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독
피곤하면 생각이 없어진다는데 꼭 그렇지만도 않은가 보다. 생각이 많아서 피곤한 건지, 피곤해서 생각이 많은 건지. 수산시장에 간신히 두 눈만 뜬 채 내다 팔린 조기마냥 공허한 눈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Very good for non-native English speakers.” 그의 악의 없는 말이 씁쓸하게 맴돌았다. 아무리 잘해도 non-native speaker의 껍질을 벗을 수 없음을 찔려서 그랬을까. 허울뿐인 숫자에 집착하는 내가 싫지만, 그것이 내 가치의 전부인 것만 같아 극도로 운동하고 극도로 먹지 않는다. 계절마다 찾아오는 이 병적인 순환이 다시 시작된 건 아닐까 두렵다.
각성 상태로 레일 위를 달리는 것과 소멸 직전까지 나를 태우는 것의 경계를 구분하지 못해 혼란스러운 요즘이다. 말하지 않으면 입 열지 않는 그에게 헛된 기대를 품었던 시간들이 공중으로 흩어지고, 마지막 학기를 스스로가 만족할 정도로 성취감 있게 보내지 못하는 것 같아 조급하다. 그렇지만, 사실, 네가 뭐에 만족했겠어. 자격지심의 수렁은 한번 빠지면 좀처럼 나오기가 어렵다.
누구를 만나든 어디를 가든 결핍으로 충만함을 다시금 확인하게 되는 이곳은 미국, 나는 백인뿐 아니라 흑인, 아시아계 미국인, 미국인 유학생보다도 뒤처져 있다는 감각 속에 산다. 언제든지 언어적, 신체적 충돌에 노출될 가능성 속에서 긴장한 채로 살다가 아시아인을 만나면 문득 반가움을 느끼지만, 아시아인 간에도 경제적 배경과 언어적 자본의 계급 차이는 여전하다. 이제는 내가 문제인가 이곳이 문제인가 하는 딜레마에 빠진다.
무엇을 위해 이 여정을 시작했던가. 정말 산티아고의 말처럼 보물은 늘 같은 자리에 있었는데 내가 눈이 멀어 길을 잃은 걸까. 몇 시간을 자도 개운치 못한 아침이라기엔 몇 시간도 자지 못했다. 2시간에 한 번씩 잠에서 깨고, 아직도 가끔 담배 피우는 꿈에 화들짝 놀라 깨어나며, 과거의 망령처럼 떠오르는 얼굴들을 굳이 찾아가 안부를 확인한다. 개운하지 못할 만하네.
생각을 비우려 운동을 한다. 그러나 그 운동마저도 결핍을 메우기 위한 몸부림이라면? 억지로 기도에 욱여넣은 감정들이 토사물처럼 새어 나온다. 피곤하다. 정말, 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