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소는 코뿔소다
대형 회계법인을 다니다 2000년대초 몸이 다 망가져 퇴사하고 개인사무실을 개업한 직후 신생 벤처캐피탈에 인하우스 회계사로 일을 한적이 있다. 햇수로 3년여였을까. 처음으로 1선에서 투자업을 접한 시기였다. 당초 유명 전자회사를 다니다 그 투자회사로 이직해 근무하고 있던, 나보다 2년 연상인 부장 아저씨가 내게 항상 하던 말이 있다. "나만 믿고 따라오면 이회사 나갈때 3억원은 손에 쥐어주겠다." 그때 3억원은 내가 살던 서울근교 위성도시 작은 평수 아파트 가격의 두배에 이르는 돈이었다. 그를 믿고 의존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히 불타 올랐다. 모두의 염원과는 반대로 2000년대초 시장의 버블을 안고 시작한대다가 공동경영 체제로 경영진 상호간 견제기능이 작동되지 않았던 그 벤처캐피탈의 사정은 계속 악화되었다. 근거법상 파트너 10명이 필요했던 회계법인의 설립에 참여하며 내가 그 벤처캐피탈 일을 그만 둔후 그도 별 소득없이 그 투자회사를 나왔다. 한동안 돈이 필요한 회사에 금융회사를 소개시켜주고 구전을 받는 자금 브로커 역할을 하며 생계를 유지한다는 소문이 들리더니 자본없이 시작할수 있었던 llc형태의 마이크로vc를 그조차도 파트너 2명과 시작할 거라며 연락해 와 초기 설립자금의 투자를 요청했지만 내가 거절했다.
수년간의 잠행을 끝내고 이곳저곳 나다니며 이런저런 사람들과 만나보고 있던 차에 오랜 친구로부터 그의 소식이 들려와 어제 그와도 통화를 해봤다. 10여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사업은 어려운듯 보였다. 그가 나라의 공적자금을 위탁받아 투자를 시작한 즈음부터 나는 남들이 비웃고 관심을 두지 않았던 일들에 집중적으로 관여해 그로부터 찾아들어온 행운의 수혜를 입었지만 그는 당시 가장 전망이 좋다는 테마들을 쫓아다녔음에도 그닥 의미있는 성과를 내지 못한 걸로 보인다. 항상 그가 진행하던 프로젝트는 시대의 유행에 맞았고 남들과 경쟁해야 투자할수 있었던 테마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학교 다닐때도 1년의 계획을 미리 세워 반드시 실행했다는 모범생이었고 나는 흔히 말하는 문제아에 가까웠다. 그가 20여년 전에 했던 '나만 따라오면 변두리 아파트 두채 정도는 살돈을 벌게 해주겠다'던 말이 아직 귀에 생생하다.
살아보니.. 또 남들 살아가는 걸 옆에서 유심히 지켜보니 누가 누구를 책임져준다는 말처럼 허망한 말이 없었다. 어릴때나 힘이 없을때 그런 말이 주는 위안은 대단해 그런 말을 일삼는 이들에게 심신을 의탁하고 싶은 마음이 들수도 있을꺼다. 하지만 우리 선조들은 경험으로 축적된 지혜의 말들을 이미 남겨 놓았다. ㅎㅎ time will tell. 세월은 말해준다. 제발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고
#무소의뿔처럼혼자서가라 #벤처캐피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