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타까운 일들
(2022.11.4일 기록)
20대 초반, 군악대 일병 정도 되었을 때일거다. 부대인근 마을 버스 정류장 앞에 대형트럭이 서 있었고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소리로 보아 무언가 일이 벌어진 듯했다. 좀 지나니 옆 미용실에서 머리에 수건을 두른 아줌마가 나와 누구야! 이름을 부르며 아이를 찾다가 아스팔트 위에 쓰러져 있던 서너살 아들의 시신을 발견하고 정신을 놓았다. 뒤늦어도 너무 늦은 엄마가 들어올린 아이의 몸에선 이미 훼손된 무언가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나는 고개를 돌렸다. 그 모든 상황을 담담히 다 지켜볼수 있는 객기가 있었겠나. 내가 본 사람의 첫 죽음이었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임종을 난 지키지 못했다. 아버지는 새벽에 돌아가신걸 아침에 발견했고 어머니는 연락을 받고 병원으로 가던 중 돌아가셨단 통보를 받았다. 사람이 죽는 과정을 온전히 지켜본 건 세살 어린 동생 승우가 죽었을 때다. 동생은 고등학교 때 받은 수술로 평생을 요양병원에 머무르다 40이 되어 죽었다. 나혼자 병원에서 그의 죽음을 지켰다. 호흡과 맥박이 약해지고 혈압이 떨어지니 의사가 준비하란 말을 남기고 자리를 떴다. 누구나 다 겪는 일이니 편하게 맞아라. 미안했다. 다시 태어나거든 부디 행복하게 살아라. 숨을 헐떡이는 그의 귀에 대고 마지막 말을 전했다. 동생은 고개를 끄덕인후 바로 숨을 마쳤다. 내가 직접 본 두번째 죽음이었다. 내 지적능력 중 가장 뛰어난 기능이 망각력이지만 그 두 죽음의 기억과 관련해선 절대적으로 예외일 것이다.
죽음엔 예의가 있어야 한다. 누구에게든 준비되고 이악문 각오로 맞게 해줘야 한다. 이태원에서 150여명이 깔려죽은 사고가 일어난 직후 현장을 지휘하던 소방서 책임자가 사고의 내용을 브리핑하는 모습이 찍힌 동영상이 있다.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는 마이크를 쥔 그의 손이 사시나무 떨듯 흔들렸다고 한다. 150명의 죽음이 눈앞에 있고 그 현장을 본인이 관장해야 하는데 제 정신으로 상황을 마주할수 있었겠는가. 한동안 또는 평생동안 그날의 기억은 그를 끊임없이 괴롭힐 수도 있을 것이다. 이 모든 것들을 지켜보고 또 이어지는 뒷얘기들을 들어야 하는 우리 모두가 다 애처로운 시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