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친구

유인원 보단 고릴라

by duke j


(2024.7.21일 기록)

대학 1학년때 토목을 전공하던, 사람이라기 보단 두루두루 유인원에 더 가까웠던 아주 요상한 느낌을 주는 아이와 서클룸에서 첨 마주쳤다. 짧고 굵은 손가락으로 베이스를 치겠다고 들어와 선배들에게 매질과 예쁨을 동시에 받았다. 강북의 한 부도심에 살던 놈은 요즘엔 한국 최대 재벌집 손자들도 탁구공 잘 뽑아야 들어갈 수 있다는 명문 사립 초교를 나왔는데 놀라운 건 이놈이 집에선 엄청 귀한 외아들이었고 피아노를 전공하신 모친이 그 귀한 아들의 망나니 친구놈들에게도 지극 정성을 다 해주셨다는 거다. 못마시는 술을 이기지 못해 한밤중 몰래 기어 들어가 방에 같이 널부러져 있던 아들 친구에게 언제나 점심때 쯤 술국을 내놓으시며 우리애 삐뚤지 않게 잘 붙들어 주라 말씀하셨는데 그때마다 '아 죄책감이란 게 이런 거로구나' 매번 느꼈다. 어머니의 간곡한 당부를 뒤로 하고 1학년 겨울방학과 2학년 여름방학 때 동두천 미군부대 앞 내국인 출입금지 구역의 한 클럽에서 같이 먹고 마시고 또 쓰러져 자면서 어설프게 락음악을 연주하다가 이렇게 살다간 바로 죽겠구나 싶어 내가 먼저 군대로 도망쳐 들어갔다. 곧 따라 들어온 놈의 군생활도 꽃길이었다. 나름 전공을 살려 주겠다고 이 인간(거듭 말하지만 사실 전적으로 그리 부르기엔 좀 애매한)을 공병대가 뽑아 놨는데 고참들이 깨끗이 시멘트 발라 놓으면 심심했던 놈이 "제가 머 도와드릴 거 없습니까" 하고 몇걸음 움직이면서 손으로는 벽을 푸욱 무너뜨리고 군화로는 바닥에 발자국 서너개를 깊이 박아놔서 첨엔 좀 맞다가 나중엔 아예 현장 열외로 지루한 신병 생활을 이어가야만 했다고 한다. 복학 후 내가 운좋게 나라에서 주는 면허를 받게 되자 놈도 변리사 시험을 보겠다고 나섰는데 그때 바로 뜯어 말렸어야 했다. 그런 시험에서 3년을 연달아 떨어지면 그땐 놀리기도 좀 머해지는 시점이 온다. 놈의 집에 갈때면 어머니가 "너만 사람되고 얘는 버려두면 어떡하냐"고 한동안 나무라셨다. 놈은 아직도 시험을 보고는 있냐고 묻는 것도 귀찮아질 영겁의 시간을 보낸 후에야 어찌 합격했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오늘도 이 인간을 품고있는 변리사 업계에 심심한 위로를 남긴다.

며칠전에 이젠 오래된 유인원 같아진 그 아이가 8월 말에 학교 ob행사가 있다고 연습해야 할 9곡의 리스트를 메시지로 보내왔다. 전엔 머리가 안됐지만 이젠 몸도 안되는 중늙은이들이 남들 앞에 나선다는 거 자체가 노망끼 드러내는 일이란 걸 정작 당사자들만 모른다는 게 문제다. 날고뛰는 후배들 꼬셔 보랬더니 주변에 나같이 할일 없는 놈 찾기가 쉽냐고 놈이 정색해서 30년만에 고무패드 치러 학교 연습실에 가는 중이다. 제발 현역 애들이 없었으면 좋겠다.

#변리사 #베이스기타 #sonagib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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