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5장 38~48절
2025년 11월 어느 가을날 주말이 되었다.
오늘도 하나님의 말씀을 기대하며 예배당의 2층으로 조심조심 발을 옮긴다. 어린 시절 들뜬 소년의 마음과 같이 여전히 나의 마음은 그때 하나님의 말씀의 경외감과 사랑하심을 닮고 싶은 순수함으로 조심스럽다.
교회의 찬송가가 울려 퍼지고 한주 동안 고요했던 나의 마음에도 작은 소리의 울림이 시작되고, 신에 대한 사랑과 복종에 대한 다짐의 말속에서 마음이 점점 동요된다.
드디어 노래가 끝나고 주일 예배가 시작된다. 9시 시작되는 2부 예배... 담임목사가 교탁으로 올라서고 간단히 인사를 건넨다. 주일일보를 보니 오늘 설교는 ‘마이클 오’ 목사라고 쓰여 있다.
간증 목사? 인가하는 생각도 들고 교포출신으로 미국인 목사인가? 싶기도 하다. 그분은 바로
로잔 마이클 오(Michael Oh) 목사이다. 국제로잔운동(Lausanne Movement)의 총재로, 세계 복음화와 기독교 지도자들을 연결하는 데 헌신하는 한인 교포 2세 목회자이고, 그는 겸손과 단순함, 정직함으로 복음을 전하고 세계 선교의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지도자들이 지혜를 모으도록 독려하며, 2024년 서울에서 열린 제4차 로잔 대회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한다. (구글 AI 검색 ^^...)
인사말부터 영어로 ‘Hello everyone, it is great to be here!’ 영어가 조금은 서툰 부분이 있어 옆에 한국어 번역 담당자와 같이 목회(설계)를 시작하였다.
그 주제는 바로 마태복음 5장 38~48절 말씀이다.
그 성경말씀의 내용을 요약하자면...
38-48절: 원수 사랑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라는 구약의 보복법을 넘어서, 원수까지 사랑하고 박해하는 자를 위해 기도하라고 가르치시며, 하늘 아버지의 온전하심 같이 온전하라고 명령하십니다.
교회를 다녀본 기독교인이라면 누구나 들어본 말씀.
‘너의 원수를 사랑하고 너희를 핍박하는 사람을 위해 기도하라.’ (마태복음 5절 44절)
어린 시절 나에게도 놀라움과 경외감을 느끼게 해 준 말이다. 원수라 하면 나의 선함, 옮음과 다르게 악하며 그르고 나를 핍박하는, 대적해야 하는 상대로만 인식하고 있던 어린 시절 어찌 원수를 사랑하고 더 나아가서 그를 위해 기도까지 할 수 있다는 말인지 받아들이기 어려운 말이었다.
마이클 오 목사의 이야기를 전해 보자면...
어린 시절 이 말씀을 들은 목사님은 어릴 적 이 말씀이 무엇일까? 즉 나의 적은 누구일까? 곰곰이 생각해 보게 되었다고 한다. 인간으로 서는 할 수 없는 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가지고 말이다. 미국으로 이민을 간 한 가족의 아들로... 가족 내에서 부모님과 가족들이 생각하는 적은 누구였나?
역사적으로 일제 강점기를 겪은 부모님과 그로 인한 역사의 길을 걷고 멀리 미국까지 이민을 가서 살게 된 가족 얘기와 목회의 길을 걷게 되고 난 뒤, 자신에게 주어진 일본 선교의 길...
어찌하면 한 때, 역사적으로 우리를 핍박하고, 우리의 가족과 개인의 한을 심어준 일본, 그곳으로의 향해야만 했던 선택은.. 원수를 위해 나의 꿈을 포기해야 하는가? 하는 물음으로 되돌아왔다고 한다. 어쩌면 현재를 살고 있는 대한민국의 한국인들 보다도 일제의 약탈, 잔인한 생물실험, 성 노예 등 그 추악한 만행에 대해서 더 민감하고 더 확고히 인식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도대체 그럼 이 성경의 말씀, ‘너의 원수를 사랑하고 너희를 핍박하는 사람을 위해 기도하라’을 어떻게 따를 수 있단 말인가? 수많이 질문과 말씀에 대한 구함을 통해... 그에게 돌아온 대답은 바로..
‘너 역시 나의 원수가 아니었느냐?, 내 아들을 목박지 아니하였느냐?’
그러는 동안 자신의 죄의 깊이를 들여다보는 순간으로 들어갔다고 한다.
그 끝에는, 내가 죄인임을 깊이 알게 되고 회개해야 하며, 그 예수의 보혈의 피로 다시 삶을 얻고 그리스도 앞에 서야겠다. 그럼으로써 피해자라는 교만의 마음 또한 회개해야 한다는 생각에 이른다.
여러분의 원수는 누구입니까?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을 어떻게 순종하시겠습니까?
진실로 자신의 미움, 죄를 주께 회개한 적이 있는가? 아버지와 같은 온전함을 달라고 구한 적이 있는가? 화해를 경험하였는가?
원수를 온전히 사랑하신 예수!, 우리가 그의 원수였지 않았느냐?
인간은 값없이 용서받았으니 값없이 사랑할 힘을 얻었습니다.
설교를 들으며, 나의 적은 무엇인가? 나와 적대적인 그 어떤 사람과 상황 그 무엇인가 일까? 그 적대적인 눈빛, 말투, 태도 등... 어쩌면 그 적은 나의 마음속에만 잠시 생겨나는 거친 파도와 같은 것이지 않을까? 나의 마음이 바다와 같이 곧 잠잠해질 것이고, 예수께서 그 잔잔한 바다 위를 걸어오시듯 나 또는 그의 손을 잡고 온전히 걷게 되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너의 원수를 사랑하고, 너희를 핍박하는 사람을 위해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가 온전하신 것 같이 너희도 온전해야 한다’
-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