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기
(2023.5.31일 기록. 1년이 채 되기 전에 돌아가셨다.)
#김민기
이 사람이 지은 노래를 듣다가 가끔 그 가사를 가만히 들여다 볼때면 언제나 막막한 경외감 같은게 느껴진다. 그와 그의 저작물들을 대할때 생기는 그런 느낌은 나같은 사람만 가지는건 아니었나 보다. 몇해전 이 나라 최고 재벌기업의 창업자를 기린다는 호암상의 예술분야 수상자로 그가 선정되었던 걸 기억한다. 살면서 집과 거리와 학교와 일터와 광장과 바다와 산아래, 우리땅 어디서든 들려와 그냥 몸과 맘에 새겨진 노래. 한낮 묘지 위에 붉게 타오르는 태양의 시련에도 서러움 모두 버리고 이제 가노라는, 그의 선혈같은 노랫말은 지금 누군가에게 다시 그리 지어보라한들 선뜻 나오기 힘든, 대중가요에서 보도 듣도 못한 낯선 단어들의 조합으로 이뤄져 있다. 하물며 다 금지되어 알려지지 않았던 그의 다른 저작들을 새로이 접할때 느끼는 생경함은 말해 무엇하겠는가. 무슨 옴니버스 드라마 속 에피소드 같은 그 노래들의 뒷얘기를 들어보면 그의 가사와 멜로디가 상업주의의 뻔한 클리셰를 답습하지 않았던 이유를 알게된다. 고딩때 익사한 친구의 죽음을 가족에 알리러 가는 기차안에서 친구를 그리며 만든 노래가 있고, 카투사 하다 느닷없이 끌려간 최전방 부대에서 퇴역을 앞둔 늙은 군인의 하소연을 듣고 만든 노래가 있고, 입대전 천릿길 여행의 기억을 더듬어 만든 행진곡이 있고, 공장야학 시절 동료 노동자들의 합동 결혼식 축가로 준비한 저들에 푸르른 솔잎을 보라는 노래가 있고, (금지 당해도 싸지) 아직까지도 조공 바치는 상국인 미군의 이태원 기지촌을 겁없이 그린 노래가 있고, 이국에서 열린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지 못하고 귀국하는, 올라야 할 봉우리를 맘속에 품은 운동선수들을 위로했던 노래가 있고, 그리고 들을 때마다 날 어린시절로 데려다주는 해저무는 들녘 밤과 낮 사이 어딘가를 그린 풍경화 같은 노래도, 바람부는 처음을 알고 싶어 교정 뒤안 황무지를 똑같이 두리번거리던 내 대학시절을 들켜버린듯 기시감을 주는 노래도 있다. 결혼 전이었을까 후였을까. 어느 주말, 먼 변두리 집에서 출발해 오랜시간 지하철을 타고 도착한 대학로 극장 학전에서 처와 함께 그가 기획했던 뮤지컬 '지하철 1호선'을 관람한적 있었다. 어쩜 그날 공연엔 당시 찌질한 젊음을 견뎌내고 있던 무명배우 황정민, 설경구, 조승우가 나왔을지도 모른다. 그즈음 내가 살던 것의 거의 전부였던 생업과 오직 그것만을 위해 할애되던 재충전의 시간 외에 조금이라도 더 여유를 가지고 있었더라면, 지금은 아예 대면할 엄두조차 못내게 된 그이를 어떻게든 꼭 한번 만나나 보고 왔을 터인데. 그는 학교에서 미술을 전공했고 대중가요를 만들어 부르다 독재권력에 사회부적응자로 낙인 찍혔고 그후 주로 농사를 지으며 살다가 중년에 극장 주인이 되었다. 혹시 그날 극장에서 우연히라도 그와 마주쳤더라면 어쩜 붙잡고 물어봤을지 모른다. 이젠 좀 괜찮아진 거냐고. 어떡하다 그리 놀라운 생을 살게 된 거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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