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입대한 날

뺄수 있었을 지도. ㅎㅎ 농담이야.

by duke j

(2023.12.26일 기록. 이놈 벌써 전역해 딴 나라 가 있다.)

오늘 둘째애가 입대했다.

꺼내기 어려운 말이지만 내 대학친구들 중 집에 돈푼이라도 있었던 애들은 대부분 군복무를 (당시 흔한 말로) 돈주고 뺐다. 마침 징병 시기에 맞춰 신검을 담당하던 몇몇 어리숙한 군의관들의 병역비리가 세상에 드러나 주변이 시끄러워지는 바람에 1인당 내야할 비용이 2천만원까지 올라갔다고 투덜대던 아이들 기억이 난다. 당시 2천만원은 내가 냈던 1학기 등록금의 수십배에 달하는 돈이었다. 형이 먼저 법조계에 들어가 있어서 결국엔 저도 그길 걸어야 할것 같다던 한 아이는 군 면제를 받은후 사시에 합격해 검사질 하며 금융사범들 잡아 넣다가 몇년 전에 수도권 어느 고검에서 부장으로 퇴임했고, 나중에 imf 환란기에 파산하게 되는 모 금융사의 최고경영자를 아버지로 뒀던 한 아이는 군 면제후 미국으로 건너가 유명한 철강 갑부가 세웠다는 유력 대학의 mba를 마치고 돌아와 우리나라 두번째냐 세번째냐 하는 대규모 기업집단에 들어가 승승장구했다. 그래서 나는 내 나이정도 되었거나 또는 그보다 더 늙은 노인네들 중 군복무를 면제받고 후에 세속적인 성공을 이뤄냈다는 사람들을 볼때면 운 나쁘게 시기 잘 못맞췄으면 2천만원 정도는 썼겠구나 라고 어림 짐작하는 편협하고 비뚤어진 선입견을 가지게 되었다.

나는 몇년전과 그리고 오늘, 두차례에 걸쳐 한번에 편도 3시간여를 직접 운전해 가 입대하는 아들 두 녀석을 각각 논산훈련소 정문 앞에 반듯하게 내려주고 왔다. 내가 그 배후의 실상을 전혀 모르고 있기에 함부로 말 꺼내기는 부담스럽지만 혹시 만에 하나 요즘 세상에도 그 옛날 내 친구들이 대놓고 투정할 정도로 공공연했던 병역비리의 잔재가 남아 있다면.. 그렇다 한들 그 협잡의 대가로 지불해야 하는 비용이란 게 요즘 아들 놈들이 바다 건너에서 1년에 써재끼는 달러돈 남짓이면 되지 않겠냐는 감 정도는 가지고 있다. 평생 숫자만 들춰보고 살아온 내가 그리 느끼는 거로 물론 어긋날 수도 있겠지만, 사실 여기서 요는 그게 기껏해봐야 있는 놈들 입장에선 별거 아닌 돈이겠다 싶은 거다. 지가 더 출세하고 돋보여 보겠다고 어리디 어린 부하들을 사지로 내몰고 나서는 혼자 발뺌하고 있는 부끄러움 모르는 지휘관들이 아직 건재한 군대에 들어가 젊은 시절 1년 반을 조건없이 희생하라고 강요하는 건데 그걸 빼주는 대가로 그정도 뒷돈 요구하는 건 오히려 고마운 일이라 생각할 부모나 아이들이 요즘에도 분명 있을 것 같긴 하다. 어쨌든 난 다행으로 여긴다. 그런 계산을 해낼 정도로 아이들 둘이 영특하지 않아 창고에 넣어뒀던 야구빠따를 다시 꺼내야 할 일 생기지 않았다는 걸. 축구를 좋아하는 아들은 귀국후 입대 직전까지 집단생활에 대한 기대에 들떠 있었다. 아마도 지금쯤은 어.. 이건 아닌데 하는 생각에 비통해 하고 있을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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