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생각 없던.
90년대초 내가 보낸 대학생활의 기억들은 거의 남아있지 않다. 흐릿한 분위기로 떠오르는데 항상 불안했던 것 같다. 아버지는 가난했고 나는 무기력했다. 학교생활을 중단하고 군악대를 다녀온후 복학해 1년을 더 빈둥거리다 생업을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 3개월을 준비해서 1차시험을 치렀는데 시험지를 받자마자 바로 시작할 엄두를 낸거 자체가 만용이었단 사실을 깨달았다. 답을 찾아보겠다는 생각도 없이 문제를 한번 쭉 훑어보니 쉬는시간 없이 치러지던 그 몇시간짜리 시험이 끝나있었다. 시험장이던 홍대 언덕을 걸어 내려오며 그런 무지막지한 시험은 나같은 부류가 10년을 더 공부한다해도 붙지 못할 것 같단 생각을 했다.
당시 내모습을 볼수 있는 자료는 거의 남아있지 않다. 난 정장이 없어 대학 졸업사진도 안찍었다. 우연히 그즈음과 가장 가깝던 시절의 사진을 발견했다. 그날 10년이 걸려도 절대 붙지 못할것 같아 보이던 그 시험에 어찌어찌 2년만에 합격해 나는 회계사 일을 하기 시작했다. 사는건 다 운이다. 내가 살아내는 것 같지만 실상은 누군가 나로 하여금 울고 미워하고 사랑하고 아끼고 감동하라고 위탁한 역할을 대신해 내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yonsei_sonag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