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5.21. 이스탄불 1일차 - 호텔의 난
거의 일주일 만에 이스탄불 공항에 돌아왔다. 이스탄불 시내까지 꽤 거리가 있다고 하는데 걱정이다. 콘스탄티노플이 있던 역사지구 안쪽에 호텔을 잡았는데, 길을 검색하니 리무진 버스가 가장 괜찮아 보인다. 버스표를 사고 줄에 섰다. 지정석이 있는 것이 아니라 순서대로 타는 스타일인데, 아무래도 사람이 많다 보니까 버스를 놓치는 것이 걱정스럽다. 어떤 할아버지가 새치기하는 것을 목격하기도 하고 난리도 아니다. 우여곡절 끝에 버스를 타고 시내를 향해 출발한다. 시내로 들어가면서 보이는 언덕 위에 있는 모스크와 콘스탄티노플 성벽을 보자 드디어 터키에 온 것이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사실 괴레메는 지구가 아닌 듯한 인상이었고, 파묵칼레나 셀축은 상상 속의 그리스에 가까운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가 내려야 할 정거장이 아직 멀었는데 모든 승객이 내려야 한다고 한다. 알고 보니 이 버스는 심야를 제외하면 단축 운영을 하고 있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마지막 몇 정거장은 트램 길로 가야 하는데 낮에는 트램이 운행하기 때문에 트램 노선 전에 모두 내려주는 것이었다. 예상치 못한 곳에 갑자기 떨궈진 우리는 호텔로 가는 길을 검색하기 시작한다.
택시들이 열심히 호객하고 있다. 호객을 하는 만큼 바가지를 씌울 것 같아서 무시하고 트램을 타기로 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냥 택시를 탔어도 나쁘지 않은 가격에 도착했을 것 같다. 트램을 타기 위해서는 표나 교통카드가 필요해서 자판기로 갔다. 그런데 이 자판기가 참 아날로그적이다. 지폐를 한 장만 투입할 수 있고 거스름돈도 없다. 환전한 돈이 애매해서 교통카드를 한 장 밖에 살 수 없었다. 다른 한 장을 구매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기까지 이런저런 부질없는 시도를 하고 있는 사이에 자판기에 줄이 길어진다. 청소하는 아저씨가 무슨 일인지 물어보더니 짧은 영어로 한 장으로 둘이 탈 수 있다고 가르쳐준다. 우여곡절 끝에 트램에 탑승했는데, 반대 방향으로 탑승했다. J 씨가 방향이 맞냐고 물어보기까지 했는데, 잘못 탄 것이다. 게다가 잘못 탄 트램 안에서 치한이 J 씨를 더듬고 갔다고 한다. 너무 미안했다. 트램을 갈아타고 목적지로 향할 때는 특히 주의해서 자리를 잡았다.
트램 역에서 내리니 10분 정도 걸으면 호텔에 도착할 수 있을 것 같다. 석양과 함께 어두워져 가는 길은 약간 슬럼 같은 느낌이었다. 나중에 남대문 시장 뒤편 느낌이라는 것을 이해했지만 좁은 언덕길로 구멍가게들이 잔뜩 있는 곳에 사람과 차들이 섞여서 무질서하게 흘러가는 모습은 초행길인 우리 불안감을 자극했다. 언덕길에 노면도 고르지 않아 캐리어를 끌고 있는 우리들은 힘들게 호텔에 도착했다.
호텔에 도착하자 우리 이름을 확인하고는 반갑게 맞아준다. 근처 관광 방법에 대해 천천히 안내한다. 그런데 갑자기 문제가 하나 있는데 사실문제가 아니라고 한다. 한 층 아래에 방이 있고 내일 방을 옮겨준다고 한다. 살짝 기분이 싸했지만 시간이 9시에 가까운 시간이 시간인지라 안내받은 방으로 들어갔다. 반지하 방이다. 일단 이동에 지친 몸을 달래 보려고 씻으러 화장실에 들어갔는데, 문이 닫히지 않는다. 살펴보니 휴지도 제대로 없다. 좀 이상해서 로비로 가서 정말 방이 이것밖에 없는지 물어보고 화장지를 받아온다. 받아오면서 보니 반대편이 창고이다. 아무래도 객실로 쓰기보다는 일하는 사람 숙소로 쓰는 방 같다. 하지만 지금 호텔을 다시 구하기도 간단하지 않은 상황이고 잠만 자면 되니 그냥 자기로 했다. 그렇다 어쩌면 룸 컨디션 따위 호텔 주인의 문제는 아니었던 것이다. 이동과 트램에서의 트러블 게다가 지하 호텔 방 때문에 J 씨 기분이 엉망인 것 같다. 저녁을 먹으러 나가자고 하는데 그냥 늘어질 기세다. 식욕이 없어도 뭐라도 집어넣으면 기분이 좋아지지 않을까 싶어서 설득해서 호텔을 나선다.
10분 정도 거리에 있는 Mivan 레스토랑을 향해 걸었다. 가는 길에 공원이 있고 공원 건너편에 카드 하우스로 보이는 찻집이 잔뜩 있다. 안에서는 담배 연기 자욱하게 뭔가 수상한 분위기의 사람들이 게임에 열중하고 있다. 조금 불안했다. 둘 다 착 가라앉은 상태로 레스토랑에 도착했다. 근사해 보이는 레스토랑은 자리가 없어 잠시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분위기가 좋아서 기꺼이 기다리기로 하고 메뉴를 고르는데 생선을 시켜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생선과 믹스드 케밥을 주문했다. 이윽고 자리에 안내받아서 앉아서 기본 빵을 뜯어먹기 시작했다. 화덕에서 갓 구운 흰 빵이었는데 맛있는 빵이라면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이 빵은 또 별미이다. 찍어먹을 드레싱도 토마토, 요거트, 야채 등 세 가지가 나와서 걸신들린 듯이 먹어치웠다. 다 먹자마자 새로운 빵으로 리필되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주문한 생선과 믹스드 케밥이 나왔는데 절묘한 맛이다. 여러 번 먹어본 믹스드 케밥 중에 여기서 먹은 믹스드 케밥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맛있는 음식 덕에 J 씨의 표정이 조금 좋아졌다. 마음이 좀 놓인다 싶었다. 식사를 거의 다 마칠 때쯤 길 고양이들이 들어와서 음식 구걸을 시작했는데 건너편 테이블 아저씨가 립을 하나 크게 썰어서 준다. 나는 못 봤는데, J 씨 말에 따르면 고양이가 어마어마한 애교를 부렸다고 한다. 고기를 바로 먹지 않고 한 바퀴를 돌고 나서 다리에 다시 부비적 한 후에 먹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잔치가 시작된 것을 예감했는지 길고양이들이 모여든다. 주인아저씨가 몇 번인가 쫓아내기도 했지만 인심 좋은 몇몇 테이블 덕에 고양이들은 우리가 나갈 때까지 들락 날락거리기를 반복했다. 고양이들을 보는 J 씨의 표정도 완전히 밝아져 있다. 오면서 본 수상한 길도 돌아오면서 보니 현지 느낌 물씬 느껴지는 동네 길이다. 역시 마음먹기 나름일까? 사실 다음날 낮에 걸어갔을 때는 또 완전히 다른 분위기였으니 받아들이는 사람의 문제였을 지도 모르겠다.
호텔에 돌아와서 J 씨가 세면대 장을 열어보니 여기 원래 살던 직원이 쓰던 물건들인지 대용량 샴푸 등 물건들이 들어있다. 마음먹기 따라서 다르게 보인 다곤 하지만 이건 좀 아닌 것 같아서 샤워를 마치자 다시 한번 로비로 올라가서 정말 지금 쓸 수 있는 가장 좋은 방인지 한번 더 물어본다. 내 분노가 조금은 전달되었는지, 처음으로 미안하다고 말한다. 내일 아침에는 배정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을 배정해준다고 다시 한번 말한다. 지금 분노하는 것은 전혀 생산적이지 않으니, 내일을 위해서 방에 돌아와서 잠을 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