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을이 좋다. 덥지도, 춥지도 않은 가을. 동시에 가을이 무섭다. 가을에는 유독 우울증이 심해졌기 때문이다. 가을 탄다, 가을이면 센치하다는 말이 있지만 그 이상으로 가을 내내 기분이 심각히 오락가락했다. 가을이 고개를 내밀기 시작하는 8월 말 즈음이면 벌써 가을 냄새가 난다며 좋아하다가도, 그 냄새만 맡으면 내 우울이 더 심해졌다. 그래서 심지어는 여름부터 가을을 무서워하는 지경에 이르렀던 적도 있다. 11월부터 크리스마스를 준비하는 건 봤어도 한여름부터 가을을 생각하다니.
꼭 가을이 아니더라도 나는 환절기에 취약했다. 외부 자극에 민감한 편이라 그랬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외부 환경이 쉽게 변하는 환절기에 더 힘들어했다. 환절기 중에서도 특히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환절기에 힘들었다. 가을에 우울한 이유를 인터넷에 검색해보니 여름에서 가을이 될 때는 햇빛이 줄어들기 때문에 멜라토닌 분비가 줄어서 그럴 수 있다고 한다. 우울증에 관한 과학적 원리를 깨달을 때마다, 나의 의지나 잘못으로 인해 내가 힘든 것이 아니라 충분히 지당한 이유로 우울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며 묘하게 안심이 된다.
나에 대해 아는 것은 분명 우울증 치료에 도움이 된다. 내가 어떠한 상황에서 우울증이 심해지는지 알면 그 상황이 발현되기 전 미리 대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어떠한 상황에서 우울감이 감소하는지 파악하면 최대한 그 상황에 자신을 많이 노출시키는 노력을 해볼 수 있다. 나만의 대피소로 대피하는 것이다. 하지만 부정적 미래를 알고 있는 것은 공포로 다가올 때도 있다. 재작년 가을에도, 작년 가을에도 우울했으니 올해 가을에도 우울하겠지, 뭐 그런.
그런데 2021년에는 사실상 가을이 없었다. 여름에서 바로 겨울이 되는 바람에 코트를 입어보지 못했다는 사람들이 넘쳐났다. 봄과 가을이 없어지는 것은 너무 슬프지만 뜻하지 않게 우울증에 걸린 이후 처음으로 순탄한 가을을 보냈다. 물론 나의 우울증 자체가 많이 완화되었기 때문도 있을 것이다. 시간이 흘러 2022년이 되었다. 아직 가을이 되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적어도 여름인 지금, 아직은 가을이 두렵지 않다.
한 번의 예측 불가능한 일이 우울증 환자인 내게 얼마나 큰 힘이 되었는지 모른다. 우울증에 걸렸을 때 시야가 좁아지는 느낌을 많이 받았는데, 이러한 경험을 할 때마다 다시 더 넓은 곳을 보게 된다. 과거에는 그제도, 어제도 우울했으니 내일도 우울할 것이며, 그러므로 굳이 내일까지 살 필요가 없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하지만 어제 우울했다고 해서 오늘도 우울한 것이 아님을 알게 된 순간, ‘속는 셈 치고 한 번 살아볼까?’ 하는 생각을 했다. 예상대로 내일은 우울할지 몰라도, 모레는 행복할 수 있으니까. 그리고 행복한 모레를 기다리며 나는 최선을 다해 하루를 살아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