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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연화 Feb 12. 2024

알아서 할게


 나만의 낭만과 로망을 이루기 위해 살아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그러한 것들을 삶에 중요한 가치로 두고 산다. 한 번 사는 인생, 해보고 싶은 걸 하면서 살아야 하지 않나.

 

 나만의 것일 뿐인데 그것으로 인하여 남에게 피해를 준 적이 심심치 않게 있다. 오랜 시간을 만난 남자 친구와 헤어지고 나서 커피를 마신 적이 있다. 오래전 일이지만, 정확하게 기억나는 한 문장이 있다.

 

 “나는 너랑 사진 찍는 게 힘들었어.”

 

 이게 무슨 말인가. 함께하는 몇 년 동안 여행지마다 삼각대를 들고 다니며 사진을 찍었는데 그걸 왜 이제야 말한단 말인가 싶으면서도, 많이 참아줬구나 싶어 미안했다.


 그 후로는 사진을 잘 찍지 않는 시니컬한 여자가 되었다. 혼자서는 몇십 장이고 찍지만, 누가 찍어주거나 함께 찍을 때는 몇 장 찍고 벌떡 일어나 됐어! 하고 외친다. 원래부터 사진 찍는 거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 듯. 우리가 함께 있다는 정도만 보이면 된다며 쿨하게 찍은 사진을 보지도 않고 주머니에 폰을 집어넣는다. 상대가 잘 나왔는지 확인해 보라고 하면 됐다며 손사래를 치고는 집에 가서 확인한다.

 

 이번 생일에는 혼자 있길 자처했다. 나만의 낭만을 스스로 해소하고 싶었다. 나의 것이니 누구의 손을 빌리지 않고, 알아서. 남에게 서슴없이 기대하고, 한치의 부끄러움도 못 느끼고 서운해하는 일을 저지르고 싶지 않았다.

 

 “자기의 일은 스스로 하자.”

 

 친구네 집에 놀러 갔을 때 빨래를 너는 친구에게 우스갯소리로 말한 적이 있다. 물론 장난이었지만, 친구는 단단히 삐졌다. 또 언젠가 전 애인에게도 말한 적이 있다. 선명히 기억나지 않지만, 도와달라는 말이었을 텐데 음까지 넣어 기가 막히게 불러주니, 얼굴이 그렇게 어두울 수가 없었다.

 

 타인에게는 두 번 다시 하지 않을 이야기지만, 나에게는 말하고 싶다. 내 일은 알아서 하자. 누군가 나의 삶에 대해 한 마디 얹는다면, 그때도.

  

“알아서 할게.”

 

 새벽의 고요와 상쾌를 맞이하는 듯 개운하다가도 이내 쓸쓸함이 밀려든다. 모든 걸 알아서 하겠다는 태도는 무엇이든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자유를 얻지만, 무슨 일이든 알아서 책임져야 한다는 고독이 깃든다. 그럼에도, 선택한다. 알아서 하기로.

 

 바라건대 내 곁에 있는 이들도 알아서 살길 바란다. 아까의 장난처럼 알아서 하라며 도와주지 않겠다는 의미가 아니다.

 도움을 청하면 언제든 기꺼이 도와줄 테지만, 자유롭지만 외롭고, 그렇지만 성장하며 살길 바라서다. 동거견에게는 무엇이든 해줄 테지만, 그 밖의 사람들에게는 꼭 필요한 도움만을 준다. 가족도 예외는 없다. 무너지지 않도록 지지선의 역할은 해주겠지만, 편히 날아오를 수 있도록 그들 밑에서 밀어줄 생각은 없다.

 나 역시 타인의 힘으로 높이 올라갈 생각도 없고. 우연한 기회로 높이 올라갔다가 추락한다면, 다시 올라갈 방법을 모를 테지 않나.

 

 너무 차갑게 바라보지 않으면 고맙겠다. 나를 위해 알아서 살다가도, 남을 위해 도울 준비하는 것이니까. 알아서 살겠다 결심해야 제 인생을 잘 헤쳐 나갈 테고, 그래야만 타인을 도울 여유도 생기는 것이 아닌가. 어찌 보면 나를 키워내느라 이러한 생각을 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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