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神)도 버린 사람들, '막내'
유튜브를 보다보면 종종 쿠팡플레이 시리즈의 'MZ오피스' 영상이 뜨고는 한다. 애초에 MZ세대라는 말 자체가 이치에 맞는 말도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이전 직장까지의 꽤 많은 데이터를 귀납적으로 전부 돌아봐도 나는 위 영상에 나오는 유형의 사람을 거의 본 적이 없다. 설령 내가 그런 사람을 우연히 못 본 것이거나 영상물이라는 특성상 가상의 상황을 가정한 것이라 하더라도 특정 세대를 도매금으로 묶어서 편견을 조장한다는 점에서 분명히 비판의 소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영상에 나오듯 우리나라의 기업과 그 조직 내부에는 '막내'라는 역할이 있다. 비공식 조직이 아닌 공식적/기능적 조직인 기업에서 연공서열에 기반한 막내라는 역할이 있는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다. 최근 영어 이름과 직급 철폐를 통해서 모두 수평적으로 부르는 캠페인을 하는 조직이 많이 생겨났지만, 그런 조직조차 업무적으로는 결국 기존에 이미 연공서열에 따라 나누어 둔 막내 업무를 담당하는 실질적인 막내가 존재하는 것이 대부분일 것이다.
막내가 주로 하는 일은 가장 밑단의 취합을 비롯해 노동집약적 성격이 강한 단순 업무가 대부분이다. 이 업무들의 공통점은 시간을 많이 잡아먹고, 잘해야 본전이라는 점이다. 이들은 업무 흐름도에서 가장 후행하는 업무이기 때문에, 먼저 완성된 자료를 선임들이 보내주기 전까지는 양식 수정 정도 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따라서 업무 시간이 늘어질 수밖에 없다. 더불어 쏟아지는 선행 자료들을 취합 양식에 옮기다가 실수해서 잘못 붙여넣는 등 실수하게 되었을 때는 크게 혼나게 된다. 요는 창의성을 통한 독창성을 보여주는 업무와는 거리가 있고, 기존의 것을 효율적으로 운영하는 업무이므로 틀리지 않는 것이 곧 잘하는 것이 되는 일이란 의미이다.
물론 업무적으로 방금 들어온 신입사원에게 거대한 기획서를 맡기고, 엄연히 직급과 직책이 있는 거대 조직에서 전가의 보도를 휘두르듯이 이제 시작하는 사람에게 큰 책임을 부여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다. 학생 때 전학을 가서 새로운 학급의 분위기에 적응하는 것만해도 긴 시간이 걸리는데, 돈을 받고 업무를 하는 회사에서 본인에게 부여된 역할에 적응하는 것은 그 이상으로 힘들 수밖에 없다. 따라서 나 역시 처음에는 기존의 시스템에 익숙해지는 것이 신입사원에게도 조직에게도 유리한 방향이라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대기업의 경우, 내가 있었던 7개사와 어느덧 빠른 사람은 과장 직급까지 도달한 내 지인들이 다니는 기업을 전반적으로 탐문해본 결과 이는 기존 사원이라고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대기업이라는 카테고리는 너무나도 커서 똑같이 대기업으로 분류되는 기업끼리도 규모가 크게 차이나는 경우도 있지만, 공정거래위원회에서 지정하는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에 속하는 기업(소위 우리나라에서 'OO그룹'하는 기업들)은 아무리 작아도 대부분의 계열사 임직원이 수 천명을 넘기 때문에 개인이 아닌 시스템으로 돌아가는 구조이다. 따라서 그 누가 온다고 한들 본인의 독창성을 발휘할 부분은 극히 미미하며 신입이든 누구든 본인에게 부여된 직무의 제한된 업무를 단순하고 노동집약적 방식으로 똑같이 하게 되어있다. 애초에 공채라는 제도 역시 거기에 부합하는 사람을 뽑는 구조로 되어있기도 하다.
이런 조직에서는 능력의 차이를 보여주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연공서열이 곧 능력과 권력이 될 수밖에 없다. 권력을 가진 기존 사원 역시도 실수를 함에도 이것을 신입이 지적할 수는 없지만, 신입이 실수를 하면 기존 사원은 이를 지적하고 심지어 혼내는 것마저 가능하다. 그런데 이렇게 지적하고 혼내는 것도 결국은 개인의 판단에 따른다. 다시 말해서 기존 사원 중에는 본인이 틀렸는데도 틀린 줄도 모르고 신입을 잘못 가르치거나 혼날 일이 아닌데도 훈계를 하는 경우가 생길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잘못 배운 신입사원이 또 다음 신입사원을 잘못 가르치고 혼내는 악순환이 반복되게 된다. 놀랍게도 이는 대기업에서 교조적으로 추구하는 효율성과 효과성을 저해하는 아주 부정적인 일이다. 현실적으로 모든 상사가 완벽할 가능성은 없기 때문에 이는 부분적으로라도 일어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나름 6년의 회사 생활을 했으나 타인의 잘못은 지적해도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상사는 거의 본 적이 없다. 사람이기에 실수할 수밖에 없지만 이를 인정하는 사람은 단언컨대 없다. 윗 사람의 실수와 책임은 아래로 내려가 소멸하고, 아랫 사람의 성과와 명예는 역으로 위로 올라가 쌓인다.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관료제 조직이다. 그러다보면 어느 순간 막내는 항상 가르침을 받아야 하고 때로는 혼나며 아직은 배워야 하는 사람이 되고, 기존 사원은 막내보다는 무조건적으로 낫기에 그 자리에 있고 아랫사람을 당연히 가르칠 권한이 있는 사람이 된다. 그 자리에 있음이 능력을 담보하지 않음에도 그 자리에 있는 것이 당위적으로 그 능력을 담보하는 것처럼 여겨진다. 이렇다 보니 나는 조직생활을 하며 이런 구조에서는 어쩌다 특출난 사람이 들어와도 조직 내에서 두각을 나타낼 기회 없이 '막내'질을 하다가 어느 순간 조직에 동화되고 창의성은 사라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내 생각에 기업을 넘어 공공기관이나 정부까지도 우리 사회에서는 '막내'라는 개념이 너무나 공고화되어 있어 이제와서 조직에서 열심히 바로잡으려고 한들 늦었다는 생각이 든다. 아닌 말로 입사를 준비하는 취업준비생부터 회사에 들어가면 그 즉시 과할 정도로 예의바르고, 테이블에서는 나서서 휴지를 깔며, 부여하는 업무는 종류 불문 수용적 태도로 일관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실제로 오자마자 다들 너무나도 능숙하게 그러한 행동을 보인다. 나는 이것이 너무나도 슬프다. 이제는 기업에서 신입사원에게 기존 사원들과 다른 아이디어를 제시하고 본인의 개성을 보여달라고 해도 신입이 알아서 본인의 개성을 죽이고 들어오는 지경이 되어버린 것이다.
가장 오래 다닌 담배회사에서 영업관리 업무를 할 때 지사장은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OO씨, 기존 사원들은 같은 일을 오래 해서 보이는 것만 계속 보게 되니, OO씨가 그런 것에 구애받지 말고 새로운 시선으로 관찰해주면 좋겠어."
동시에 이렇게도 말했다.
"하지만 업무적으로는 그렇게 하되 세대 차이 극복을 위해서 선배들이랑 좀 어울리려고 노력하고, 회식도 큰 일이 없을 시 웬만하면 참여해주고, 먼저 인사도 좀 하고 그러면 좋겠어."
언뜻 보면 업무와 직장 관계를 동시에 잡은 최고의 코칭으로 보이지만, 이는 최악의 코칭이다. 일단 직장 관계도 업무의 일환이다. 결국 직장에서 만난 사이면 회식이든 개인 약속으로 만나든 하는 얘기는 직장 이야기이다. 선배가 하는 직장 이야기에는 선배의 가치관이 강하게 녹아 있다. 그러한 이야기를 들으면 선입견이 안 생길 수가 없다. 아무리 노력해도 직장 선배와의 회식은 대학시절에 했던 수평적인 토론처럼 이루어질 수가 없다. 수용적인 태도로 앉아서 철저하게 리스너의 역할을 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문화에서 성장했는데 업무를 할 때만 자신의 개성을 보이는 것은 이중인격이 아닌 이상 불가능하다.
신입사원을 소위 '풀어주면' 형식화된 조직에서 버릇없어 보일 수 있음을 안다. 나는 막내로서 했던 일인데 후배에게는 막내라고 일을 몰아주면 안 된다고 말하면 보상심리가 생길 수 있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조직의 입맛에 맞게 가지치기 당한 막내 및 예비 막내들에게 이제 와서 창의성을 요구하는 것은 바보 짓이라는 것을 더욱 잘 안다. 농담이 아니라 나는 이렇기에 우리나라에서 시장선도적 기업이 나오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한국 기업 중에서 톱클래스라고 하는 삼성전자조차도 패스트 팔로잉(Fast Following) 전략을 고수하는 이유가 따로 있을까 싶다. 고치기에는 이미 너무 늦은, 그리고 논리적으로는 기업에서 존재하면 안 될 '막내' 개념이 바로 내가 말하고자 하는 대한민국 기업문화의 두 번째 단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