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의 형상과 같은 인간의 모습을 포착한다는 것은 불가능할뿐더러, 신에 대한 모독이다.
이런 기계를 만들었다고 떠드는 다게르는 분명 바보 중의 바보다."
1839년, 파리의 화가 다게르(Louis Jacques Mandé Daguerre)가 사진기를 처음 발명했을 때,
유럽 언론들이 일제히 신문을 통해 그를 비판했던 글 중 일부이다.
화가가 붓으로 그린 모습이 아닌, 다른 사람의 모습을 기계를 통해 표현하는 것은 신격 모독이라는
굉장히 무거운 논리가 파다했던 시기다.
우리나라 최초의 인물 사진은 중국 연경 (현재의 북경)에서 찍은 이의익의 사진이다. 1863년 청나라로 보낸 외교 사절단인 '연행사(燕行使)'라고 불렀는데, 5개월의 외교 업무를 마치고 조선을 돌아오기 전 사진관에서 찍은 이의익의 사진이 현재까지 발견된 가장 오래된, 우리나라 사람의 사진이다.
당시에는 초상화를 진영(眞影)이라고 불렀는데, 서양에서 가져온 기계가 사람을 똑같이 그리자
이를 보고 사진(寫眞)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물체를 똑같이 그리되(寫), 내면의 정신을 담아야 한다(眞)는 뜻이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기계로 찍은 사진에는 영혼이 담긴다며 일부 사람들에게는 두려움의 대상이 되었다.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의 주머니, 손에는 사진기가 들려있다. 일상을 표현하고, 추억을 기록하고, 때로는 스스로를 돌아보는 거울이 되기도 한다. 신에 대한 모독이라고, 영혼을 담기에 무섭다고 비난받던 기계는
이제, 코웃음 나는 옛날이야기가 되었다.
하지만 그때부터 지금까지 변하지 않는 가치가 있다고 믿는다. 눈에 보이는 그대로를 담을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모두가 같은 사진을 찍지는 않는다는 것.
사진은 이제 똑같이 그리는 것을 넘어 촬영자의 개성을 담을 수 있으며 누군가에게 영감을 주는, 자극제가 될 수도 있다.
영혼을 담는 이 작은 기계를 들고 돌아다닌 나의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자극제가 되길 바라며,
그 자극이 돌고 돌아 언젠가 다시 나를 자극해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