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가 좋았다.

공부 못하는 아이

by 머꼬

어린 시절, 나는 참... 그냥 그랬다.

평범한 외모.

모나지 않은 성격.

반에서 딱 중간정도 되는 성적.

눈에 띄지 않는 평범한 아이였다.


인문계 고등학교에 겨우 갈 수 있는 성적이었지만 공부가 싫었던 나는 상업고등학교에 진학했다. 거기서 엄청난(?) 성적을 거두며 아주 잠깐

"뭐야. 나 천잰가?"

하는 생각을 했었지만 소박하고 귀여운 수능 모의고사 점수 덕분에 금세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친구들과 즐거운 학창생활을 보내다 보니 고등학교 3년은 훌쩍 지나가 버렸고 2001년, 수능성적에 맞춰 겨우 전문대 애니메이션 학과에 진학할 수 있었다. 만화를 너무나 좋아했던 내게 애니메이션 학과는 완전 찰떡이었다.

좋아하는 공부를 하니 열정이 샘솟았다. 매일 밤새워 과제하고 애니메이션 만드는 작업을 해도 피곤하지 않았다. 세상에! 공부하는 게 재밌는 날이 오다니!


정신없이 지내다 보니 2년은 금방 지나가 버렸고

2003년 교수님 소개로 첫 취업에 성공했다.

첫 월급 45만 원.

수능 성적만큼 작고 귀여웠던 내 월급.

지방이었음을 감안하더라도 적은 금액이었다.

그즈음 친구들도 취업을 했는데 평균 월급은 120만 원이었다. 유일하게 전공을 살려 취업한 게 나였는데 몇몇 친구들은 적게 벌면서도 행복해하는 내가 답답했는지 틈만 나면 나를 앉혀놓고 훈계하기 시작했다.

"너네 집 부자야? 부모님이 계속 너 지원해 줄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 그냥 경리 일만 해도 그것보단 많이 벌어. 정신 차려. 꿈이나 좇을 때가 아니야. 전공 살리는 것도 집에서 뒷받침해 줄 때 할 수 있는 거라고."

어떤 마음으로 해 준 이야기였을까.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래도...

집에 손 벌리는 것도 아니고. 친구들한테 빌붙는 것도 아닌데 이렇게까지 말한다고?

한심하다는 듯한 표정과 말투로 쏟아붓는 말들은 나에겐 그저 가슴을 후벼 파는 상처일 뿐. 조언도 충고도 아니었다.

친구들이 그럴 때마다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내가 얼마나 열심히 하는지 지켜봐. 다시는 나한테 그런 말 못 하게 만들어줄게. 이 중에 내가 제일 잘 버는 사람이 될 거야. 언젠가 너네들보다 많이 벌 거야. 꼭!"


6개월이 지난 어느 날 우연한 기회로 이직을 하게 됐다. 월급은 150만 원.

"꿈은 이루어진다더니. 열심히 했더니 이런 날이 오는구먼! 나 구박했던 친구들한테 자랑해야지!"

이직 소식을 전하며 친구들에게 거하게 한턱 쐈던 그날, 어찌나 기분이 좋았던지. 하늘을 나는 기분이라는 게 이런 거구나. 이거 너무 신나는데?


이직한 회사는 정말 마음에 들었다. 일도 재밌고, 동료들은 친절했다. 행복한 날들이었다.

그런데...

기다리던 첫 월급날.

월급이 나오지 않았다. 프로젝트가 끝나야 잔금 받아서 월급 줄 수 있다고... 3개월만 수고해 달란다.

너무 당황스럽고 막막했다. 입사땐 아무 말도 없다가 이제 와서 무슨 말이지? 3개월간 월급 없이 어떻게 살지? 어디에도 이야기할 수 없었다. 부모님은 '애니메이터'라는 나의 직업을 반가워하지 않으셨다. 밥벌이가 힘들다는 이유였다. 그 반대를 무릅쓰고 하던 일이 어그러지니 더욱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긴 고민 끝에 사장님을 믿고 착실하게 밤을 새워가며 3개월간 수고라는 걸 했고.. 3개월 후, 한 달만 더 기다려 달라는 이야기를 듣게 됐다. 하지만 몇 달이 지나도록 결국 월급은 받을 수 없었고 회사는 폐업을 했다. 22살, 순진했던 나는 그렇게 월급을 떼여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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