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사의 아들
(2023.9.3일 기록. 탄핵전 그의 집권기에.)
#친일파
국민학교 들어가기 전 어릴적 기억에도 집에는 일본 책과 잡지들이 많았다. 일제시대를 거치며 초등부터 고등교육까지를 일본학제로 받은 아버지가 즐겨 읽던 게 다 그런 일본 책들이었다. 가족간엔 일본과 관련된 얘기들이 자주 화제로 올랐고 살면서 때론 한국인이 가지지 못한 일본의 형식적이고 정제된 국민성에 오히려 호감을 느꼈던 경우도 많았다. 친일이란 말이 주홍글씨처럼 유통되는 나라에서 나라가 제공하는 모든 공공재를 다 소비하며 성장해온 나이지만 내가 일본에 날선 반감을 품고 사는 우국의 국수주의자 그룹에 속하진 않는다는 건 어쩔수 없는 사실이었다.
내가 졸업한 대학은 과거 경영대 지붕 아래 응용통계학과가 같이 입주해 있었는데 그 영향으로 1학년 때 수강해야 할 전공 필수과목에 통계학 원론이 포함되어 있었다. 내게 통계학을 가르쳤던 은사는 기골이 장대했고 항상 미소가 얹힌 가는 눈으로 제자들을 바라봤으며 얼굴을 이루는 이목구비에서 매우 강건한 느낌이 오던 느릿한 말투를 지닌 초로의 학자였다. 게으르거나 무례한 제자들은 거침없이 혼냈지만 그럼에도 사적인 자리에서나 강의 중에 유머가 배제되었던 적은 거의 없었다. 어느 수업에든 매우 공평하고 일관되게 출석하지 않았던 그 학기에 그나마 내가 2점대 초반의 평균 학점을 받은 데엔 그양반이 주신 B학점이 큰 기여를 했다. 최근에 그이가 돌아가셨단 소식에 세상이 떠들썩했다. 그의 아들은 역시 근래 운명을 달리한 내 인척과 매우 가까운 후배 법조인이었는데 고딩과 대학을 같이 다녔다던 고인의 장례식에 조문을 다녀가고 며칠이 지나지 않아 한국의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현직 대통령이 전직 선배들과는 달리 일본과 가까운 행보를 보이고 있음에 혼란스러워하는 사람들이 많나 보던데 어찌 보자면 당연한 일이겠다. 그의 아버지는 서구가 아닌 일본에서 공부하고 들어온, 그 대학에선 이미 매우 드물던 석사출신 교수였으니 일본에서 공부한 학자를 아버지로 둔 아들이 그 영향을 안받았을 리가 만무하다. 하다 못해 일제시대 때 초등교육을 받은 아버지를 둔 나만 보더라도 그렇지 아니한가.
세상이 변해감에 따라 이웃을 대하는 나라의 태도가 변해가는 건 당연한 이치다. 젊은이들의 피흘림을 감수하고 달러를 벌기 위해 용병으로 참전했던 베트남 전쟁에서 한국은 아녀자를 포함한 현지 마을의 생명체를 다 몰살하는 방식으로 귀신잡는다는 용사의 명성을 얻어낸 바도 있었지만 현재엔 그 부끄러운 과거를 거의 극복하고 베트남 경제와 사회에 가장 중요한 영향을 끼치는 동반의 파트너로 인정받고 있다. 일본에 원자폭탄 두개를 떨어뜨려 수십만명을 몰살했던 미국이 이미 오래전부터 일본의 최우방국이 되어 있다는 건 그냥 항상 그대로인 현실이다. 세상은 다 그리 변해간다.
하지만 변화엔 반드시 분명한 이유가 있어야 하고 그건 우리 공동체가 받아들일 더 큰 이익으로 입증되어야 함도 마땅하다. 그럴리 없겠지만 지도자가 혹시 성장과정에서 각인된 개인적 취향이나 반대세력에 대한 적대감만으로 이익이 거의 수반되지 않는 방향으로의 국가적 변화를 주도하고 있는 거라면 그건 나같은 소아적 친일파가 주변에 미치는 짜증같은 거완 비교가 안될 큰 여진을 만들어낼 수 있는 거다. 다음주 또 도쿄에 좀 다녀 올려는데 해산물을 먹어야 되는건지 매우 고민된다. 이런게 친일파의 딜레마다.
#윤기중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