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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mmy Jul 05. 2022

2022 터키 여행기 - Day 0

2022.05.13. 출발일

금요일 밤 11시 비행이라 J씨와 나는 원래는 각자 근무를 마치고 공항버스로 공항에서 만나기로 했다. 공항버스 시간을 확인하려고 지도 어플을 보니 공항버스 도착 예정시간이 없는 것 같다. 알아보니 코로나 영향으로 공항 이용객이 줄어서 공항버스가 대부분 운항 중지 상태다. 그래서 J씨는 사무실에서 출발해서 중간에 부모님 차로 이동하고, 나는 전철로 이동하기로 했다. 전철로 인천 공항에 가는 건 얼마만일까? 오랜만이기도 하고 새로운 세상이라 변수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평소와 달리 넉넉하게 공항으로 출발했다. 일찍 출발한 덕에 8시 반쯤 공항에 도착했다. 터키 항공 카운터를 찾아서 근처에 자리를 잡고 기다린다. J씨와 비슷하게 도착하도록 출발했지만 J씨 아버지의 운전과 관련된 몇 가지 해프닝이 있었던 모양이다. 예상한 시간보다 대략 2-30분 정도 J씨가 늦게 오고 있다고 한다. 기다리고 있는데 주변에 망원 렌즈가 달린 카메라를 든 사람들이 눈에 띈다. 아이돌이라도 오는 모양이다. 다만, 아이돌이 들어온다면 입국 게이트 근처가 부산해야 할 텐데 왜 항공사 체크인 데스크 근처에 사람들이 있는지 모르겠다.

출발 전부터 느껴지던 불안감이 적중하는 듯하다. J씨가 보통 부모님과 이야기할 때면 그렇듯이 메시지 답변이 늦다. 이미 내려서 걸어왔다면 왔어야 할 시간이다. 아마도 J씨 부모님이 공항 안쪽까지 배웅을 해주시려는 것 같다. 기다림에 지쳐갈 때쯤 J씨 답변이 왔다. 부모님이 주차장에 차를 대고 같이 올라오신다고 한다. 주차장에서 올라오는 시간도 꽤 걸린다. 오랜 기다림과 쉽지 않은 상황에 평정심이 무너지기 시작한다. 역시 인사를 해야 할까? 인사를 언젠가는 하고 싶긴 하지만 여행 당일에 갑자기 나타나면 J씨 부모님은 더 받아들이기 힘드실 것 같았다. 전략적으로 잘 접근해도 어려운데 이렇게 막무가내로 움직이는 건 자살행위일 것 같다. 이런저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을 때 먼발치에서 J씨 가족의 모습이 나타났다. 사진보다 더 크신 어머니와 J씨 덕분에 한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함께 오시는 아버지의 모습을 지켜보는데 눈이 마주쳤다. 자연스럽게 시선을 돌려보지만 티가 났을지도 모르겠다. J씨와 내가 함께 갔다면 마일리지 등급 덕분에 비즈니스 창구로 가서 바로 체크인이 가능했겠지만, 이코노미 체크인엔 사람이 많다. 또 15분 정도를 기다리며 티켓팅 하는 모습을 곁눈짓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12시간이 넘는 오랜 비행을 따로 가고 싶진 않았기 때문에 좌석을 같이 받을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 고민했다. 메신저로 좌석 위치를 J씨에게 받아서 옆 좌석을 부탁하는 방법, 창구에서 이름을 대고 사정하거나 최악의 상황에는 체크인 게이트에서 나와서 재발권하는 경우도 생각했다.

J씨의 체크인 도중에 예상하지 못한 메시지가 왔다. 내가 함께 예매했던 터키 국내선 예약 정보가 필요한 것 같다. 분명히 메일을 포워드 했던 것 같은데, J씨도 당황해서 못 찾고 있는 것 같다. 중요한 부분만 스크린샷을 찍어서 보낸다. 영원과 같은 오랜 기다림을 끝내고 J씨 가족이 면세 구역으로 향하시자 황급히 터키항공 창구로 갔다. 카운터 직원에게 양해를 구하고 J씨 옆자리로 부탁했는데 의외로 이름만으로 쿨하게 처리해주셨다. 고민했던 터키 국내선 연결 처리도 당연하다는 듯이 진행해주셨다. 다행히 빠르게 자리 문제가 해결된 것을 메시지로 알리고 면세 구역으로 향한다. 아무도 없는 한가한 보안검색대를 지나서 면세 구역에 들어섰다.

J씨에게 연락해 위치를 확인하자 반대편 입구 근처에 있다. 서로 가운데서 만나기로 하고 열심히 걸었다. 한참을 걸어가자 먼발치에서 J씨가 손을 흔든다. 드디어 만났다. 한 시간은 전에 만날 수 있었는데, 걱정이 가득한 시간을 보내고 나서야 이렇게 만날 수 있다니! 아이러니하게 더 반갑게 느껴진다. 서쪽과 동쪽 양 쪽에 있던 라운지는 서쪽 끝에만 운영하고 있었다. 탑승구도 반대편이고 면세점 인도 창구도 반대다. 원래처럼 양쪽 다 있다면 편리할 텐데, 꽤 많이 걸어야 하는 것이 좀 껄끄럽게 느껴진다. 탑승 직전에 면세품을 찾을까 잠깐 생각했지만 목베개를 샀기 때문에 미리 찾아와야겠다. 우선 J씨를 라운지에 데려다주고, 샤워하는 동안에 면세품을 찾아오기로 했다.

아시아나 라운지에 도착해서 J씨에게 샤워실 사용 방법을 설명해주고 라운지에 입장시켰다. 그리고 나는 바로 면세품을 찾으러 걸어갔다. 그런데 한쪽 입구에 카메라를 들고 있던 사람들이 몰려있다. 아무래도 아까부터 보이던 카메라를 들고 있는 사람들은 연예인 팬이었던 모양이다. 면세구역까지 따라 들어온 것을 보면 해외 공연을 따라서 가거나, 사진을 찍고 환송을 한 후에 표를 환불받거나 둘 중 하나일 것 같다. 아이돌 팬들이 탑승할 때 연예인을 만나고 표를 취소해서 문제라는 기사를 본 적이 있었는데, 코로나 시대에도 그렇게 하나 싶다. 곧 보이 그룹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면세구역으로 들어오고 카메라를 든 팬들이 뒤쫓고 있었다. 누군지는 알 수 없었지만 물어보려고 사진을 몇 장 찍었다. 역시나 면세점 인도장에는 손님이 전혀 없다. 바로 물건을 수령해서 다시 라운지로 돌아왔다. 아까 봤던 아이돌 팬 팬들이 라운지 입구에 앉아있다. 아마 그 아이돌이 라운지로 들어간 모양이다. 원래는 샤워 생각이 없었는데 한바탕 걷고 나니 살짝 땀이 났다. 라운지에 들어서서 물어보니 샤워 부스가 꽉 찼다고 한다. 최소한 J씨는 곧 나올 테니, 나오면 빠르게 샤워를 하고 가야겠다. 역시나 아시아나 라운지에는 먹을 음식이 별로 없다. 컵라면과 음료수 몇 개를 먹는데, 아까 본 아이돌이 바로 앞 테이블로 앉는다. 라면을 먹고 좀 기다리니 J씨가 나왔다. 샤워실이 비었다는 연락이 없는 것을 보니, 청소에 시간이 좀 걸리는 모양이다. 면세품 중에서 소소한 선물은 전달하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눴다. 사진을 J씨 친구들에게 보내니 옆에 앉은 아이돌은 엔하이픈이라고 한다.  어쩐지 J씨가 꽤 피곤해 보인다. 이야기도 좀 버거워하는 느낌이다. 아무래도 요 며칠간 잠을 못 자서 그런 것 같다.

탑승 시간이 다 되어가는데도 샤워실엔 자리가 나지 않는다. 혹시나 해서 창구에 물어봤으나 자리가 아직이라고 한다. J씨에게 샤워실 키 이야기를 하는데, J씨에게 아직 샤워실 키가 있었다. 청소에 시간이 걸린 게 아니라 J씨가 키를 돌려주지 않아서 샤워실 하나가 계속 잡혀 있었던 것이었다. 샤워는 포기하고 J씨 키를 돌려주는데 때 마침 자리가 났다. 좀 빡빡하긴 하지만 빠르게 샤워를 하고 나왔다. 다시 탑승 게이트로 걷는데 라스트 콜과 함께 항공 직원이 승객들의 빠른 탑승을 안내하고 다니고 있다. 아마도, 우리가 마지막 손님에 가까운 모양이다. 담배를 피우던 시절, 탑승시간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기다리다가 마지막 담배를 피우고 타곤 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래도 아직은 그때에 비하면 여유가 있는 탑승이었다.

보잉 777이라서 혹시 3-4-3 배열이 아닐까 걱정했지만, 다행히도 3-3-3 배열이다. 터키 항공도 꽤나 서비스에 신경을 쓰는 회사구나 싶다. 자리는 추가 구매를 하지 않은 탓에 가운데 자리였으나, 나머지 한분이 체구가 작은 여자분이라서 다행이다. J씨가 가운데 앉고 내가 바깥쪽에 앉았다. 면세점에서 방금 수령한 목베개를 세팅했다. 기대한 만큼 훌륭한 품질이다. 편하게 갈 수 있을 것 같다. 며칠간 잠을 못 잤다고 하던 J씨는 거의 자리에 앉자마자 잘 자고 있다. 오랜만에 비행이라 그럴까? 잠이 전혀 오지 않는다. 터뷸런스가 꽤나 심하다. 보통은 터뷸런스가 심하면 더 빨리 잠들곤 했는데 오늘은 도움이 전혀 되지 않는다. 터뷸런스가 심해서인지 첫 번째 기내식 서빙이 늦어진 것 같다. 이륙한 지 서너 시간 지나서야 첫 번째 기내식이 나왔다. 기내식 제공에 맞춰서 J씨를 깨웠다. 비빔밥과 생선을 골랐는데 꽤 맛있다. 이코노미 클래스인데도 와인을 주문하자 작은 병에 담긴 와인을 따로 서빙해준다. 식사를 마치자 J씨는 다시 바로 잠들었다. 계속 잠을 자려고 노력했다. 몇 번인가 얕은 잠이 들기도 했지만, 한두 시간이 고작이다. 이렇게 12시간 넘는 비행시간을 버티고 있다. 보통 하던 대로 책을 읽어보기도 하고 눈을 감고 이런저런 생각을 해보기도 한다. 역시나 시간이 꽤 길게 느껴진다.

담배를 피우던 시절에는 담배를 참아야 하는 것이 해외여행의 가장 큰 장벽이었다. 잠도 잘 수 없는 비행시간 내내 금단 증상에 시달려야 한다는 것은 장거리 비행에 대한 큰 심리적 장벽이었다. 게다가 병역이 끝나지 않았던 시기는 해외여행 자체가 부담스러웠다. 매번 단수 여권을 받아야 하는 데, 여권을 신청하기 위해서는 해외여행 허가서를 발급받아야 했다. 지금 생각하면 웃기는 일이지만, 일정 이상의 재산을 가진 보증인까지 지정하지 않으면 해외에 나갈 수도 없는, 잠재적 병역 기피자 취급을 받았던 것을 생각하면 참 씁쓸하다. 비용도 비용이지만 해외여행 허가서를 발급받을 때마다의 더러운 기분 때문에 해외여행은 항상 알게 모르게 심리적인 거부감이 있는 선택지였다. 덕분에 어렸을 때는 해외여행을 별로 가보지 못했다. 후회스럽다. 다른 곳에 쓸 돈을 모아서 모두 여행에 썼으면 좀 더 풍부한 삶을 살았을 것 같다. J씨는 나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곳을 다녀왔다. 시대의 차이도 있겠지만 아무래도 가정환경의 차이가 컸다고 생각한다.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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