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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제주에서 동굴로 도망간 이유?

멀리서 온 편지_시내 나들이

by Kunucando


오늘은 제주시내에 잠시 볼일이 있어 아침부터 때아닌 분주함이 숙소를 감 쌓다. 그래 봤자 양치질을 하고 간단한 샤워를 하고, 몇 가지 옷을 꺼내에 입는 것이 다 이기는 하지만, 도보 이용 이외에는 운전을 하고 나가는 일이 별로 없는 나로서는 나름 분주한 일상의 시작이다. 관광지나 유명한 곳을 찾아다니는 것을 싫어하거나 외면하는 것은 아니나, 자주 오다 보니 웬만한 관광지는 나름 다 가봤다고 생각하고 그렇지 못한 곳은 가족들과 함께 오면 방문하려 남겨두었다는 표현으로 나의 게으름을 포장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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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던 자동차에 먼지가 살포시 덮여있고, 낡은 자동차에 시동을 걸자, 지금까지 잠들어 있던 시간이 지루했는지 힘찬 엔진 소리를 내며 깨어났다.(좋게 표현해 깨어난 거지, 낡은 자동차의 소음이다..^^) 내가 있는 곳은 남쪽 서귀포 남원읍이기에 제주시까지 넘어가려면 제법 시간이 걸린다.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시겠지만 제주는 동서남북으로 관광권역이 나눠지는데 극성수기가 아닌 이상 제주시 중심가를 제외하고는 막히는 길은 그리 많지 않다. 남북으로 갈리는 길을 택하면 약 한 시간 정도가 걸리는 제법 먼 길이다. 서울에서의 한 시간은 어쩌면 일반적인 시간일 수도 있느냐, 제주도에서의 한 시간은 서울과의 시간에 대한 세법이 다르다. 처음 내려왔을 때만 하더라도, 수줍은 듯 흐린 날과 바람으로 심술부리더니, 이제야 맑은 하늘을 보여주는 제주의 변덕에 감사하며 살포시 창문을 내렸다. 오랜만에(?) 시내 외출이라 창가를 타고 오는 바람도 숙소에서 느꼈던 바람과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숙소의 인근의 길이 바다의 연속이 있다면, 제주시로 가는 길은 아직 정상에 남아있는 눈 덮인 한라산의 자태와 연속된 숲길과 평지가 간간이 섞인 산길이라 봐도 될 듯하다. 어디 가도 관광지의 안내판이 있고, 간간히 쉬어 갈 수 있는 식당과 아기자기한 카페들은 해안가를 돌면서 만날 수 있는 화려한 카페와는 다른 분위기로 자리를 지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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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시의 대로변에 접어들자 만개한 벚꽃길이 펼쳐졌다. 요즘이 제주는 '벚꽃축제'기간이라 들은 것 같기는 했는데, 숙소에는 벚꽃보다는 유채꽃이 펼쳐져 있는 경우가 많아 벚꽃을 쉽게 볼 수 없었다. 운이 좋다면 아직 남아 있는 동백꽃까지 간간히 볼 수 있는 지금의 계절이 난 좋다. 벚꽃, 유채꽃에 동백꽃과 녹음이 시작되는 계절. 언제 와도 좋은 제주이지만, 개인적으로 난 4월과, 11월, 1월이 좋다. 계절이 전해주는 느낌도 좋지만, 가급적이면 한적한 시간에 내려오는 것을 좋아한다.(그래야 다니기도 편하고, 4월을 제외하고는 비향기표도 저렴한 편이라... 1월도 생각보다 춥지 않았던 기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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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서의 일을 마치고 오랜만에 '사려니숲길'에 들렸다.

7~8년 전에 처음 왔을 땐 방문객이 많지 않았는데,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제법 가득한 주차장을 보면서, 아쉬움이 느껴졌다. 마치, 나만 알고 싶은 단골맛집이 너무 유명해져서, 새로 온 직원이 나를 알아보지 못해 드는 서운한 감정(오픈 때부터 사장님하고 친했는데 사장님은 너무 바빠서 건성으로 아는 척하는 그런)

좋은 것을 나누라는 말이 있는데 그렇지 못한 것을 보면 나도 그냥 평범한 범인(凡人) 임은 분명하다. 비자림으로 가득한 숲길을 걷다 보면, 음~ 그냥 좋다. 조금 한적한 분위기를 느끼고 싶긴 했지만, 여고 동창분들인지 동네 모임인지 모를 분들의 깔깔거리는 한 장이라도 더 추억을 남기기 위한 소란스러움, 어디서 왔는지 수학여행 일행으로 보이는 학생들의 허새 가득한 과장된 몸집과 소리를 작은 미소로 넘길 수 있는 시간이 그리 나쁘지 않다. 어쩌면 그러한 소음조차 이 숲에 머물지 말고 하늘로 날려버리라는 곧은 비자림의 메시지가 아닐까 라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배 본다.(ㅋ)_참고로 (폭우 말고) 잔잔한 이슬비 정도가 내릴 때의 사려니숲을 추천한다. 비를 타고 오는 숲의 향기는 다르다. 거기에 멜랑꼴리가 묻어 나오는 숲의 분위기. 물론 더러워진 신발과 젖어버린 몸을 감당할 수 있다면 말이다. 우리 와이프는 싫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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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외출 아닌 외출을 마치고, 숙소로 들어오는 길에 마트에 들렀다.

특별히 뭘 해 먹겠다는 계획은 없지만, 몇 가지 야채와 과일 주전부리를 사가지고

난 다시 나만의 동굴로 들어간다.

인간의 되기 위해 '쑥과 마늘'로 버티는 것은 아니지만, 비워내고, 세상과 붙어 볼 수 있는 힘은 만들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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