퀴즈만능 시대
(2023.6.23일 기록. ai가 이렇게 빨리 일반화될지 몰랐던 때 어딘가에 적어 올렸었는데. 이젠 세상의 속도에 현기증이 남.)
아주 오래전에 장학퀴즈란 프로가 있었다. 아마 일요일 오전에 공영방송에서 송출했던것 같다. 전국의 수재란 고딩학생들 다 기어나와 단답형 퀴즈문제 정답 많이 맞추기 경쟁하는. 지금 생각해 보면 짜장면 많이 먹는 애에게 대장 칭호 주는거나 매한가지이던 그 경연 프로그램이 우리나라 굴지의 재벌그룹 협찬으로 수십년간 이어져 왔다는 게 오히려 놀랄 일이다. 남들이 일으킨 전쟁에 장기판 병졸이 되어 같은 말 같은 글 쓰는 이웃끼리 서로 죽고 죽이고 나서 폐허가 된 땅덩어리만 겨우 넘겨받은 세계 최후진국 국민이었던 우리는 전후 수십년 동안 선진국이 하던 걸 그대로 모방하거나 사실상 도용해 그들이 개발해낸 기존 제품을 싸고 빨리 엇비슷하게 만들어내는 걸 성장의 단일 모델로 채택해 나라의 경제발전을 이루어 냈다. 그 시절 모방과 단순 반복작업에 특화된 일꾼을 양성하기 위한 목적으로 강화되었던 공교육은 아주 싼 비용이 장점이던 문제은행식 4지선다형 종이시험을 교육성과의 평가방식으로 일찌감치 받아들였다. 정답만을 추구하는 전체주의적 학교 분위기 속에서 안이하게 오답을 내면 야구방망이로 얻어맞는 건 흔한 일이었고 군대의 상관같던 선생님이 시키는 짓 외의 다른 시도는 아예 엄두도 못내야 하는 건 당연했고 다수설 정답을 의심하는 소수의견은 정답이 아니라고 간주돼 외면 뿐 아니라 배격까지 당해야 하는 지극히 정답 만능의 시대를 겪어왔다. 하지만 이젠 말할수 있다. 종이시험의 정답이란건 어제 일어난 흔하고 값싼 일들을 기억하는 데엔 유효하겠지만 부르는게 값이 될 새로운 무언갈 만들어 내야 하는 창발의 내일엔 우리에게 아예 무의미한 것이 될수도 있음을.
살아보니 정말 정해진 답이 있었던가? 남들이 그렇다 하니, 나서 보지도 못한채 머릿속 생각으로 그러려니 하고 살아온 사람들이 아닌, 직접 몸으로 겪고 직접 세상에 부딪혀 본 사람들에게 물어보고 싶다. 글쎄.. 내가 보아온 여러 삶들엔 정답이랄 게 전혀 없었고 몇개 안되는 인상 깊었던 근사값들만이 겨우 기억에 남아 있는 정도에 불과했다. 그나마 그 근사값들이 현실 안에서 유효하게 작동될 확률이란 것도 사업의 성공 확률이라 흔히 경고되는 열번이면 한두번이 될까 말까한 정도가 아니었었나. 살면서 내가 행한 선택의 승률이 20%만 넘어섰어도 내가 지금보다 10배는 더 이뤄냈을것 같단 생각을 매번 해본다. 혹시 남들이 원하는 정답을 골라내는 능력이 그닥 없다고 스스로 믿는 사람이 있다 한들 기죽어야 될 일이 전혀 아닌 건 분명하다. 각기 다른 방향으로 길을 나선 사람들이 어떤 곳에 이르는지는 확실히 나중이 되어야 확인된다. 아마 그 결과를 마주하게 되면 서로 깜짝 놀라게 될수도 있으니 미리 자만하거나 미리 포기할 필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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