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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mmy Jul 05. 2022

2022 터키 여행기 - Day 1 카파도키아

2022.05.14 카파도키아 1일 차 - ATV 투어

고통스러울 정도로 느리게 흐르던 시간이 이스탄불에 다가오자 점점 빠르게 흐르기 시작했다. 착륙을 두 시간 정도 남겨놓고 두 번째 기내식이 나왔다. 가볍게 J씨를 깨워보지만 일어나지 않는다. 간단한 오믈렛이었는데 터키 항공 이코노미 기내식이 우리나라 국적기보다 맛있게 느껴졌다. 혼자 식사를 마치고 이빨을 닦았다. 착륙을 앞둔 부산한 분위기에도 J씨는 잘 자고 있다. 출발 전의 며칠을 불면증에 시달린 탓이겠지만, 지금 이 순간에는 참 부럽다.

기나긴 비행이 끝나고 드디어 이스탄불 공항에 착륙했다. 비행기 출구 바로 앞에 여자분들 몇 명이 서있다. 묘하게 화려한 모습의 사람들이었는데, 크게 신경 쓰지 못하고 지나쳤다. 크다고 듣기는 했지만 이스탄불 공항의 크기는 상상의 범위를 벗어난 정도였다. 걸어도 걸어도 끝이 없다. 빠듯한 효율적인 환승보다는 여유 있고 안전한 환승을 선택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잠시간 화장실에 다녀오니 인천 공항에서 봤던 모습이 다시 펼쳐진다. 입구에 서있던 사람들이 걷고 있고 주변을 사람들이 둘러싸고 걸으면서 카메라로 찍고 있다. 이 사람들도 아이돌 같다. 역시나 사진을 찍어서 J씨 친구들에게 물어보니 아이브라고 한다. 어제의 엔하이픈과 마찬가지로 독일에서 있는 공연에 가고 있나 보다. 비행기 출구에서 잠깐 서있었던 것은 이코노미 클래스의 팬들을 기다리기 위해서인 것 같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요즘 아이돌은 팬클럽 컨텐츠 제공 차원에서 기획사가 팬을 해외 투어에 초대해서 같이 가면서 사진을 찍힌다거나 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아이돌 그룹 근처를 계속 걸어가다가 결국 환승 통로 즈음에서 갈라지게 되었다. 아마 독일 환승 전에 환승 라운지로 들어갔을 것 같다. 반면에 우리 목표는 국내선 라운지였다. 창 밖을 보니 이 거대한 공항의 수많은 게이트에는 모두 터키항공 비행기가 연결되어 있다. 아마도 코로나 때문에 다른 나라 항공기가 줄어들기도 했겠지만 아마도 허브 공항 전략 덕분에 코로나에도 전 세계로 자주 운행하고 있기 때문일 것 같다. 공항 규모와 함께 생각할 때 터키 항공이 이스탄불 공항을 규모를 엄청나게 키운 것 같다. 라운지도 꽤나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계속 국내선 라운지 표지판을 따라갔지만 어느 순간 표지판이 사라졌다. 놓친 것이 아닌지 주변을 찾아봤지만 어디에도 라운지가 있을 것 같은 공간은 없다. 비행기 탑승 통로까지는 거리가 꽤 있는 장소이기 때문에 고민이 되었다. 힘들게 찾아 들어가도 아주 잠깐 앉아 있다가 나와야 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여기까지 걸어온 것이 아까워서 주변 상점의 점원에게 물어봤다. 건너편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라고 한다. 아마도, 엘리베이터를 향하던 표지판을 놓친 것 같다.

아침 이른 시간이었지만 라운지에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았다. 국내선 라운지인데도 불구하고 음식은 어제 봤던 아시아나 라운지와 비교됐다. 여러 종류의 빵과 과일 그리고 음료가 기다리고 있다. 한쪽에 있는 베이글 샌드위치가 탐스럽게 생겼다. 나름 만족스러운 기내식을 먹은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기대하지 않고 한입 먹었다. 신선한 토마토와 깔끔한 치즈 그리고 향기가 풍부한 빵이 너무 잘 어우러져있었다. 식욕이 없다던 J씨도 한입 맛보고는 음식을 가지러 갔다. 잠시 후 빵과 버터 그리고 렌틸 수프를 가져온 J씨도 맛있게 먹었다. 음식을 먹으면서 살펴보니 출발 비행기 출발 시간에 맞춰서 사람들이 출구로 가지 않고 다른 쪽 입구로 향하는 것이 보였다. 이상해서 직원에게 물어보니 비행기 탑승 게이트로 가는 것이 아니라 안내가 나오면 버스를 타고 바로 비행기로 데려다준다는 것이었다. 이 큰 공항에서는 맛있는 음식, 편안하고 깨끗한 자리보다 빛나는 서비스였다.

탑승 시간이 되자 예의 그 버스 탑승구에서 티켓을 확인하고 버스를 탔다. 비행기 바로 앞에서 내려주는데 가장 마지막에 탑승을 시켜준다. 아마도 시간을 가장 절약할 수 있게 스케쥴을 잡은 모양이다. 아쉽게도 이스탄불에서 카이세리로 가는 비행 동안은 J씨와 나는 앞뒤로 각각 가운데 자리에 앉았다. 아무래도 붙여서 앉혀줄 수 있는 자리는 없었던 모양이다. 자리를 바꿔달라고 하기에도 애매한 상황이었기에 그냥 앉아서 가기로 했다. 짧은 국내선 비행 내내 휴 드랍스를 했다. 비행기 엔터테인먼트 시스템의 게임을 한 것은 처음이었는데 J씨와 경쟁이 붙어서인지 꽤 재미있다. 한 시간 짜리 비행이지만 샌드위치도 서빙한다. 방금 먹은 베이글 샌드위치 때문에 받지 않았는데 파니니로 보이는 빵이 맛있어 보인다. 다음 국내선에서는 배가 불러도 받아먹어 봐야겠다.

계단으로 비행기에서 내려와 활주로에 섰다. 먼발치에 정상에 눈이 쌓인 큰 산이 보인다. 저렇게 먼 산이 단독으로 눈에 들어올 정도로 주변 넓은 구역이 평평하다는 것과 먼 거리에도 선명하게 보이는 투명한 공기가 인상 깊었다. 나중에 찾아보니 먼발치로 보이던 산에서 겨울에는 스키장도 운영하는 것 같았다. 카이세리 공항은 이스탄불 공항과는 반대로 몇 걸음 걷지 않아도 공항 안에 짐 찾는 구역으로 갈 수 있었다. 짐을 내려놓는 컨베이어 벨트는 단 두 개였다. 공항 규모에 비해 이용객 많거나 지금이 러쉬아워인 것 같았다. 출근길 전철역이 연상될 정도의 인파가 가득했다. 지정한 컨베이어 벨트에 프라이어리티 택이 붙어있는 짐이 다 나오고도 한참을 기다려도 내 짐이 보이지 않는다. 뭔가 이상하다고 느꼈지만, J씨가 불안해할까 봐 말하지 않고 지켜보고 있다. 얼마간 기다렸으나 우리 짐은 나올 기미가 보이지 않고 다음 비행기 짐도 나오기 시작하며, 혼잡도가 높아졌다.

뭔가 잘못된 것을 직감했다. 이스탄불행 비행기에서부터 본 것 같은 한국인 커플이 먼발치에 우리처럼 똑같이 짐을 기다리고 있다. 뭔가 연결편 짐에 문제가 생겼던 것일까? 짐을 찾지 못할 경우에 대해서 생각해본다. 우선 터키 항공에 문의하면서 괴레메로 이동을 미뤄야 할지, 괴레메로 이동해서 기다려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는다. 괴레메에서 공항까지 거리가 7-80킬로 정도이기 때문에 쉽게 이동할 거리는 아니기 때문이었다. 일단 J씨는 짐이 나오는지 살펴보도록 부탁하고 문의할 사람을 찾기 시작했다. 일단 항공사 직원은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보안직원에게 짐 관련 문의를 할 것을 물어보자 사무실을 알려주었다. 사무실에 가보았으나 직원은 없다. 한참 직원을 기다리는데 J씨가 나를 부른다. 먼발치에 보이던 한국인 커플이 직원과 함께 어딘가로 향해 걷기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열심히 쫓아가니 애타게 찾던 사무실 직원(같은 스펠링의 조끼를 입고 있다.)을 쫓아서 몇몇 관광객들이 걸어가고 있다. 다른 입구로 공항 건물로 들어서니 다른 컨베이어 벨트가 몇 개 있고, 한쪽 옆에 가지런히 놓여있는 우리 짐이 있다. 한참을 거기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다. 연결편은 다른 곳에서 짐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아마도 저쪽은 국내선이고, 이쪽은 국제선 터미널인 것 같다. 세관 유무 때문에 분리해서 운영하는데, 우리가 안내를 못 들었던 모양이다.

우여곡절 끝에 집을 찾아서 공항 밖으로 나서니 내 이름을 들고 있는 사람이 있다. 미리 예약해 둔 셔틀버스는 아직 출발하지 않은 모양이다. 안내하는 대로 가서 짐을 싣고 차에 앉았다. 벤츠의 미니 버스였는데, 운이 좋았던 건지 같은 회사가 운영하는듯한 세 대의 차 중에서 가장 새것 같은 차에 탔다. 둘이 같이 앉을 수 있는 마지막 자리였다. 다음에 몇 명이 더 왔는데, 일행인데도 나눠서 앉아야 했다. 괴레메로 향하는 도로의 풍경이 낯설었다. 아무것도 없는 넓은 건조 기후의 초원이라서 일까? 아마 한국이라면 이런 넓은 초원이 비어있지는 않을 것 같은 느낌이다. 낯설다. 여기서 살았다면 이 풍경에 익숙해졌을까? 생각해보니 한국이라도 별 수 없을 것 같다. 물이 별로 없어서 농사짓기가 수월하진 않아 보인다. 물이 부족해서 씻지 못해서 일까? 한쪽 구석에 꼬질꼬질한 양 떼가 눈에 띈다.

괴레메로 들어서자 여기가 그 ‘카파도키아'라는 것을 확실히 알 수 있을 정도로 다르다. 이제까지 신기하게 바라봤던 풍경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계곡으로 들어서면 들어설수록 출발하기 전에 카페나 호텔의 뷰를 고민하면서 사진들을 검색한 것이 부질없게 느껴졌다. 계곡에 자리 잡고 있는 작은 마을 괴레메에서는 어느 쪽을 바라보든 기암괴석이 특별한 분위기를 뽐내고 있었다. 물론 최고는 로즈벨리 한쪽의 붉은 절벽이지만, 수 없이 많은 버섯 같은 침니 지형이나 침니를 깎아 만든 동굴집들은 특별한 분위기를 뽐내고 있었다.

시내에 들어서기가 무섭게 우리 호텔에 맨 처음 내려줬다. 그런데 미리 준비했던 것과 달리 버스기사가 버스 요금이 정산되지 않았다면서 지불을 요구했다. 250 달러라고 농담 섞어서 말했지만, 두 명 14 유로를 대략 250리라로 잡아서 요청한 것 같았다. 뭔가 이상한 느낌을 갖고 호텔로 들어가자 이메일을 주고받았던 겐차이가 기다리고 있었다. 자신은 예약 확인 메일을 제대로 보냈으며, 확인이 안 된 것 같지만 혹시나 몰라서 벌룬과 셔틀버스 등을 예약했다고 했다. 자신은 메일에 답장을 했다고 하지만 별로 신용은 가지 않는다. 예약을 하고 싶다는 내 메일을 받고는 확정이라고 생각하고 잊어버렸던 것 같다. 벌룬 더블 부킹 관련 문제는 이야기를 주고받다 보니 흐지부지된 것 같았다. 일단 방이 준비되지 않았으니 기다려야 한다고 한다. 기다리는 시간 동안 유심을 사고 미리 봐 두었던 식당에서 간단한 식사를 하기로 했다.

괴레메 계곡 입구에 자리 잡고 있는 오토가르(버스 정거장) 주변에는 사설 환전도 하는 여행사들이 줄지어 있었다. 어딜 가나 같은 환율이 적용되는지 같은 숫자가 적혀 있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이곳 환율이 안 좋은 줄 알고 나중에 바꾸기로 하고 100유로만 바꿨다. 하지만 의외로 더 나은 환율을 만나기가 어려웠다. 이스탄불에 갈 때까지는 사설 환전상이 별로 없기도 했고, 주말까지 겹쳐서 의외로 환전 찬스가 별로 없었다. 그리고 이스탄불에서 가장 좋은 환율로 바꿨을 때랑 비교해도 100유로에 2-3000원 정도의 차이라서 여기서 그냥 다 바꿀걸 그랬다는 생각이 든다.

환전이 끝나고 현지 통신사에서 유심 구매를 위해서 확인을 진행했다. 나는 데이터량이 크게 필요하지 않아서 낮은 용량의 esim을 구매하고 J씨는 현지에서 더 저렴하고 용량이 많은 통신 플랜을 구매하려고 했다. 10분 정도 걸어서 도착한 통신사 대리점에서 확인한 유심 가격은 출발 전에 알아본 가격과 비교해 볼 때, 세배가 넘는 가격이었다. 대리점 종업원의 태도도 불량하고 납득 못할 가격 차이여서 바가지가 아닌가 싶은 마음에 마음이 편치 않았다. 일단 유심 구매는 보류하고 식사를 하러 가기로 했다. 출발 전에 찾아둔 Nazar Borek이라는 전망이 좋은 카페 겸 간단한 밥집으로 걸어 올라갔다.

경사를 따라서 10분 정도 걸어 올라가니 여기에 음식점 같은 게 있을까 싶은 곳에 음식점이 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파노라마 뷰포인트라는 곳 바로 아래에 위치한 괴레메에서도 제일 높은 축에 속하는 카페였다. 처음으로 제대로 된 괴레메의 뷰를 보자 오늘 받은 스트레스가 다 사라지는 것 같다. J씨도 무척 맘에 들어한다. 신이 난 듯이 테이블 하나를 잡고 여러 번에 걸쳐서 사진을 찍는다. 야외 자리는 햇볕이 강할 것 같아서 동굴 안에 있는 자리를 잡았다. 바깥에는 하와이안 셔츠를 입은 마른 남자분 혼자 식사를 주문하고 있었다. 나중에 J씨가 훔쳐(?) 들은 바에 따르면 호주에서 왔다고 한다. 혼자 천천히 식사를 하고 차를 마셔도 굉장한 전망 덕에 행복할 것 같았다.

괴즐레메와 쾨프테 그리고 콜라와 아이란이라는 요구르트를 주문했다. 익히 들었던 대로 기본 빵이 세팅된다. 터키 빵이라고 하는데, 바게트보다 조금 더 가볍게 반죽되어 있는 부드러운 식사빵이었다. 크레이프와 비슷하다고 하는 괴즐레메는 얇게 구운 빈대떡 같은 느낌이고 얇은 밀가루 반죽 안에 치즈가 조금 들어 있었다. 쾨프테는 예전에 들었던 대로 구운 미트볼이었는데 양념이 참 맛있다. 아이란은 떠먹는 요구르트와 마시는 요구르트 중간 정도의 꾸덕함을 가진 요구르트인데 단맛은 전혀 없고 적절히 짭짤하게 간이 되어 있다. 아마 한국의 달달한 요구르트를 생각하고 먹으면 호불호가 갈릴 것 같았다. 요구르트를 좋아하는 우리는 만족스러운 음료였지만 말이다. 이 식당이 가격이 싸고 양이 적다는 안내를 본 적이 있었는데, 가격에 비해서 양은 그다지 적어 보이진 않았다. 그리고 사실 기본 빵을 주기 때문에 부족하다고 느끼기도 쉽지 않을 것 같다. 조금 걸어 올라와야 하지만 황송한 뷰를 즐기면서 맛있는 식사를 이렇게 저렴한 가격에 제공해 주다니 고맙게 느껴졌다. 나중에 여행 도중에 빈틈이 생기면 한번 더 올라오자고 이야기하면서 내려왔다. 카페에서 호텔로 돌아오는 길에 한 번 더 다른 곳에서 유심 가격을 확인했으나 큰 차이는 없었다. 아무래도 최근의 급격한 환율 변화가 적용되면서 몇 달 전 정보는 의미가 없어진 것 같았다.

내려오는 길에 카페 하나가 스타벅스와 컨셉이 비슷한 것 같아서 들어갔다. 한국 커피 가격에 필적하는 커피 가격을 보자 여기서는 꽤 비싼 집이겠구나 싶다. 터키쉬 커피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터키쉬 커피에 설탕을 얼마나 넣어줄지 물어보는데 필요 없다고 하자 직원 표정이 이상했다. 커피를 주문하고 상품들 가격을 보는데 이 물건이 이 가격에 팔리나 싶다. 스타벅스 카피캣에 고급화 전략을 추구하는 카페 같다. 야외에 자리를 잡고 잠시간 기다려서 받은 터키쉬 커피는 실망이었다. 흙 맛이 강하게 올라와서 마지막으로 갈수록 입을 대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다. 유일한 장점이 있다면 같이 준 물이 맛있게 느껴진다는 점 정도이다. 사실 같이 나온 아이스 아메리카노도 별로 였으니, 터키쉬 커피도 맛이 좋은 편은 아닐 것이다. 이 카페의 가장 좋은 점은 바로 주인이 키우는 듯한 귀여운 퍼그가 아니었나 싶다.

카페에 앉아 있는데 벌룬 투어를 예약한 업체로부터 연락이 왔다. 고민 끝에 출발하는 날 일요일로 벌룬 투어를 결정했다. 오후에 비가 예보되어 있긴 하지만 새벽 시간에는 괜찮아서였다. 그런데 내일 날씨 문제로 벌룬 투어가 취소되었다는 소식이었다. 별 수 없으니 월요일 예약 자리를 찾아봐 달라고 부탁했다. 안돼도, 화요일까지는 도전할 수 있기 때문에 걱정은 되지 않았다. 가격이 두 배까지도 오른다고 하니 좀 신경 쓰이긴 하지만 미리 각오했던 일이기도 하고, 여기까지 온 비용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호텔에 돌아오자 우리를 반겨준 것은 겐차이의 형이었다. 대머리에 약간 느끼한 친절한 말투가 인상적인 아저씨였다. 방으로 안내를 받으면서 내일 레드 투어 예약을 부탁했다. 사실 투어 예약도 전부 벌룬 업체에 맡기려고 했는데, J씨가 호텔에서 예약하자고 해서 마음을 바꿨던 부분이었는데, 현명한 선택이었던 것 같다. 벌룬 예약도 파토난 상태였는데 다른 투어 예약도 없으면 약간 찬밥 신세가 될 수도 있으니 말이다. 기대했던 것보다 꽤 넓은 안내받은 방에는 커다란 침대가 놓여 있다. 역시 지은 지 얼마 안 되어서 그런지 방이 깨끗했다. 간단히 짐을 풀고 샤워를 하고 침대에 누웠다. 비행기에서 거의 자지 못해서 역시 노곤하다. 한 숨 자고 싶다.

하지만 다행히도(?) J씨가 Sunset ATV 투어를 예약해 두었다. 픽업 시간에 맞춰서 로비로 나갔다. 차가 호텔 앞으로 왔다. 5분 정도 차를 타고 가니 괴레메에서는 아무것도 아닌 어마어마한 뷰 한가운데 있는 ATV 업체에 왔다. 같이 탈지 따로 탈지를 물어보는데 내가 당연하다는 듯이 따로 탈 것이라고 하자 J씨가 잠시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쳐다본다. 나는 같은 가격이면 당연히 따로 타는 게 재미있다고 설명하고 웃었다. J씨가 운전에 익숙하지 않은 관계로 살짝 걱정스러운 모양이다. 강촌이나 제주 등지에서 몇 번 타본 내가 생각하기에는 J씨도 금방 익숙해질 수 있을 것 같았다. 위생 두건 같은 망을 머리에 쓰고 독일 병정이 쓸법하게 생긴 헬멧을 시착해보았다.

애플 티를 받아서 마시면서 잠시 기다리니 다른 팀들이 픽업돼서 들어오고 우리가 겪었던 것과 마찬가지의 안내 절차를 진행한다. 잠시간 기다리니 모든 사람들을 이끌고 ATV가 주차된 곳으로 안내한다. ATV조작 방법을 간단히 가르쳐주는데 J씨는 적지 않게 긴장한 눈치다. 사고가 나더라도 큰 문제는 없을 테니 맘 편히 운전해보라고 한다. 잠시간의 안내를 거쳐서 첫 번째 뷰 포인트까지 가는데 의외로 잘 따라간다. 어차피 다른 차량도 별로 없고 속도도 내지 않으니 별 문제는 없을 것 같다. 첫 번째 뷰 포인트에서 간단히 사진을 찍고 다음 포인트로 출발하려는데 선두에서 이끌어주시는 가이드 할아버지가 먼지에 눈이 따가울 거라고 선글라스가 없냐고 물어본다. 챙기지 않았던 우리가 없다고 하자 잠시 고민하더니 가이드 할아버지는 자기 선글라스를 벗어서 J씨에게 씌워 준다.

여러 포인트를 찍어가면서 잠깐식 시간을 주고 이동하는 식으로 진행된 오늘 투어에서 가장 먼 포인트는 러브 밸리라고 부르는 곳이었다. 가는 길에 다른 팀을 추월하려고 도로를 빠르게 질주하기도 했는데, 나중에 J씨에게 물어보니 그때가 가장 재미있었다고 한다. 앞으로도 몇 번 더 가게 되겠지만, 그날이 처음이었다. 멀리 로즈 밸리의 붉은 암벽이 보이고 계곡 아래쪽에 침니들이 있었다. 침니 지형들이 사랑을 만들 때 사용하는 것과 비슷하게 생겨서 러브 밸리라고 지은 것 같다. 여기저기서 포인트를 잡아서 사진을 찍다 보니 금방 시간이 다 되었다.

마지막이 선셋 포인트였는데, 다른 팀들이 오기 전에 일찌감치 도착했다. 도착하자 사진 포인트에 ATV를 세팅해서 찍어 줬다. 사진을 다 찍고 가장 높은 곳에 명당자리를 잡고 앉았다. 내려다보니 수백 대는 족히 되어 보이는 ATV가 사방에서 몰려들었다. 매드 맥스가 연상되었다. 천천히 러브 밸리 방향으로 지는 해를 바라보고 출발했던 곳으로 돌아와서 투어를 마무리했다.

투어를 마치고 업체로 돌아오자 에어 블로워로 사람들의 먼지를 털어준다. 우리 차가 출발하기를 기다리면서 살펴보니 한쪽에 꼬물이가 있다. 새끼 강아지 때문에 사람들이 몰려들자 옆에 있던 개가 반응한다. 쇼맨쉽이 넘치는 개가 사진 포즈를 취하기도 하고 밥통을 가져와서 놀아달라고 사람들에게 다가온다. 그런데, 이리저리 오고 가면서 꼬물이를 밟기도 하는 것이었다. 구경하던 사람들은 모두 적지 않게 당황한 눈치였다. 처음엔 엄만 줄 알았는데 아닌가 보다.

투어가 마무리되고 나서 생각해보니 좋은 투어를 선택한 것 같다. 해 지는 타이밍에 맞춰 다른 팀보다 반걸음 씩 빠르게 각 뷰포인트로 이동한 덕에 여유 있게 사진을 찍었던 점이라든가, 이동할 때 다른 팀과 경로가 겹치면 즉흥적으로 경로를 약간씩 변경해서 편하게 움직일 수 있게 배려해 주는 점 그리고 리딩 하는 직원 말고 두 명이 앞뒤로 오고 가며 손님들이 잘 따라올 수 있도록 배려하거나, 교차로에 차를 대서 경로를 확보하는 등 탁월한 서비스를 경험했다. 선글라스를 빌려줬던 투어를 리드하던 할아버지는 뒤를 돌아보면서 수신호를 해주면서 노련하게 팀을 리드했다. 그런데 앞에 다른 팀에 길이 막히거나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있으면 불편한 어필을 하곤 했는데, J씨는 그 모습 참 재미있어했다. 특히 J씨가 그 제스처 이야기를 하면서 웃는데서 행복감을 느꼈다. 풀 페이스 가드와 장갑을 끼고 있는 마초 컨셉의 아저씨가 백미였는데, 대열 앞 뒤로 움직이면서 원활한 진행을 도와주고 간간히 묘기를 하면서 지루할 틈을 주지 않았다. 뷰 포인트에서 구경하느라 늦어지는 사람이 있으면 ATV를 끌고 가서 태우고 온다거나, 마지막 선셋 포인트에서 사람들을 태우고 과격한 주행으로 즐겁게 해주는 등 이 일자체를 즐기는 듯한 직원이었다. 결국 투어를 마무리하고 열린 팁박스에 우리는 기다렸다는 듯이 기분 좋게 지폐를 투입할 수밖에 없었다.

저녁은 구글 맵에서 미리 봐 둔 몇 곳의 레스토랑을 가보고 선택하기로 했다. 투어 후에 레스토랑으로 데려다 달라고 부탁해서 레스토랑 앞에서 내렸는데, 첫 번째 도착한 Inci Cave Restaurant 외부가 예뻐서 아무런 고민 없이 들어갔다. 다만, 메뉴를 선택하는데 구글 맵에서 체크했던 가격의 거의 두배에 가까운 가격이었다. 양 갈비구이와 항아리 케밥을 주문했다.

항아리 케밥은 직접 깰 수 있도록 서비스해주었는데, J씨가 조심조심 깼다. 나중에 여러 식당에서 항아리 케밥 서빙을 목격할 기회들이 있었는데, 이 서빙이 가장 그럴듯했다. 항아리 케밥은 자작한 국물에 오랫동안 조리해서 부드러운 비프스튜 같은 느낌이었는데 참 맛있었다. 양갈비 구이도 적절하게 구워져서 서빙되었다. 기본 빵 덕분일까? 이날 저녁도 배가 부를 때까지 맛있게 먹었다. 예상했던 가격보다는 조금 더 비쌌지만 음식과 서비스는 만족스러웠다. (물론 나중에 물가에 대해서 감을 잡고 나서는 이 가격 또한 좋은 가격이었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식사 중에 여행사에서 내일 벌룬 투어를 예약할 수 있다고 연락이 왔다. 10만 원 정도 더 내야 했지만 잠시간의 망설임도 없이 진행하기로 했다.

천천히 호텔로 돌아오니 9시였다. 공항에서도 호텔에서도 가벼운 트러블들이 있었지만 괴레메의 아름다운 풍경과 딱딱 맞는 ATV 투어는 그런 불편함을 가슴에 담아둘 틈을 허락하지 않았다. 비행기에서 잠을 거의 자지 못했지만 시차적응이 되지 않아서 쉽게 잠들 것 같지 않았다. 그래도 빠르게 샤워를 마치고 오늘도 멜라토닌과 함께 항히스타민제를 먹고 빨리 자도록 노력했다. 피곤 덕분일까? 만족감 덕분일까? 의외로 쉽게 첫날밤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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