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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mmy Jul 06. 2022

2022 터키 여행기 - Day 6 셀축

2022.05.20. 셀축 1일 차 - 에페수스, 쿠사다스


일어나서 씻으면서 창 밖을 보니 구름 낀 하늘 아래 파묵칼레가 보인다. 비가 오진 않는다. 어제 조식을 생각할 때 별로 호텔 조식은 먹고 싶지 않았다. 대신 뒹굴 거리면서 푹 쉬고 짐을 챙겨 호텔을 나섰다. 데니즐리에 있는 버스 정거장까지 가야 하는데 처음으로 돌무쉬라는 미니 버스를 타기로 했다. 버스 정거장에서 기다리면서 건너편을 보니 동네 빵집이 있었다. 빵이 맛있을 것 같아서 가보니 아침 빵이 많이 나와있다. 참깨 베이글과 플레인 베이글을 하나 사들고 돌아와서 버스를 기다리면서 뜯어먹었다.


돌무쉬를 타고 도착한 데니즐리에서 고속버스로 갈아타고 4시간 정도 달려 셀축에 도착했다. 고속버스 안에서는 간간히 과자나 탄산음료를 나눠주는데 나름 만족스러운 서비스였다. 아침을 걸러서 출출한 차에 탄산음료와 과자가 참 맛있었다. 예보와 달리 비는 거의 내리지 않았지만 하늘은 계속 흐렸다. 셀축은 이제까지 주로 돌아다녔던 돌무더기나 스텝이 아니라 농지와 숲으로 둘러싸인 푸른 도시였다. 가로수로는 오렌지 나무가 있어서 꼭 지중해의 그리스라고 해도 믿을 것 같은 분위기의 도시였다. 셀축 숙소도 오토가르 바로 건너편이라 금방 도착했다. 체크인하려면 청소를 기다려야 한다고 하길래 근처 식당을 검색해서 방문했다.


Selcuk pidecisi라는 곳이었는데, 셀축 피자 꼬치라는 이름이 아주 직관적이다. 메뉴판의 콜라 가격을 보니 아주 저렴한 축에 속하는 식당이었다. 터키 피자인 피데를 처음으로 하나 주문하면서 추천받은 쾨프테를 시켰다. 버스 안에서의 나른함을 한 번에 날려버릴 정도로 맛있었다. 피데는 처음 먹어보는데 치즈 향이 너무 풍부했다. 터키는 치즈나 요거트 매니아에게는 행복한 나라임에 틀림없다. 쾨프테도 이제까지 먹어본 평범한 구이와 달리 고추와 양파 그리고 토마토가 들어간 소스 위에서 구워져서 서빙되었는데 매콤한 맛이 소고기 맛을 감싸주며 식욕을 돋운다. 식사를 하고 있는데 이 동네 중고등학생들이 몰려와서 음식들을 주문한다. 역시 중고등학생이 모이는 식당이 진짜 동네 맛집인 것 같다. 호텔 바로 앞이라서 기회가 되면 한 번 더 오자고 했지만 기회가 없었다. 지금도 아쉽다.

식사를 하고 돌아오니 방이 준비되어 있어서 방에 짐을 놓고 에페수스 구경을 떠났다. 지도를 보니 왠지 걸어갈 수 있을 것 같아서 걷기 시작했다. 힘들다 싶으면 바로 택시나 돌무쉬를 타려고 했는데 산책로가 잘 되어 있다. 고속도로 옆에 이어지는 아름드리 가로수 아래 그늘에 자전거 길을 겸해서 산책로가 만들어져 있었다. 아마 고속도로가 생기기 전에는 이 길이 메인 도로였을 것 같다. 천천히 걸어가는 동안 구름 낀 날씨가 점점 맑아지기 시작했지만 그늘 아래 있어서 에페수스에 도착할 때까지 서늘했다.


에페수스에 거의 도착했을 무렵, 산책로에서 하이웨이를 건너야 했다. 어떻게 건너야 하나 고민하고 있는데, 지나가던 돌무쉬에서 사람이 내리더니 눈치를 보고 건너간다. 건너가는 사람을 보면서 용기를 얻어서 우리도 건넜다. 시내에서 에페수스로 갈 때도 돌무쉬를 탈 수 있겠구나 싶었다. 천천히 걸어오는 내내 맑아진 하늘은 에페스를 구경할 때는 푸른 하늘 반 하얀 구름 반이었다. 관광 마차가 대기하고 있는 주차장을 지나 유적 입구로 들어가서 바로 있는 극장을 구경하고 있는데, 이곳 극장이 히에라폴리스보다는 조금 작지만 보통이 아닌 규모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극장에 앉아있는 터키 청년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박수를 치면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모두가 아는 노래인지 옆에 앉은 다른 무리들도 다 함께 신나게 부르는 것이었다. 터키 국가인가? 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터키의 국부라고 할 수 있는 무스타파 케말의 노래라고 한다. 마침 우리가 에페스를 방문한 날이 무스타파 케말과 관련이 있는 젊은이의 날이라고 한다.


길을 걷는데 뜬금없이 거북이가 한 마리 기어간다. 맙소사 이제는 강아지, 고양이를 넘어서 거북이라니! 갈라파고스에 살 법한 육지 거북이는 의외로 빠르게 기어서 시야에서 사라졌다. 애완용 거북이 같은데 탈출한 걸까? 이 부근에 돌봐주는 주인이 있을까?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거북이의 출현이 신선했다.


거북이 사진을 찍고 고개를 들자 치즈 냥이가 유적 위에 자리를 잡고 자고 있다. 터키를 여행하면서 만족스러운 점이 많았지만 그중에 한 포인트는 고양이와 개가 아닐까 싶다. 동물에게 관대한 문화 덕인지 개와 고양이는 모두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고 딱히 귀찮게 굴지도 않는다. 자연스럽게 자기 할 일을 하고 가끔 서로 정을 나누는 거리감을 유지하고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늘 봐오던 길 고양이와 들개들의 사람을 경계하는 태도가 떠올라서 마음이 조금 안 좋았다. 아마도 어린 시절부터 사람과 관계 맺는 방법이 완전히 다르기 때문일 것 같은데 문화적인 차이인 만큼 변하기 어려울 것 같다.


거북이와 고양이를 뒤로 하고 아고다를 지나서 도시를 천천히 구경하면서 유적 안쪽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갔다. 터키 여행 사진에서 벌룬 사진 다음으로 유명한 사진 포인트인 탑수스 도서관에 도착했다. 사람들이 정말 많다. 벽 건너편에 해가 있어서 역광이 되고 만다. 이 탑수스 도서관 벽에서 사진을 제대로 찍으려면 비수기에 아침 일찍 와야 할 것 같다. 그래도 틈을 비집고 앵글을 잡아서 사진을 찍고 찍어주면서 시간을 보냈다.

어제 파묵칼레에서는 햇볕에 타 죽을 것 같은 느낌이었는데 오늘의 햇볕은 훨씬 자비로운 느낌이다. 아마도 구름 속에 잠깐식 햇볕이 들어갈 때도 있고 건물이 많아서 중간중간 그늘에서 쉴 수 있어서인 것 같다. 히에라폴리스와 달리 유적이 빼곡하게 자리해 있어 심심할 틈이 없다. 구석구석 천천히 구경하면서 돌아다니는데, 고등학생 정도로 보이는 미국인이 갑자기 ‘Go Pats’를 외친다. 웃으면서 손을 흔들어주자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카메라를 받아서 나와 J 씨 사진을 찍어준다. 옆에 있던 여자애가 사진이 마음에 안 드는지 카메라를 찍어서 다시 찍어준다. 아마도 그날 입고 있는 티셔츠가 NFL팀 티셔츠라서 그런 모양이다. 사실 나는 그냥 우연히 구해서 입은 건데, 속이지 않았지만 속인 기분이 들었다.


예전엔 시내 중심가였을 길에 마차 바퀴 포대로 홈이 있는 로마식 가도의 흔적이 있었다. 폼페이를 걷던 때가 떠올랐다. 개발은 그리스가 했지만 로마시대에도 번성했던 도시라고 하니 비슷하게 보이는 것 같다. 다만 폼페이와는 달리 이곳은 아래쪽 흔적은 대부분 남아 있지만 위쪽 건물은 흔적이 별로 없다. 아마 오랜 세월의 풍화와 지진 탓일 것이다. 끝까지 천천히 보고 돌아오는데 오늘도 많은 학생들과 같이 사진을 찍었다. 터키에서 한국인이라는 이유 하나로 이런 환대를 받다니 별로 현실 감각이 들지 않는다.


에페수스 구경을 거의 마치고 나올 때쯤 구석 풀밭에 있는 풀이 밀인 것을 발견했다. 5월에 여물어 가는 밀을 보니 겨울 밀로 심었거나, 자연스럽게 자라고 있는 밀 같았다. 밀밭을 고대 로마에서 천국의 개념으로 사용했다는 이야기를 나누면서 밀밭에서 사진을 찍었다. 햇볕과 구름이 절묘해서 예쁜 사진을 여러 장 찍을 수 있었다.

다시 호텔로 돌아가기 위해서 천천히 걸어서 주차장까지 돌아왔다. J 씨는 에페수스 유적이 마음에 들었는지 상점에서 마그넷을 하나 더 산다. 원래 여행 하나에 마그넷 하나라는데, 터키는 마음에 들었는지 서너 개 사갈 기세다. 셀축으로 돌아가는 돌무쉬를 알아보다가 즉흥적으로 쿠사다스에 가보고 싶어졌다. 지금 시간으로 볼 때 운이 좋다면 바다로 해가 지는 것을 볼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주차장에 있는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쿠사다스에 가는 돌무쉬는 우리가 고속도로를 건넜던 지점으로 돌아가면 탈 수 있다고 한다. 왔던 길을 거슬러 돌아가는데 길 옆 초원에 본 관광 마차들을 끌던 말들이 퇴근해서 풀밭에서 풀을 뜯고 있었다.


하이웨이 근처에 갔을 때 돌무쉬가 도착해서 서있다. 건너야 하는데, 돌무쉬 기사 아저씨가 천천히 건너라는 듯이 손을 흔들어준다. 눈치를 보고 건너서 버스에 탔다. 터키 사람들이 원래 친절한 걸까 우리가 운이 좋아서 친절한 사람들만 만나고 있는 것일까? 터키 여행 내내 만났던 터키인들은 극히 일부를 제외하면 선의를 가진 친절한 사람들이었다. 배차 간격이 꽤 있을 텐데 기다리지 않고 버스를 탄덕에 금방 쿠사다스에 도착할 수 있었다. 원래 해안의 휴양도시인듯한 쿠사다스는 활기찬 분위기였다. 휴일이라 그럴까? 길과 가게에 사람들이 가득하다. 지나가다 선물 가게가 있어서 들어가 보니 가격이 눈이 돌아갈 가격이다. 지인들에게 선물할 과자와 큐민가루를 샀다. 샤프란이 있어서 혹시나 하고 가격을 물어봤는데 귀를 의심할 가격이었다. 일단 두 봉지를 구매했는데, 가격 듣고 황급히 한 봉지 더 챙기는 내 표정을 보고 점원 웃는걸 J 씨가 봤다고 했다. 좀 없어 보였으려나?


급하게 찾은 Erzincan이라는 식당으로 가는데 공사라도 하는 듯이 어수선한 모습이다. 그런데 아저씨 한 명이 어떻게 알아봤는지 우리가 찾는 식당 이름을 말하면서 방향을 가르쳐준다. 생각보다 규모가 큰 식당이었는데 콜라 지수에 따르면 중간 정도 가격대로 보였다. 자리에 앉아서 음식을 주문했다. 빵 반죽을 즉석에서 전동 롤러로 밀어서 화덕 오븐에서 구워줬다. 기본 빵임에도 빵만 계속 먹고 싶다. 꼭 피자 도우 반죽을 얇게 펴서 구워서 안쪽에 공기가 찬 공갈빵 같은 모습이었다. 결국 메인 코스가 나오기도 전에 빵을 거의 다 먹어버렸다. 쇠고기 캐서롤과 특제 케밥을 시켰는데, 특제 케밥이 특이하다. 하얀 토르티야에 구운 고기를 싸서 소스를 뿌려서 서빙되었는데, 뭐라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밸런스가 좋다.


식사를 마치자 일몰 시간이 대략 15분 정도 남았다. 석양을 볼 수 있을법한 포인트를 찾아 걷기 시작했다. 오스만튀르크 시절의 성 주변에서 보면 멋있을 것 같아서 근처까지 갔는데 제방 너머에 성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성 위에서 보기보다는 성이 보이는 곳에서 일몰을 보는 게 좋겠다고 생각돼서 장소를 찾는데, 제방 아래에 작은 자갈 해변이 눈에 띈다. 바로 자리를 잡고 앉았다. 일부러 타이밍이라도 맞춘 듯이 자리에 앉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해가 지기 시작한다.


사진을 몇 장 찍고 있는데 근처에서 낚시를 하던 아저씨들이 낚시를 접고 위스키를 마시기 시작한다. 싱글몰트 위스키가 반가워서 내가 좋아하는 위스키라고 J 씨에게 이야기하고 있는데, 위스키 이름을 말하는 것을 들었는지 아저씨가 우리를 부른다. 그리고는 한잔 가득히 따라주고 얼음과 초콜릿까지 나눠줬다. 눈물 나게 고마웠다. 안 그래도 행복한 시간이 기대하지 않은 친절에 훨씬 더 소중해졌다. 석양과 함께 천천히 한잔을 다 마시고 돌아가려는데 한잔을 더 권한다. 약간 부담스러울 정도의 친절이 너무 고마웠다. 한 잔 마저 마시고 나오면서 다짐했다. 내가 서울에서든 어디서든 관광객을 만나면 내가 베풀 수 있는 친절은 꼭 베풀어야겠다. 내 입장에서는 별게 아닐 수 있지만 친절을 받는 사람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추억이 될 테니까 말이다.


이미 떨어진 해가 만든 핑크빛 하늘을 즐기면서 돌무쉬 정거장까지 느긋하게 걸었다. 항구 주변은 주말이라 사람들이 많이 나와있다. 자세히 보니 한편에 유람선이 와있는데 거기서도 많은 관광객들이 나와있는 것 같았다. 환상적인 분위기였다. 예전에 나폴리 두오모 근처를 혼자 걷던 밤이 떠올라서 J 씨에게 이야기해줬다. 그날도 오늘만큼이나 환상적인 저녁이었고 너무 운이 좋은 것 같아서 다음 날 아말피 해안 자전거 라이딩이 걱정스러웠다고 이야기했다. 그날 너무 운이 좋은 것 같아서 유서 대신 영수증 뒷면에 친구 전화번호와 내게 무슨 일이 생기면 어머니를 사랑했다고 전해달라고 적어두고 자전거를 탔다. 중간에 공원에서 개들이 뼈를 놓고 싸우는 활극을 구경하기도 하면서 느긋히 돌무쉬 정거장까지 돌아오니 이미 밤이 되었다. 잠시 후 도착한 돌무쉬에서 가벼운 취기와 함께 기분 좋게 J 씨와 하루의 행복함을 다시 공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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