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의 옛 수도, 톨레도
스페인에서 작별할 때 인사는 두 가지가 있다고 한다. 하나는 "chao", 다른 하나는 "adios."
스페인에서 만난 사람들은 모두 "chao"라고 했다. 그 차이는 무엇일까?
숙소가 왕궁 앞에 있어, 낮의 마드리드 거리는 눈으로도 안전함이 느껴졌다.
그리고 날씨가 좋아 마드리드에 오면 꼭 가보고 싶었던, 톨레도를 가기로 결심했다.
톨레도는 1560년 스페인 통일 왕국의 펠리프 2세가 마드리드로 수도를 옮기기 전까지
이베리아 반도의 중심이었고, 무려 기원전 193년 로마제국이 정복한 도시로 기록될 정도로
아주 오래된 도시다. 그래서 도시 전체가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왕자의 게임에 빠져 유럽으로 떠났던 나는, 극의 배경과 유사한 과거의 유럽에 흠뻑 빠지고 싶었다.
지하철을 타고 마드리드의 중앙역 격인 아토차 역에 도착했다.
유럽에서는 기차를 타고 여행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연착도 잦고 조금은 계획이 없는 여행도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유레일 패스'라는 것을 한국에서 사서 가져갔다.
종류는 다양한데, 내가 산 패스의 종류는 2달 동안 유럽 전역의 기차를 마음껏 탈 수 있었다.
역 사무실에 가서 오늘부터 패스를 쓰겠다고 하면 역무원이 날짜를 작성하고 역의 도장을 찍어준다.
패스 하단에는 출발하는 역과 도착하는 역, 시간을 적을 수 있는데, 기차에 탑승하기 전 작성하고 역무원이 표 검사를 할 때 여권과 함께 내밀면 됐다.
하지만 일부 노선의 경우 패스가 있어도 티켓을 따로 구매를 해야 했는데, 마드리드와 톨레도의 노선이 그랬다.
패스가 있으면 그저 조금 할인되는 정도의 가격이었지만, 떨리는 마음을 줄이지는 않았다.
당시에는 니스 테러와 파리 테러가 일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유럽 전역에서 테러에 대한 경각심이 대단했다. 기차를 타기 전에 짐 검사를 공항처럼 했는데, 카메라들은 항상 경찰들의 이목을 끌었다.
모든 짐을 끌러서 하나하나 어떤 장비인지 설명해야 했고, 의심의 눈초리로 하나씩 만지고 나서야 플랫폼으로 갈 수 있었다.
스페인의 고속철도는 오리처럼 생겼다. 프랑스의 TGV를 가져와 우리나라의 KTX가 되었다는데,
그 디자인을 생각하면 AVE는 참 못생겼다. 그래도 괜히 마음이 가는 것은 미운 놈 떡 하나 더 주는 심정이었을 것이다. 안전을 생각하는 마음은 알지만, 마음 급한 여행자는 짐 검사에서 조금 지쳐버렸기 때문이다.
아토차역에서 톨레도 역까지는 불과 30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유럽에서 기차를 타면 항상 볼 수 있다는 넓은 들판과 간간히 들리는 스페인어를 즐겼다.
후에 교환학생으로 프랑스에 머물면서도 느낀 것은, 유럽에서는 기차를 타면 핸드폰이
정말 안 터지는 것이다.
심지어 유럽 통신사의 유심을 써도 마찬가지인데, 답답함이 있지만 잠시나마 아날로그를 겪게 해주는 것도 유럽의 매력일 것이다.
멋스럽게 단정된 톨레도 역을 나와 20분 정도 걸었다. 강을 잇는 다리를 건너고, 수많은 계단을 지나자,
톨레도의 메인 광장인 소코도베르 광장에 도착했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알록달록한 광장에
정말 많은 인파가 모여있었다. 일본인, 중국인, 독일인, 프랑스인, 모두가 어우러져 각자의 여행을 즐기고 있었다.
로마시대 이전부터 존재하던 역사적인 공간에, 지구의 단면을 볼 수 있다니 참으로 마음이 따뜻해지는 순간이었다.
사진에서 보이는 빨간 기차모양의 부스에서는 톨레도를 둘러볼 수 있는 관광 열차를 탑승할 수 있는 표를 판매했다. 톨레도의 명물인 이 기차는, 도보로 이동하는 관광객은 갈 수 없는, 톨레도의 절벽을 간다.
그래서 모든 여행객들은 이 기차를 타기 위해 줄을 섰고, 나도 무려 1시간이나 줄을 서서야 겨우 기차를 탈 수 있었다.
기차는 훌륭했다. 다양한 언어로 가이드가 됐는데, 자리 앞에 마련된 10가지의 버튼 옆에는 각 나라의 국기가 있어, 어떤 버튼을 눌러야 할지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사실, 가이드는 중요하지 않았다. 이미 눈으로, 귀로, 피부로 느껴지는 톨레도는 많은 말을 하지 않아도 들려주는 것이 많았기 때문이다.
기차는 금세 톨레도의 반을 돌아, 한 절벽을 향해 나아갔다.
탁 트인 경치 앞에 기차는 멈췄고, 기차를 몰던 기사 아저씨는 "Five minute!"을 외쳤다.
5분을 줄 테니 신나게 사진을 찍고 오라는 말이었고, 나는 신나게 내렸다.
정말 날씨가 다했다. 여행을 갔을 때 날씨가 좋으면 모든 것을 용서할 수 있다.
그런데 가고 싶던 도시에 날씨까지 완벽하다니. 복도 이런 복이 없었다.
절벽에서 톨레도를 바라보며, 다시 광장으로 돌아가면 어디로 발걸음을 옮길지 결심했다.
유럽 도시에는 꼭 있는 '대성당'을 갔다. 종교가 없어서 그렇게 감흥이 있지는 않았고,
기억에 남은 톨레도는 '골목 도시'였다. 정말 오래된 골목들이 끝없이 이어졌고, 미로에 들어간 것처럼 돌아다녔다. 조금 지칠 때면 언제나 작은 구멍가게가 나왔고, 어제저녁 숙소 사람들에게 속풀이를 해서인지
"Hola!"라고 인사하는 아주머니에게 나도 "Hola!"를 외칠 수 있었다.
콜라 하나를 쥐고 씩씩하게 한참을 골목을 돌아다니고서야 다시 마드리드로 향했다.
당연히, 짐 검사를 다시 했다.
못생긴 AVE는 나를 다시 따뜻한 민박집으로 돌려보냈고, 다음 행선지를 고민하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