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은 마드리드
스페인에서 작별할 때 인사는 두 가지가 있다고 한다. 하나는 "chao", 다른 하나는 "adios."
스페인에서 만난 사람들은 모두 "chao"라고 했다. 그 차이는 무엇일까?
2016년의 8월, 의무경찰로 복무를 하던 어느 날, 유럽이 가고 싶어 졌다.
으레 20대가 되면 한 번쯤 도전해야 하는 산으로 여겨지던 배낭여행이라서가 아니라,
'왕자의 게임'이라는 드라마를 봐버렸기 때문이다. 판타지와 중세시대, 역사적인 건축물들이 눈 앞에 펼쳐지는데, 팔팔 끓어오른 청춘은 이를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전역을 두 달 앞두고 아버지께 손을 벌렸다. 꽤나 정성 들여 만든 14장의 문서를 들고,
우리 가족 중에는 가본 사람도 없는 그 험난한 땅을 정복하고 오겠노라 선언했다.
아버지는 흔쾌히 비행기를 예약해주셨다.
근무가 끝나면 컴퓨터 앞에 앉아 한참을 검색하며, 그곳의 물가는 어떤지, 어떻게 이동을 해야 할지, 어디서 자야 할지 동선을 짜다 보니 금방 전역을 해버렸고, 정신을 차려보니 기내식을 먹고 있었다. 52일짜리 여행의 시작은 마드리드였다.
유럽에 가보지 않더라도 익히 알려진 것이 소매치기다.
나는 카메라를 위한 가방이 따로 있어, 다른 사람들보다 더 예민하게 굴었다.
공항에서 곧장 마드리드의 번화가인 Sol 역에 내렸는데, 시위가 있는 것 마냥 사람들이 넘쳤다.
예민함은 곧 공포로 바뀌었고, 이베리아 반도 한복판에 낙오가 된 기분이었다.
처음 걷는 길, 뜻 모를 스페인어, 다양한 얼굴색을 가진 사람들.
가슴에 달린 가방과 연결된 핸드폰을 쥐어 잡고 짐 가방의 바퀴를 묵묵히 굴렸다.
유럽은 돌 길이 그렇게 많다는데, 정말 그랬다.
바퀴가 돌 틈에 들어갔다 나왔다를 반복하며 내는 노랫소리는
고속도로에서 졸음을 쫓아내던 달콤한 노래가 아니라,
공포영화에서 듣던 소름 끼치는 소리처럼 들렸다.
그만큼 긴장했고, 가까스로 숙소에 도착했을 때 오금이 뜨거웠다.
처음으로 먼 곳으로 떠난지라, 많은 정보가 필요했다.
그래서 선택했던 나의 첫 번째 숙소는 한인민박이었다. 마드리드에 거주하는 아주머니께서
한국인 손님들을 맞이하는, 일종의 민박집이었다.
하얗게 질린 나를 보며 아주머니께서는 차가운 맥주를 주셨다.
알코올의 힘은 대단했다.
읽지도 못할 말들로 가득 찬 형광색 캔에 들어있던 맥주는,
"혹시 짐을 놓고 나가면 소매치기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니까 괜찮지 않을까?"라는
환상을 만들어 주었다.
어차피 저녁도 해결해야 하니까 나가봐야 한다고 합리화하며, 차가운 맥주가 속에서 따뜻해지는 것을 느끼며 인파 속으로 들어갔다.
인파를 헤치며 발길이 닿은 곳은 산 미겔 시장이었다.
생전 처음 보는 음식들로 가득 찼던 이곳에서 눈이 잔뜩 커졌다.
하몽이며, 처음 보는 샌드위치며, 주문은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고, 가격은 한국에서 알아간 것보다 훨씬 비쌌다.
첫날부터 지출을 과하게 할 수 없다며 망설이며 돌아다니다가, 별다른 소득 없이 숙소로 돌아왔다.
이날 저녁은 특별히 먹지 못했고, 숙소에서 머물던 사람들끼리 아주머니께서 제공한 과자에 맥주를 먹었는데, 숙소로 돌아온 이후 다시 나가지 못한 것은 자존심이 상했기 때문이다.
갓 전역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잔뜩 묻어있었는데, 공항에서 숙소로 오면서 잔뜩 위축되어 있었고, 알코올의 힘으로도 저녁을 해결하기 위한 용기가 생기지 않았다. 알코올이 준 용기는 문 밖을 나서는 정도였다.
이렇게 상처 받은 마음을 다시 알코올의 힘에 의존해 숙소 사람들에게 털어놨다.
지금은 20살도 많이 가는 유럽이지만, 당시에 갓 전역한 학생은 어딜 가도 까마득하게 어린 편이어서 많은 격려를 받을 수 있었다. 격려 속에 잠들 준비를 하자, 새삼 14시간이나 날아왔구나 싶었고, 뜨거웠던 오금은 어느새 식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