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공채 신입 7회, 6년을 낭비하고야 진로가 잘못됨을 깨닫다
올해 7월 중순, 내 경력 중 가장 오랜 기간인 일 년 반을 다닌 회사를 퇴사했다. 처음으로 퇴직금을 받아보기도 했다. 퇴직금은 보통 직전 월급 3달 분의 평균치를 지급하는 것으로 아는데, 이것에 기본급뿐만이 아닌 성과급을 비롯한 제수당이 모두 포함되는 줄은 받고 나서야 알았지만 그로 인해 근속기간 대비 꽤 많은 돈이 들어와서 기분이 좋았다.
위 회사를 퇴사하게 된 이유는 다름이 아닌 처음 취업을 하던 6년 전부터 꼭 일해보고 싶었던, 내게는 그야말로 궁극의 목표이자 직장인으로서의 최종 지향점이었던 다른 회사에 합격하게 되어서인데 놀랍게도 글을 쓰는 지금 나는 퇴사 전 마지막 휴가를 강제로 녹여내며 약 한 달 반만에 자유인으로 돌아가기 직전인 상황이다. 어쩌다 이렇게 된 것일까? 스스로도 궁금한 터라 그 동안 물경력만 쫓아온 '만년 신입사원'의 약 6년간의 과거를 뒤돌아보며 그 이유를 찾아보고자 한다.
일반적인 회사원들은 신입을 7번씩이나 하지는 않을 것이다. 아무리 중고신입이 판치는 요즘의 직장가라고 해도, 7번이나 신입을 하는 것은 대기업 공채 기준으로 한 해 상/하반기 2번을 뽑는 회사라고 한들 최소 3년의 경력을 갖다 버리는 미친 짓이기 때문이다. 이는 모두 6개월 단위로 칼이직을 하는 사람이었을 때의 기준이지, 만일 그렇지 않다면 그 기간은 3년이 아니라 배 이상 늘어날 수도 있는 법이다.
돌아보면 이는 내가 회사원으로서 적성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로 채용때 가장 기피되는 것이 나처럼 근속기간이 짧고 여러 회사를 전전하는 사람이고, 나와 같은 사람을 볼 때 면접관들은 대부분 이 사람이 향후 회사를 오래 다니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여 탈락시키는 것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운이 좋은 것인지 혹은 면접에서는 정말 그것을 감안하고 뽑을 만한 매력 덩어리 지원자로 보이는 것인지 그 정확한 이유는 알 길이 없지만 나는 계속해서 회사를 신입으로 별 문제없이 옮길 수 있었고 심지어 산업이나 직무 마저 여러 번 바꾸며 이직을 했다.
담배, 석유화학, 정유, 홈쇼핑, 지주회사, 통신사, 자동차회사 총 7개의 산업군에서 영업관리, MD, 재무회계, 마케팅 직무로 일해보았지만 결국 그 어디에도 내가 있을 자리는 없었다. 적은 규모의 회사들이 아니기에 그 곳에 다니는 많은 사람들에게는 썩 다닐 만한 곳이라고 나름의 인정을 받은 회사들이겠지만, 나 같은 경우 다니는 동안 가끔 일회성의 쾌락이 느껴지는 하루는 종종 있을지언정 진정한 의미의 지속적인 행복을 느낀 적은 근속 기간 동안 애석하게도 단 한 번도 없었던 것 같다.
이 과정을 지나오며 내 스스로도 그랬으며 주변 사람들도 모두 나와 조직 생활은 맞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고, 나 역시 이미 첫 회사부터 마음 깊은 곳에서는 그렇게 느끼고 있었다. 그럼에도 나는 마치 호랑이 등에 탄 사람처럼 더 이상 내 의지로 내리지 못하고 이 비극적인 신입 공채의 수레바퀴 속에서 인생을 낭비해왔다. 하지만 마지막에 목표하던 회사에 늦게나마 합격해보니, 드디어 인생을 지금이나마 제대로 바로잡아 볼 용기와 자기 객관화가 이루어진 것 같다. 정말이지 불행이자 다행이다.
이미 지나간 날들은 솔직히 허송세월이다. 경제학적으로 보면 매몰비용인 셈인데, 매몰비용에는 다시 눈길도 안주는 것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가는 경제적 인간으로서의 유일무이한 합리적 판단이겠으나 매몰비용이 된 이 쓰레기 속에 혹시 나도 모르고 넣어둔 지고의 가치가 있을까 하여 내 지난 6년의 과거를 반추하며 내게 도움될 옥석을 가려내고, 동시에 내가 울고 웃었던 한국 기업문화의 여러 부분을 나름대로 분석해보고자 한다. 더불어, 앞으로 내가 말하고자 하는 '문화'에는 좁은 의미의 '조직문화'뿐만 아니라 넓은 의미의 문화로서 직제규정, 법리적 내용 등을 포함한 우리나라의 기업환경 전반에 걸친 내용 역시 포함될 것이라는 점을 미리 밝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