인지, 가족과 얼마나 가깝게 지내야 하는지, 나의 마음을 어디까지 표현해도 되는 것인지 모르겠다. 다만 이 글을 쓰면서 다짐한 것이 있다. 그들을 향해서 어떤 행동을 취하는 게 맞는 것인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적어도 그들을 향한 나의 감정마저 스스로 통제하지는 말자는 것이다. 자연스럽게 드는 감정을 억지로 조종하려 들면 탈이 난다. 나의 마음을 어디까지 표출해도 되는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적어도 그 마음을 고의로 바꾸지는 말자는 것이다. 그들을 사랑하고 싶은 날에는 온 마음을 다해 사랑하고, 그들이 조금 미워지는 날에는 미워하는 마음을 갖는 나를 용서할 수 있기를.


 인스타그램에서는 만화를 그려요. @peanuts_diary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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