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데타의 전말

대학교 락밴드

by duke j

대학 1학년 봄에 락밴드 1,2학년생들이 개인 악기들 싸들고 최소 해발 100미터 높이는 돼보이는 음대 합주실로 다 기어 올라갔다. 곧 있을 축제에서 연주할 학교 응원곡을 음대 취주악부와 맞춰보기로 했던 날이었다. 나팔 전공하던 음대생들까지 합주실에 다 모이자 복학생이던 음대 악장 선배가 지휘봉을 들었다. 하필 그때 락밴드 직계 2학년 기타리스트 형이 악장에 집중하지 못하고 다른 일을 하고 있었나 보다. 말로 했었는지 아님 행동까지 수반되었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훨씬 선배였던 음대 악장 형이 지질학 전공하던 그 2학년 기타 형을 좀 나무랬다. 중고딩을 거치며 대부분 학교 밴드부 경험이 있던 나팔 전공 음대생들과는 달리 타의 모범이 되는 학창시절 같은 건 거의 보내본 일 없던 우리 1,2학년 딴따라들은 (대부분) 그 상황에 반발해 무겁게 들고온 악기들 다시 들쳐매고 100미터 아래 대강당 구석 서클룸으로 되돌아 와 버렸다. 30년이 훨 넘은 얘기다. 그날 벌어진 일을 락밴드의 3,4년 직계선배인, 어휴 그 무섭던 기계공학과 기타리스트 형에게 누군가 전했었던 건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어쨌든 그 일이 있고 나서 몇달이 지나지 않아 철없던 비전공 딴따라들 모임인 우리 락밴드가 음대 취주악부를 대신해 학교의 모든 응원곡을 전담해 연주할 권리와 의무를 갖는 행정기관으로 공식 지정되는 이상한 사태가 벌어진 거다. 모든 시대적 변화는 항상 그런 돌연변이적 시도로부터 촉발된다. 물론 바로 발빼고 도망쳐 들어간 군악대에서 난 비로소 알게 되었다. 오케스트라의 악장이 지휘봉 든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를, 얼마나 살벌하게 집중해야 하는 건지를. 그날 음대 악장 형에게 혼나자마자 바로 악기 싸들고 내려간 지질학 전공했던 기타리스트 형은 미국의 유명 음대에서 유학하고 돌아와 재즈 연주가 겸 작곡가가 되어 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딴따라의 의무는 다해야 한다는 신념으로 묵묵히 남아 키보드 다 치고 내려왔던 교육학 전공의 신실했던 형은 역시 미국에서 공부하고 들어와 교회음악과 교수님이 되었다. 얼굴 기억도 안나는 그때 그 음대의 취주악부 악장 형, 살다가 어찌 용케 다시 마주친다면 여전히 철없는 다른 딴따라 동기나 형들보다는 그나마 쫌더 정상인에 가까운 내가 (그나마 개중엔 그렇단 얘기다) 꼭 머리숙여 사과드리고 싶다.

#응원곡 #대학축제 #yonsei_sonag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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