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판매업의미래

3년 전 글인데. 이젠 정말 현실이 됨.

by duke j

(2023.4.5일 기록)

고딩 친구 한놈은 그 어릴때에도 사법시험을 봐 법조인이 되는게 삶의 목표였다. 지하철 2호선상 대학에 들어가 법학을 전공했으나 결국 사법시험을 통과하진 못했고 대학을 졸업한후 외국계 보험회사에 입사해 지금까지 영업을 하며 살고 있다. 언젠가 왜 그리 장렬한 각오로 사시를 보려했냐 물으니 아버지가 못이룬 걸 아들이 받아 해보려 했다는거다. 대를 이은 가업은 성취되지 못했고 나는 가끔 아들이 평생 갖고 살아가야 할 그 열패감의 귀책이 누구 것이었을까 생각하며 친구를 안쓰러워했다.

대학교 다닐때 한치 앞을 볼수 없던 내가 어찌 운좋게 나라가 주는 면허를 얻게 되자 주위 후배들 용기가 승천해 이놈저놈 다 자격시험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저 인간이 합격할 정도면 아무나 될수 있는 거 아니냐.. 머 다들 그런 생각이었을 거다. 그런데 하늘은 행운을 랜덤으로 내려주고 그조차도 가끔 차례를 까먹는 바람에 받아내야 하는 놈들을 거의 반미치광이로 만들어 놓기도 한다. 친구의 사촌이며 서클의 후배이던 한 아이는 8년여를 공부해 겨우 회계사가 되었다. 군면제가 안되었다면 버텨내기 어려웠을 취직을 향한 긴 여정이었다.

지식판매 면허직은 공권력이 업을 보호해 주는 영역에서 지식과 데이터를 독점하는 방식으로 초과수익을 창출했다. 배타적인 시장을 제공받은 면허직 전문가그룹이 그 반대급부로 수행해줘야 했던 역할은 기득권이 장악한 세계관에 의심을 품지 못하도록 일반대중을 순화시킬 논리적 배경과 사회적 여론을 제공해주는 일이었다. 그 둘간의 연횡이 깨질수도 있겠다는 조짐이 보이기 시작한건 인터넷 지식검색이 등장하고 나서다. 3초면 모든 지식이 다 확인되는 세상에 내게 멀 물어보겠다고 전화걸어오는 클라이언트를 혼내기 시작한지도 이미 한참되었다. "야. 네이버나 구글에 다 있잖아. 내가 멀 알겠어." 패배를 인정하지 못하고 마지막 발악 중인 동료들도 있지만 인터넷 법률상담이나 ai 원격진료나 회계감사 모듈이 오류 많은 인적 전문가 서비스를 대체하는데 걸릴 시간은 생각같이 길진 않을 것이다.

꼰대들의 머리를 지배하는 확신은 대부분 본인들의 사춘기 이전에 형성된 것일수 있다. 내 나이대 늙은이들로 치자면 한국의 산업화 고도 성장기 즈음에 해당될 터이고 그때 이미 부모로부터 상속받은 정치성향과 종교관, 사람을 바라보는 시야각 등이 자리잡기 시작했을 거다. 단순 암기기능만 있으면 점수받기 무리없던 일체적 객관식 시험으로 본인의 등수를 특정하고 일괄적으로 쫓아 들어간 대학에서 철지난 지식 몇줄 배워 나오면 누구나 안정적인 직장을 찾을수 있었고 조금 모험적이어서 전문직 면허라도 얻게 되면 대단히 성공했다 서로 인정하며 큰 어려움없이 거져 살아올수 있던 시절이었다. 고작 그 기억 밖에 없는, 평생 스스로 자기 삶의 목표를 성취해보지 못한 소시민들이 수십년전 받아들인 낡은 생각을 가지고 앞으로 수십년후 상상도 못할 미래를 살아갈 아이들에게 지가 어릴때 들었던 바를 강요한다. 그저 시키는 공부 열심히 해 좋은 대학가서 큰 조직에 취업하고 그안에선 무슨 험한일 당해도 꾹참고 인내해 성실한 종업원으로 정년퇴직하라고 조언하는 거다. 그 흐름이 아직도 도도히 유지되고 있으니 자기가 못이룬 꿈 대신해 줄거란 기대로 아들딸 사교육비 대느라 허리가 부러진 부모들 앞에서 수백억 연봉의 인터넷 일타강사란 애가 '당신들 아들 딸들 기를 쓰고 대학 보내봐야 전혀 별볼일 없는 세상이 왔다는 거 알고는 있는 거냐'고 공개적으로 조롱하는 세태에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지난 10여년간 변호사 시험과 회계사 시험을 보겠다던 후배애들과 조카애들을 적극적으로 말리지 못한게 죄스럽다. 그 년놈들 오늘도, 또 내일도 야근에 초과근무에 컴퓨터 앞에서 다신 돌아오지 못할 청춘의 정기 다 빨리며 시들시들 앉아있을 거다. 더 늙어보면 안다. 머시 중헌지. 살아서 몇번이나 더볼지 모를 봄이 눈앞에 와 있으니 후배들아.. 작은 푼돈에 귀한 시절 맞바꾸지 말고 그냥 다 밖으로 나가 맘껏 놀아라.


#전문직 #변호사 #회계사 #의사

작가의 이전글애국가를 바꿀수 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