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10장 31절
평범함 속의 비범함_고린도전서 10장 31절 (이재훈 목사)
쌀쌀한 겨울의 차가운 바람이 얼굴을 아리게 하는 올해 마지막 일요일 아침이다.
오전 9시 교회 예배를 드리러 아들 녀석들을 데리고 가야 하니 7시가 되면 서둘러 일어나 아침을 먹여야 한다.
다행히 간단히 준비 가능한 바바나 펜케이크와 야채 계란말이와 과일을 깎아 후딱 준비해 준다. 이제는 금방 준비할 수 있는 메뉴이지만 여러 번의 펜케이크 레시피와 재료의 비율을 많은 시행착오 끝에 맘에 들 정도의 수준까지 능숙하게 만들 수 있게 되었다. 부드럽고 포근한 밀가루 펜케이크가 아닌 통밀가루가 반 이상 들어가 식이섬유, 미네랄(철분, 아연)등이 풍부한 건강한 아침식사로 녀석들이 잘 먹어주니 감사할 따름이다.
엄마가 사 온 조그만 블루베리 요거트를 5살 막내 녀석이 마시며 소리친다.
“이것은 바로!!~ 천국의 맛이야!”
가끔씩 맛있는 요리를 먹거나 할 때 첫째 녀석이 장난처럼 내는 말투를 그대로 따라 한다. 그렇지만 녀석의 그 천국의 미소와 장난스러움이 밝게 떠오른 아침햇살과 함께 나의 머리의 소중한 사진처럼 새겨진다. 녀석은 아마도 천국을 더 가까이 느끼고 있는 듯하다.
오늘 일요일은 2025년의 마지막 주말 예배이고 아내랑 녀석들 모두가 같이 교회로 종종걸음으로 향한다. 막내아이를 데리고 가야 하는 아내를 데신 해서 설거지와 아침 빨래 돌리기 등은 내 몫이 된다. 큰 녀석은 벌써 4학년이라서 아빠가 늦어지는 걸보고 혼자서 먼저 가겠다고 그냥 가버린다. 늦지 않고 소년부 예배에 가겠다는 녀석이 대견하기만 하다.
10분 늦게 들어선 예배당에 오늘은 새로운 목사님이 설교를 하신다고 안내문에 적혀있다. 그런데 교단에는 아무도 서지 않는다. 뒷 배경의 큰 대형스크린과 스트레오 스피커가 동시에 한 목사님과 그 목소리를 전달하기 시작한다. 온누리교회 이재훈 목사님이 설교를 하시는 날이다. 한 해의 마지막날 그리고 단 9시 예배(2부 예배)에서만 이 목사님이 설교를 하기로 일정이 나와있다.
설교의 주제는 고린도전서 10장 31절 말씀으로 ‘평범함 속의 비범함’에 대한 주제로 주보에 적혀 있다. 평범함 속의 비범함이라.. 평범함을 유지하는 것이 어떠한 비범함을 갖추어야 한다는 말인가? 사람들은 그들 나름의 비범함을 가지고 살아가지만 그 비범함이 주는 삶의 선택들을 통해서 마주하는 고뇌, 갈등, 쾌락, 절망 등에 의해서 평범함을 유지하기 힘든 경우가 많은 것처럼 말이다.
“오늘의 말씀은 고린도전서 10 장 31절 말씀입니다. 같이 읽겠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행하든지 모든 것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하십시오’. 아멘.”
“영국의 청교도들의 식사를 하는 경우에는 우리 성도들처럼 감사의 기도를 올립니다. 그리고 그 기도는 식사 전, 그리고 식사 후에도 기도를 합니다. 로렌스 형제는 17세기 프랑스 평신도 수도사로 늦은 나이에도 부엌의 설거지등 주방일이나 샌들수선 등을 하면서도 하나님을 향한 순수한 사랑과 감사를 잃지 않고 모든 행위를 할 때 마음을 다해 하나님께 집중하며 모든 행위를 하나님(신)을 위한 사랑의 행위로 삶을 살아갔습니다.”
아침에 녀석들과의 펜케이크 파티에서도 신이 허락하신 그 행복과 시간 그리고 펜케이크에도 우리는 감사의 마음을 생각하고 그 주신 사랑에 대해 감사함을 생각하는 순간을 놓치고 말았구나.
“오믈렛을 만들고 식사를 하고 설거지를 하고 집안일을 하건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행하며 기도하고 감사함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순간 설교하는 목사님의 옅은 미소가 번지고 여러 집안일을 담당하는 주부 성도와 나를 포함하여 웃음을 터트린다. (어색한 침묵 잠시...)
테라, 루나 비트코인 관련 사기혐의로 15년형을 선고받은 권도형의 반성문이 화제가 되었었다. 일명 ‘한국판 머스크 권도형의 반성문’ 또는 ‘하버드 불합격날 어머니는’ 라는 뉴스기사 이다.
스탠퍼드와 옥스퍼드 합격을 받았으나 하버드 불합격을 통지서를 받고 눈물을 흘리시며 방을 나가실 정도로 충격을 받은 부모님, 어린 시절부터 부모의 각별한 교육을 통해서 성공을 위해 달려야 했던 젊은이는...
“어머니는 제가 무엇에 위대해져야 하는지는 말해주지 않았다. 위대함은 그 자체로 목적이었고, 어머니조차도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확히 몰랐던 것 같다”라고 회상하였다.
“여러분은 무엇을 위해 성공을 꿈꾸십니까? 위대해지려고 하지만 무엇을 위해 입니까? 심지어 무엇을 위해 건강해지려 하고 무엇을 위해 뛰어야 합니까? 성공 그 자체가 독이 될 것인지? 그 성공으로 교만해지지 않도록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우리 사람들의 삶이 그렇듯, 우리는 누구나 경쟁을 통해 상대적인 우월함을 성취하고 누군가 소수만이 누리게 된다는 ‘성공’이라는 것에 취해 있다. 하지만 그 성공이라는 것이 무엇을 위한 것인가 묻게 될 때는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이 아닌 또다시 나 자신만의 만족과 쾌락으로 돌아와 끝나지 않은 굴레 속에 빠져 들고야 만다.
“믿지 않는 사람의 초대를 받아 앞에 차려진 것을 양심에 거리낌이 생기지 않도록 묻지 말고 드십시오 합니다. 또한 누군가 ‘우상에 바쳐진 재물입니다.라고 하다면 말해 준 사람과 그 사람의 양심을 위해 먹지 마십시오’.”
왜 내 자유가 남의 양심에 의해 판단을 받아야 할지? 주어진 것에 대한 나의 감사함으로 인해 누군가의 비난을 왜 받게 되는지?
“우리의 공동체와 사람들 사이에서는 믿음이 약한 자, 나약한자는 하나님의 말씀과 뜻을 모르고 의심하여 실족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상의 재물이지만 모든 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길임을 굳게 믿을 때 먹을 수 있는 자유와 믿음이 있는 행동을 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많은 지식을 얻게 되었다 하더라도 나약한자는 의심하여 실족하게 되는 겁니다.”
“결국에 그 지식이 사랑이 없을 때 공동에는 해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것을 그 누군가가 받아들일 수 없을 때 그것을 절제하는 것이 지식입니다. 누군가의 마음에 실족이 될 때 절제할 수 있는 것 그 지식이 주는 자유로움에 사랑이 있지 않으면 실족케 할 뿐입니다.”
모든 것은 결국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길이다. 지식을 덕으로 감싸고 공동체의 화평과 덕을 더 키우는 것 그 속에 동기와 목적을 찾고 새롭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올해의 마지막 예배 설교를 들으며, 한해의 지나왔던 시간들을 돌아보며 어떠한 목적과 동기를 갖고 그 성공과 희망을 품어왔는지 다시 한번 돌이켜 보게 된다.
모든 것이 나 자신의 성공과 영광을 위한 것이 아닌 나의 주인이고 나의 목적되시는 하나님(신)의 영광을 위해 살아갈 때 ‘평범함 속의 비범함’을 갖고 공동의 덕을 쌓는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평범함에 감사하고 기도하며, 다가오는 새해를 비범하게 나아가길 소망해 본다.
‘그래 이 맛이 바로 천국의 맛일 것이다!’
< 고린도전서 10 장 31절 >
‘그러나 여러분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행하든지 모든 것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하십시오’.
: 그리스도인의 모든 일상생활, 심지어 먹고 마시는 것 같은 사소한 행동까지도 자신의 이익이나 쾌락보다 하나님의 영광을 최우선 목표로 삼아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이는 주변 사람들에게 거침돌이 되지 않고 복음을 전하며, 궁극적으로 다른 사람을 구원으로 이끌기 위해 모든 행동의 기준을 하나님께 두어야 함을 강조합니다.
핵심 의미
1) 모든 영역에서의 신앙 적용: 종교적 행위뿐 아니라, 일상의 모든 선택과 행동에 하나님의 뜻과 영광이 반영되어야 합니다.
2)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 자신의 만족이 아닌,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 삶의 최종 목적이 되어야 함을 말합니다.
3) 타인을 위한 배려와 섬김: 자신의 유익을 구하기보다, 다른 사람의 유익을 구하고 그들이 구원에 이르도록 돕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4) 삶으로 증거 하는 복음: 그리스도인의 삶 자체가 복음이 되어, 주변 사람들이 "너 교회 다니니?"가 아니라 "너 예수 믿니?"라고 묻게 만드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적용
이 구절은 우상에게 바친 제물이나 세상의 관습을 대하는 태도 등, 당시 고린도 교회 성도들의 고민에 대한 바울의 가르침의 핵심입니다. 즉, 자유라는 명분으로 타인의 믿음을 방해하거나 하나님께 불명예를 돌리지 말고, 모든 행동의 중심에 하나님을 두어 그분께 영광을 돌리라는 권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