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만년신입 Aug 25. 2023

왜 주말에 전화를 받아야 하나요?

첫 회사가 만들어 낸 비현실적 기대

우리나라는 주5일제를 채택하고 있고, 주 40시간의 소정근로시간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대부분의 직장인이 아는 상식일 것이다. 주 35시간제를 택하고 있는 신세계그룹, 한 달에 한 번 '놀금'을 가지고 있는 카카오 등 복리후생의 개념으로 약간의 예외나 차이는 있을지언정 기본적으로 대한민국의 회사는 한 주에 영업일 5일 동안 40시간을 근무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내 첫 사회생활은 자동차업계에서의 인턴십이었다. 몇년 전 나는 약 4개월 간 한국의 5개 자동차 제조사 중 한 곳에서 B2B영업 직무의 인턴사원으로 근무했다. 지금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제조산업의 B2B 영업직군이라면 높은 확률로 경직된 관료제 체계와 느린 의사결정, 규정된 제도 이상으로 강하게 근태를 잡으려 드는 관리자가 저절로 떠올려진다. 이것이 나뿐만이 아니라 해당 산업군에 대해 많은 직장인들이 가지고 있는 스테레오타입이자 일부는 사실이기도 한 부분인데, 놀랍게도 외국계라는 특성상 이 회사에서는 그러한 특성이 하나도 발현되지 않았다.


내가 속한 팀은 소위 특판 수요라고 하는 정부/기업/공공기관 등을 상대로 한 번에 여러 대의 자동차를 'Fleet'으로 파는 업무를 하는 팀이었는데, 내수 영업이 대부분임에도 불구하고 직속 부문임원 및 팀장까지 윗선이 모두 미국 백인이었다. 아무래도 미국에서 파견나온 본사 직원들이라 그랬는지 그들은 철저하게 실적이 뒷받침된다면 직원들이 현장 출근이나 퇴근을 자유롭게 하도록 허용했고, 한국 회사에서는 대부분의 상사가 요구하는 출근 시간 10~20분 전 자리 착석이나 퇴근 시간 전에 짐을 정리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등의 요구는 전무했다.


휴가는 문자의 의미 그대로 자유로웠으며, 협의나 결재 없이 통보하는 연차 휴가 외에 별도의 하계휴가 역시 다른 대기업처럼 주어졌고 심지어는 미국인 관리자들이 귀향하는 추수감사절이나 크리스마스 때는 특별휴가가 별도로 주어져 전 직원이 휴무하는 경우도 있었다. 미국 본사를 꼭 거쳐야 하는 사업기획, 한국 영업시장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지지만 관리자는 백인이 차지하는 등의 단점도 있는 조직이었지만 근태에 대해서는 근로기준법과 취업규칙에 위배되는 내용이 아니면 기술적으로 자유로운 곳이었다.


여기서 첫 사회생활을 하니 당해 하반기에 나는 졸업 후 내가 정규직으로 처음 입사한 회사 역시 규모를 고려하면 비슷한 수준의 문화를 가졌을 거라고 예측했었다. 사실 인턴십 말미에 담당 팀장님께서


"OO씨, 다른 회사도 우리 회사에서 하는 것처럼 생활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절대 안 돼."


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이것이 미리 미래를 예측하게 해주는 진실의 입이었다는 것을 당시 나는 전혀 알지못했다.


이를 모르는 나는 상술한 인턴십을 겪고 입사한 다음 근무처에서 근로시간과 관련하여 이상과 현실의 엄청난 괴리를 느끼게 되었다. 당시 나는 통신사에 입사했는데, 그룹 연수를 받고 첫 배치 받은 부서가 지사의 B2C 영업 조직이었다. 통신사의 서비스와 단말을 대신 판매해주는 대리점들을 권역별로 담당하는 지사의 영업관리자로서 10개월 정도 일을 했었는데, 당시 첫 출근 때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부서 배치 후 처음 출근하는 날이라 9시 출근임에도 8시 40분쯤 갔었던 것 같은데, 당시 나를 보고 지사장이 처음 한 말은 "왜 이리 늦게 오냐."라는 말이었다. 몇 년 지나지 않았지만 요즘에는 사실 8시 40분 정도면 적절하거나 빨리 온 편임에도 불구하고, 그 시기에 내가 8시 40분에 출근했을 때는 모든 선배들이 다 자리에 앉아서 이미 업무를 보고 있는 상태였다.


퇴근도 마찬가지였다. 우리가 상대하는 고객인 통신대리점들은 19시~21시까지도 영업을 하니, 18시에 퇴근을 하더라도 그 이후에 오는 전화에 집에 가서도 응대하는 것을 당연시하는 문화였기에 사실상 퇴근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러한 상황에 대해서 지사장에게 조심스럽게 힘들다고 얘기해도 돌아오는 말은 이러했다.


"9시에 업무를 시작하려면 9시에는 현장 대리점에 도착을 해야 한다. 따라서 지사의 아침 조회나 업무 준비를 생각하면 1시간 정도는 빨리 와야 업무에 차질이 없다."


"대리점 영업이 잘되어야 너랑 지사의 실적도 오르게 되어 있다. 통신 영업이 아니더라도 영업하는 사람은 주말에 전화 받는 것을 과도한 업무 지시로 여기지 말아야 한다."


이 말을 듣고 당시 나는 전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직장을 다니는 이유는 모름지기 돈이 첫 번째 이유이고, 법적으로 일을 하면 그에 대한 대가를 받는 것이 당연한 것인데 엄연히 '업무'인 전화 응대를 어떻게 근무시간이 아닌 주말에 하라는 것인지 납득이 가지 않았다. 하물며 주말근무 내역을 인사시스템에 올리고 합당한 수당을 수령한다면 모를까 말이다. 내가 한 생각은 논리적으로 맞는 말이지만, 현실 사회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관리자가 아니더라도 이런 엄격한 관점을 내세울 시 저 사람은 세상 혼자 사는 줄 알고 사회생활 못하는 '프로불편러'라 비난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럼에도 나는 묻고싶다. 정녕 이 생각이 피곤할지언정 틀렸다고 할 수 있는가?


돌이켜보면 지사장의 말은 현실적으로 주말에 전화 응대는 산발적으로 일어나고, 출퇴근 앞 뒤로의 30분 ~ 1시간 정도의 초과 근무는 일일이 근태 처리를 하면 까탈스럽고 측정이 어려우니 받아들이라는 말이었던 것 같다.


일부 일리가 있는 말이다. 근무시간의 측정은 엄밀하게 하려면 끝도 없는 문제가 될 수 있고, 제대로 측정하려면 그 시스템을 구축하는데 많은 비용이 들 수도 있는 문제이다. 또한 근로기준법과 취업규칙 등에서도 규정하지 못해 정답이 없고 불분명한 '그레이 존(Gray Zone)'들도 많다. 그리고 업무분장에 없더라도 현실적으로는 누군가 해야 하는 공역의 일들도 매우 많은 것이 현실이다. 그리고 이를 어떻게 처리할지는 회사, 국가, 부서장이나 직원 등 각 주체마다 다를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우리나라에서는 이러한 그레이존들이 기업에게 유리한 쪽으로 결론이 나있는 것 같다. 위에서 내가 공유한 경험이 대표적인 그레이존이고, 해당 통신사는 이를 비용을 들여 시스템으로 해결하려고 하지 않고 개인 선의에 기대어 직원의 무상노동으로 대체하는 방식으로 '관습화'하고 있었던 것이다. 반면 외국에서 나는 이와 사뭇 다른 경험을 한 적이 있다. 과거 나는 프랑스를 여행할 때 그 곳의 마트 체인인 까르푸(Carrefour)를 방문했는데, 점원이 계산하다 말고 바로 유니폼을 벗더니 자기 업무 시간이 끝났다며 그대로 나가버리는 것을 보았다. 결국 나는 그 자리에서 30분을 기다린 후 계산을 할 수 있었다.


이는 우리나라 마트에서는 절대로 겪을 수 없는 일이다. 마트처럼 조별 근무를 하는 경우에도 우리나라에서는 앞 조가 뒷 조 사람들이 환복 후 출근할 때 까지 잠깐의 시간을 무상으로 봐주고 교대를 한다. 이를 보통 기업에서 '근무준비시간'이라고 하는데, 엄밀히 말하면 이는 무상으로 노동을 제공해서는 안 되는 엄연한 '근로시간'이다.


근로기준법 제 50조 2항을 보면 근로자가 사용자의 관리/감독 아래 있는 대기시간은 근로시간으로 본다고 나와 있다. 위의 근무준비시간 역시 대기시간의 일종으로 볼 수가 있다. 사무실은 더욱 사용자의 관리 역할을 대리하는 관리자가 상주하기에, 20분 조기 출근이나 30분 지연 퇴근은 모두 근무시간이라고 볼 수 있다. 더불어 내가 근무했던 회사들은 대기업이었기에, 근무시간 역시 IT시스템으로 초단위까지 산정이 되고 있으니 대기시간 측정에 더 할 나위 없이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대부분의 기업에서는 관리자들이 자체적으로 출근 후 출근 기록을 늦게 찍게 하거나, 퇴근 기록을 빨리 찍고 짐을 챙기게 하는 등의 부조리가 일어나고 있다.


놀라운 것은 기업의 대외적인 표명 입장은 정시 출근, 정시 퇴근이라는 점이다. 윗선의 의중은 모르지만 이것이 진짜라면, 중간 관리자들과 고참급 선배들이 자체적으로 이러한 '로컬 룰(Local Rule)'을 만들어서 이런 부조리한 일을 강요한다는 것이다. 심지어 그들 역시 사용자가 아니라 같은 근로자이고 누군가의 감독을 받는 사람들인데도 말이다.


나 역시 프랑스에서 점원이 고객인 나를 두고 퇴근해버렸을 때 굉장히 불편했다. 하지만 불편해도 그것이 원칙이고 옳은 것임을 부정할 수는 없다. 최근 화두가 되는 '공정', '정의'에 부합하는 것이 프랑스와 통신사에서의 내 일화 중 어느 쪽인지는 두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대한민국 기업들이 공유하는 회사문화의 첫 번째 단점이다.


미리 말했듯 놀랍게도 많은 기업은 내외부에서 공식적으로 정시출퇴근을 권하고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이러한 부조리가 상존하는 것은 C레벨이 아닌 중간 관리자나 고참급 선배들의 수평폭력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이를 바꾸기 위해서는 사용자 측이 아닌 같은 근로자 측에서도 서로 업무상 불편이 있더라도 원칙을 지키고 부조리를 대물림하지 않으려는 노력을 하는 것이 그 무엇보다 필수적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전 01화 지난 6년을 돌아보며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