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형의기사 partII
지난날을 되돌아보면 삶엔 특정한 속성을 지닌 어느 특정한 기간들이 있다. 나로 예를 들자면 1991년부터 1993년까지의 기간이 그런 때다. 그안엔 내게 음악과 영화와 소설과 시 같은건 아예 없다. 취직시험을 준비하던 그 기간 동안 내게 남겨진 기억은 새벽녘 버스를 기다리며 맡던 싸한 공기냄새와 바닥에 늘어붙을듯 피곤했던 몸과 회계학원의 좁은 강의실과 가슴이 부들부들 떨리던 끝모를 불안감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놓지 못했던 아르바이트 일들과 그래서 앉기만 하면 쏟아지던 도서관 책상 위의 잠 같은거 외엔 별로 없다.
한참을 지나 다 늙어지고난 후에야 이젠 죽어 음악만 남은 가수가 그 시절에 불렀던 노래들을 듣는다. 어릴때 딱 한번 대면한 적 있던 이다. 그는 지금은 변리사 일을 하는, 베이스기타를 치던 내 친구의 오랜 지인이었다. 대학교 축제 무대 뒤에서 이미 유명 아티스트가 되어있던 그가 내 친구와 만나 반가워하던 걸 기억한다. 굳이 왜 그랬을까. 그는 반대편에 서 있던 사람들의 엄청난 반발과 저주와 욕설을 감내하고서라도 항상 지가 하고픈 말을 다하고 살았다. 나같은 겁장이와 쫄보들을 부끄럽게 하고 지 하고픈 대로 지 맘껏 머든 다했고 그랬던 삶이 그의 음악에 오롯이 다 담겼다. 지나고 나서 보니 유독 그의 노래엔 죽음이 많았다. 삶이 다할때까지 사랑하겠다는 연인을 향한 굳은 의지와 어릴적 마주했던 병아리의 아픈 죽음과 큰물에 이르러 생을 끝내고 싶다는 민물장어의 소망 같은게 그가 만든 노래의 흔한 소재였다. 다른 천재들과 마찬가지로 그도 너무 이른 나이에 너무 어이없는 사유로 죽음을 알렸다. 정말 어처구니가 없었다.
오늘 우연히 알고리즘에 갖혀 그가 1992년에 남긴 인형의기사를 반복해 듣는다. 20세기가 끝나려면 8년이나 남았던 시기에 만들어진 노래가 이럴수 있는 거다. 좀더 같이 살다가 가지. 사람아.
#신해철 #인형의기사partI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