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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래니와 주이 (J.D. Salinger)

Franny and Zooey

by WaPhilos

나의 뉴욕 다이어리라는 영화를 통해 등장한 J.D. Salinger라는 작가를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뭔가 특별해지고 싶은 작가 지망생인 여주인공과의 대화와 서신을 통해 드러나는 JD Salinger라는 작가의 글에 대한 자세와 어눌하지만 글에 대한 동경의 말을 전해주는 목소리를 통해서 묘한 매력을 느끼게 된다. 글을 읽고 쓰는 것에 대한 열정과 갈망이 큰 나에게 이 작가에 대한 관심이 커졌고 그의 책 여러 권 중 ‘호밀밭의 파수꾼’ 다음으로 이 책 Franny and Zooey를 읽게 되었다.


이 책에 대해서 비평하거나 추앙하는 평가가 여러 있다고 한다. 그렇기에 읽어보니 왜 이 작가가 어느 고전작품들과는 다르게 자신의 정신적인 상태나 흐름에 따라 어느 정도 자유로운 의지를 가지고 글을 써 내려가지는 않았나? 생각하게 된다.

글의 구성이 두 파트로 나뉘어 프래니의 이야기와 주이의 이야기로 나뉘고 프래니는 뒤 주이의 이야기에 이어서 등장하며 이야기의 주된 인물로 그려진다.


남자친구인 레인과의 만나는 등장부터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지쳐있는 프래니는 가족 내에서 그리고 특히 책의 전체의 흐름에서 가족을 비롯 주변인물과 현실에 갈등을 겪고 정신적 분열적인 모습을 보이는 인물로 나타난다. 이에 주이 또한 욕조 안에서 머물며 베시 어머니와 대립하며 마치 주변의 모든 상황으로부터 무언가 도움을 받지 못하고 자포자기의 냉소적인 태도로 일관되게 비쳐진다.

어린 시절부터 TV show 프로그램 등을 통해 쇼, 연기, 노래 등에 노출되었던 가족사와 형제의 죽음과 그것들을 통해 그려지는 남겨진 가족과 형제들의 불안한 듯 정서적으로 분열되고 혼란스러운 심적 상태에 나의 이성을 답답하게 하는 현실 비관적인 모습들이 이어지고 만다.


그러던 중 조언을 얻고 예수기도문을 반복해서 읽고 종교적인 해석과 함께 한줄기의 희망의 끈을 잡아보려고 고통받는 프래니와 그런 현실들을 대면하고 냉담하게 전달하는 주이의 모습...

어떻게 보면 누구나 삶을 통해서 다짐하고 다시 다짐하고 그래서 다시 잊게 되고 후회하게 되는 반복된 인생의 굴레와 같지 않은가? 그 예수기도문을 계속 계속 반복해서 읽고 또 읽으라 하는 것 자체가 글 속의 조언처럼 말이다.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주어진 삶과 현실에 지쳐버리고 오직 자신의 가치 있는 무언가를 찾고 쫓고자 하는 프래니와 그걸 바라보고 조언하는 주이의 모습을 통해서 나의 하루를 좀 더 무겁게 되돌아보게 된다.

무언가 찬란하고 행복하기만 하루의 그림에서 자기 비난과 현실 비관의 합리적 해답으로 삶을 바라보게 되는 일상의 굴레가 내 바로 앞에 그리고 내 머릿속에 좀 먹는 벌레처럼 꿈틀거리는 것 같다.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그 종교에 어린 시절 약 20여 년간 몸 마음을 두었던 사람으로서 가히 두 번째 주이 스토리를 통해서 답해지는 대화의 내용은 종교적인 그리스도의 말씀에 어느 정도 그 바탕을 두고 있거나 그것에 비견될만한 내용임에 분명하다.


아마도 지금도 예수와 그리스도의 말씀을 따르고 성경을 읽고 종교적인 삶을 살고, 살고자 하는 사람은 이 책을 통해서 그 통쾌하고 명확하게 현실을 답해주는 말씀을 다시 듣게 될 것이라 믿어 의심하지 않는다.

아래는 책에 나온 글을 통해서 나의 삶의 단편을 다시 한번 되돌아보게 한 부분을 적어보며 다시 가슴에 그 말을 새겨 본다.


‘내가 가는 이유는 내가 아는 모든 가엽고 썩은 인간들이 옳으니 그르니 비판하며 앉아 있는 나 자신이 싫기 때문이야. 그런데 그것 자체는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아. 적어도 나는 비판을 할 때는 직관적으로 하고 내가 한 어떤 비판에 대해서든 머잖아 어떤 식으로든 반드시 대가를 치른다는 것을 알고 있어. 그건 그다지 신경 쓰이지 않아. 하지만 내가 업계 사람들의 사기를 꺾어버리는 모습을 지켜봐야 한다는 걸 더 이상 견디지 못하겠어. 내가 정확하게 무슨 짓을 하는지 네게 말해줄게. 나는 모든 사람들이 마음속으로, 정말로 어떤 훌륭한 일을 하고 싶어 하는 게 아니라, 그저 자기들이 아는 모든 사람, 비평가, 광고주, 대중. 심지어는 자기 자식들의 학교 교사 등이 훌륭하다고 생각해 줄 일이 행해지는 걸 원하는 것뿐이라고 느끼도록 만들지. 그게 내가 하는 일이야. 그게 내가 하는 최악의 일이야.’


- 부조리와 비판에 자유롭고 누군가의 인정과 누군가의 평가에 자유로워져 자신의 삶은 온전히 바라볼 수 있는 자세를 갖기를...


‘네가 원하는 것이 종교적인 삶이라면, 너는 지금 이 순간 이 집에 일어나고 있는 모든 종교적 행위를 놓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해. 너는 누군가 네게 축성한 닭고기 수프 한 그릇을 가져다주었을 때 그것을 먹을 만한 지각조차 없어. 그 수프는 베시가 이 미친 집구석에서 누구에게나 가져다주는 유일한 수프인데 말이지. 그러니 이제 말해봐. 말해보라고, 친구. 설사 네가 세상 밖으로 나가 온 세상을 다 뒤져 스승을, 그 예수기도문을 제대로 외우는 법을 말해줄 어떤 지도자, 어떤 성인을 찾았다고 한들 그게 네게 무슨 소용이겠냐? 코앞에 있는 축성받은 닭고기 수프도 알아보지 못하면서 자격 있는 성인이 눈앞에 있다 한들 대체 어떻게 알아보겠느냐고! 대답할 수 있겠니?’


- 주는 우리 안에 거하노라, 그러기에 너의 주변과 가족에 하는 행동 하나는 곧 주를 대하는 것일 것이라. 예수기도문을 온전히 배워 세상에 나가 설 수 있는 온전한 종교적 삶을 갖게 되더라도 바로 지금 내 옆에 있는 가족과 주변의 따뜻함 조차도 알아보지 못하는 존재가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네 갈망의 결과에서 그냥 걸어 나올 수는 없는 거야. 원인과 결과, 친구 원인과 결과라고. 지금 네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네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종교적인 일은, 연기야. 원한다면, 신을 위해 연기하고, 원한다면 신의 배우가 되어봐. 그보다 더 아름다운 게 또 있겠어? 원한다면 적어도 노력은 해봐. 노력하는 건 괜찮잖아... 그렇지만 서두르는 게 좋을 거야, 친구 네가 방향을 바꿀 때마다 모래시계에서 모래가 떨어지고 있거든. 난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 이 빌어먹게 경이로운 세상에서 재채기할 시간이라도 얻는다면 운이 좋은 거야... 나는 예전에 시간이 없다는 걸 걱정했어 이젠 더 이상 크게 걱정하지 않아. 적어도 난 아직 요릭의 두개골과 사랑에 빠졌거든. 적어도 나는 요닉의 두개골과 사랑에 빠져 있을 시간은 언제나 있거든. 난 내가 죽었을 때 명예로운 두개골이 되길 원해, 친구. 요릭의 두개골처럼 명예로운 두개골을 갈망한다고.’


- 인생의 모래시계는 누구에게나 똑같은 시간을 주고, 그 방향을 헤매다 보면 흔들려 모래는 더 빨리 떨어지고.. 인생의 마지막이 다가오고야 만다.

‘네가 집에 와서 관객의 어리석음에 대해 열변을 토하고 불평을 했다는 거지. 다섯 번째 줄에서 들려왔던 그 빌어먹을 엉뚱한 웃음소리. 그래 그건 맞아, 맞다고, 그건 우울하지. 우울하지 않다는 게 아냐. 하지만 그건 네가 상관할 바가 아니야, 정말로. 네가 상관할 바가 아니라고, 프래니. 예술가의 유일한 관심은 어떤 완벽함을 달성하는 것이고, 그건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자기 자신에게 있어서의 완벽함이야. 너는 다른 것들에 대해서는 생각할 권리가 없어. 어떠한 의미에서든.’


- 자신에게 진심이었다면 그만일 것이다.


‘웨이커와 함께 문밖으로 나가려는데 시모어가 내 구두를 닦으라고 해서. 나는 몹시 화를 냈어. 스튜디오 관객들은 모두 멍청이고, 진행자도 멍청이고, 광고주들도 멍청이고, 난 그런 인간들을 위해 내 구두를 닦는 염병할 짓은 하지 않겠다고 시모어에게 말했지. 그래봐야 그들에겐 내 구두가 보이지 않을 거라고, 우리는 안아 있지 않느냐고. 그는 그래도 구두를 닦으라고 말했어. 뚱뚱한 여자를 위해 구두를 닦으라고. 그가 말했어. 나는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알 수 없었지만 그의 얼굴에서 아주 시모어다운 표정이 보였고, 그래서 나는 구두를 닦았어. 그는 한 번도 뚱뚱한 여자가 누구인지 말해주지 않았지만 그 후로..'. 그런데 난 네게 엄청난 비밀을 말하려 해. 듣고 있는 거니? 거기엔 시모어가 말한 뚱뚱한 여자가 아닌 사람은 아무도 없어. 거기엔 너의 터퍼 교수도 포함되어 있어, 친구 그리고 그와 같은 종류의 인간 수십 명도. 어딜 가도 시모어의 뚱뚱한 여자가 아닌 사람은 없다고. 모르겠니? 그 빌어먹을 비밀을 아직 모르겠어? 그 친구 그건 바로 그리스도야. 그리스도라고 친구’


-비밀은... 그건 바로 그리스도야 모든 것에 존재하는 그리스도, 당신의 삶 속에서 그리스도의 삶을 향후 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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