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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옙히 May 30. 2021

[알바;썰] 국물떡볶이에 빠지다

3년의 기록

국물떡볶이에 빠지면 답이 없다.


전역 직후 몇 개의 단기 아르바이트를 하고(이 이야기는 다음에!), 유럽 여행을 52일간 다녀온 뒤 구한 아르바이트가 바로 국물떡볶이 집이었다. 가게 이름이 '일국화'여서 사실 지원하고서 술집인 줄 알았다. 아르바이트 경력이 화려한 것도 아니고, 가게에서 일해본 적도 없어서 설마 면접 보자고 하겠냐 하는 마음으로 지원했는데 덜컥 연락이 왔다. 집에서는 걸어서 20분 거리여서 산책하듯이 갔었다. 


떡볶이 집이라 당황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알바몬에 등록한 가게 이름이 '일국화'고, 서빙을 하게 될 거라고만 적혀있어서 몰랐다. 가게 이름의 뜻은 '일방통행 국물떡볶이 화덕피자'이다. 여기서부터 왠지 끌렸다. 푸근한 사장님의 인상을 보며 여기서 일하게 되려나 싶었는데, 다행히 연락이 왔다. 사장님께서는 3명을 면접 봤는데, 나를 보자마자 써야겠다고 생각하셨단다. 나는 이때까지만 해도 3년을 일할 줄은 전혀 몰랐다.


2017년, 학교에 복학한 후 1년 내내 일했다. 주 5일 마감으로 시작하다가 사장님의 제안에 맞춰 주 3일이나 주말 근무를 하기도 했다. 심지어 가게가 바쁘거나 주방에 계셨던 삼촌의 개인적인 문제로 9일 동안 13시간씩 연달아 일한 적도 있었다. 아직도 사장님은 이때를 고맙게 생각하시며 장난스럽게 말했던 부탁을 하나 들어주셨다. 그 정도로 친해진 사장님과의 추억이 담긴 가게여서 지난주에도 다녀왔다. 떡볶이 가게의 특징보다 음식점 아르바이트의 특징에 대해  적어보고자 한다.


▲ 당시 가게에서 팔던 국물떡볶이와 화덕피자.


1. 음식 냄새와 비위는 세금과 같은 존재

음식점에서 일하는 순간 포기해야 하는 것이 있는데, 바로 아르바이트 끝난 후 약속이다. 몸에서 음식 냄새가 빠지지 않는다. 특히 머리카락에서 심하다. 이외에도 당연하겠지만 비위가 좀 강해야 한다. 사람들이 먹고 남은 음식을 치우며 손에 묻거나 직접 집어야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2. 빠른 눈치가 필요해

우선 시작은 나와 사장님, 주방 삼촌과 이모. 이렇게 4명이서 일을 했다. 각자의 포지션이 있었는데, 일의 순서를 빠른 눈치로 알아야 한다. 단순히 서빙을 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쯤 주문이 들어가면 주방에서 어떤 일을 시작할 것이고 홀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나므로 나는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머릿속으로 계속 생각해야 한다. 가끔 손이 모자라 사장님께서 다른 학생을 단기로 고용하기도 했었는데, 이런 생각 없이 일을 하다 보니 그냥 서있다가 부르면 그제야 일을 하곤 했다. 이러면 음식점에서 스스로 아주 피곤해진다. 가게는 테이블이 11개였지만 하루 매출이 무려 300만 원이 나올 때도 있었다. 입장하려고 기다리는 사람들과 이미 식사를 마친 사람들, 테이블을 치우기도 전에 들어와서 이 자리에 앉을 테니 치워달라는 사람들까지. 얽힌 동선 속에서 모두를 만족시키려면 의외로 서빙 아르바이트의 역할이 중요하다. 


3. 진상 손님에 대해 관대해야

카페도 마찬가지지만 음식점은 주로 사람들이 편한 마음으로 온다. 호텔 레스토랑을 가는 것과 집 앞 김밥집을 가는 것의 차이라고 보면 될 것 같다. 그래서 사람들도 내게 그렇게 큰 기대를 하지는 않지만, 종종 이상한 손님이 있긴 하다. 지금 당장 기억에 남는 손님은, 할아버지였는데 고르곤졸라 피자를 시킨 후 막걸리를 달라고 하셨다. 막걸리는 매장에 없으니 다른 주류를 선택해달라고 말씀드리자 사 오라며 돈을 얼굴에 던지셨다. 나랑 사장님은 이런 경우에 너무 익숙해져 버려서 편의점에서 1500원에 막걸리를 사 오고 할아버지한테 5000원을 받아버렸다. 

다른 손님으로는 자주 보는 유형의 손님인데, 꼭 치우지 않은 자리에 가서 치우길 기다리는 유형이다. 예를 들어 11개의 테이블 중 방금 한 테이블이 나가서 10개의 테이블이 비어있고 1개의 테이블을 치워야 하는 상황인데 이런 유형의 손님은 꼭 이 자리에 앉겠다며 빨리 치워달라고 재촉한다. 보통 창가 자리의 테이블에서 일어나는 상황이긴 한데, 놀랍게도 하루에 한 번은 보이는 유형이다. 이거 진상 행동이다. 본인만 모르는.

출장뷔페를 하며 아이 기저귀에 대해 생겼던 마음에 대해 말했던 적이 있는데, 떡볶이 집에서는 다른 것으로 아이들이 싫었다. 다행히 일하는 내내 뜨거운 국물에 데거나 다친 아이는 없었지만, 아이는 거의 반드시 바닥에 음식과 포크, 접시를 흘렸다. 나는 일을 하며 아이가 떨어트린 음식, 포크, 접시를 줍는 어른을 본 적이 손에 꼽는다. 10명 중 9명은 절대 치우지 않으며, 심지어 어떤 부모는 아이에게 "저 아저씨가 치울 거야"라고 말을 했었다. 참고로 '저 아저씨'는 나를 말했다.

이 외에도 호텔 수준의 서비스를 원하거나 말도 안 되는 요구를 하는 경우도 많았지만, 하다 보니 그러려니 해지는 관대함을 갖게 되었다. 사람들은 이상하게 음식점에 들어서면 자신들이 무슨 행동을 하고 있는지 잊을 때가 많은 것 같다.


4. 사장님과의 친분

가게가 작고 워낙 바쁘다 보니 서빙 일 뿐만 아니라 주방의 재료 준비나 심지어 조리에도 내가 관여했었다. 국물떡볶이 제작 과정이 워낙 단순하다 보니 큰 기술이 필요했던 것은 아니라 가능했던 일이다. 그렇게 사장님이 급하게 불러도 일을 다 해주다 보니 많은 사랑을 받았다. 가게에 일이 생겨 부득이하게 9일 동안 매일 13시간씩 일을 했었는데, 사장님께서 이 부분에 아주 고마워하셨고 일이 끝나면 삼겹살이나 국밥을 계속 사주셨다. 나는 장난으로 막 대형 SUV를 풀옵션으로 뽑으신 사장님에게 차를 하루 빌려달라 했는데, 정말 빌려주셔서 친구들이랑 당일치기로 강화도 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 

항상 나의 시급은 다른 아르바이트보다 500원 높았다. 또한, 나는 주급으로 돈을 받아서 가계부를 쓰는 맛이 있었다. 스케줄도 내가 바빠지면 마음대로 조정할 수 있었는데, 지나고 보니 이 모든 것이 사장님의 배려였다. 며칠 전에도 제주도로 여행을 가셨다고 해서 연락도 할 만큼 가까운 사이가 되어버렸다. 이런 경우는 드물지만, 모든 아르바이트는 사실 돈만큼 일하는 환경이 중요하다.



▲ 내가 만든 메뉴판.

사장님과 친분이 있다 보니, 편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이 많았다. 가게에 오는 손님이 주로 젊은 주부와 유아였는데, 아이를 위한 메뉴가 부족했다. 이 점을 사장님에게 어필했는데, 귀담아 들어주셨고 짜장 떡볶이라는 메뉴가 추가되었다. 테이블 배치도 함께 고민하고, 광고를 전공했기에 나에게 어떤 식으로 손님에게 혜택을 주는 게 매출에 도움이 될지 물어보셨다. 이런 과정은 광고학도에게 굉장히 큰 경험이었다. 가게 매출을 투명하게 공개해주셔서 더 많은 이야기를 드릴 수 있었는데, 실제로 아이디어가 메뉴에 반영된 후 월 매출이 20% 늘었다. 아마 인턴 같은 것을 해도 이런 살아있는 경험을 하지는 못할 터였다.


너무 가게가 마음에 들어서 과 후배와 함께 일하고 싶다고 추천했다. 그 후배도 일을 하더니 마음에 든다며 내 일한 지 1년째 됐을 때부터 내가 나오고 1년 뒤까지 3년 넘게 일했다. 인복이 많은 사장님이다. 식사도 내게 전적으로 일임하셔서 먹고 싶은 메뉴를 잔뜩 만들고, 심심하면 사리로 가지고 있던 쫄면과 라면을 이용해 간식을 만들었다. 시험기간이면 테이블 하나에 앉아 손님이 없으면 공부도 하게 해 주셨다. 음료수도 마음대로 먹을 수 있었는데, 생맥주를 먹으면 본인도 한 잔 달라고 잔을 내밀던 사장님이었다. 2017년부터 2019년까지 내 지갑을 책임졌던 가게가 항상 잘 되길 바랄 뿐이다.


■ 음식점 서빙

장점 : 단순한 업무, 쉬운 스케줄링, 편한 분위기

단점 : 음식 냄새, 다수의 진상 손님

급여 : 6,500원 (2017년) ~ 9,000원 (201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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