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쿠터 없인 살기힘든 집

허상 위의 성들

by duke j

(2024.8.26일 기록)

수년전 교외에서 광화문으로 이사하기 전 서울을 돌아다니며 살 집들을 좀 찾아본 적이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왜 거길 가봤을까 싶었던 집도 많은데 예를 들자면 전망이 좋아 날씨 맑으면 인천 앞바다도 보인다는 잠실에 삐죽 솟아있는 건물 같은게 그런 거였다. 건물의 2/3 정도 높이에 주거층이 있었는데 뷰가 좋다고 거듭 어필하길래 거실에 앉아 창을 바라보니 미세먼지로 뿌연 텅빈 허공만 보였다. 주변에 머가 있나 좀 보려면 열리지도 않는 창가까지 다가가 고갤 한참 숙여 내려다 봐야만 했다. 당시 먼 생각으로 그랬는지 무려 4번이나 가서 그 집을 봤는데 판매상은 취득과 관련된 비용을 지들이 부담하는 식으로 값을 깎아 주겠다고 하다가 나중엔 2년치 관리비를 내주겠다고도 했다. 내가 웃었더니 전기나 수도물을 한톨도 안쓰더라도 기본 관리비가 월 200만원씩은 나오니 2년치 합하면 그것도 최소 0.5억원은 된다고 생색냈다. 약 5,6년전 얘기다.

여러번 방문했던 또 다른 집은 한남동 옛 대학부지에 지어진 언덕 위 아파트였다. 집밖에 차를 타고 나다니는 것도 하루이틀이지 걸어서 그집 드나들려면 언덕 경사 때문에 심리적인 부담이 오지겠다 싶었다. 아파트를 바라볼때 우측 경계에는 동네 골목으로 내려가는 엘리베이터가 야외에 설치돼 있었고(그거 없었으면 요즘 같은 여름엔 마실 나갈 엄두를 못냈을 거다. 물론 아파트 정문 쪽에 그런 게 있을리는 만무했다.) 아파트 뒷쪽 언덕 끝에는 월 이용 횟수에 제한이 있다던, 쿠폰값이 관리비에 포함돼 제공된다는 헬스클럽도 따로 있었는데 운동하러 거기 올라가다 보면 이미 그날 해야 할 운동량은 다 채워질 것 같던 높이였다. 당시 밖에선 그 아파트 집들이 이미 다 팔려 더 높은 시세로 거래되고 있다는 소문이 파다했으나 내가 본 빈집만 해도 5개가 넘었고 다른거 없냐 물어봤더니 얼마든지 더 보여드리겠다는 식이었다. 여기도 역시 취득세를 회사가 부담하겠다며 집값을 깎아 주겠다 했지만 집 상태는 이미 임대주택으로 몇년을 돌린 후에 분양하던 거라 남이 살던 흔적들이 역력했다. 이후로 난 지가 만든 물건 완판되었다 떠드는 애들 말을 띄엄띄엄 듣게 되는 버릇이 생겼다. 자산운용사 사장으로 고용돼 일하던 대학 친구놈 하나가 명절마다 집으로 계속 선물을 보내길래 나도 곶감이라도 보내줘얄 것 같아 늘 전화 대신받던 직원에게 그놈 주소를 물어 봤더니 마침 사는 곳이 그 아파트라고 했다. 나중에 만나 들어보니 첨 준공해 임대주택일 때 입주해 들어갔는데 몇년후 분양할 땐 업자가 가격을 훨씬 올려 살던 집을 비워주고 면적을 줄여 더 작은 집을 사 그 안에서 옮겼다고 했다. 경사가 그래 살기 힘들지 않냐 물어 봤더니 그래서 지 이웃은 집에 스쿠터를 한대 두고 타고 다닌다고 했다. 어이없어 마주보고 웃었다. 역시 5,6년전 얘기다.

당시에 그 언덕 아파트 밑 한남대교 넘어가는 고가도로 건너편 더 낮은 입지에 또다른 저층 아파트가 지어지고 있었는데 하루종일 차들로 막혀 있는 그 고가도로에서 배출되는 매연이 어디로 흘러 들어갈지 뻔해 부동산 업자들의 잇단 권유에도 아예 현장엔 가보지도 않았다. 아파트 부지는 도로보다 낮은 곳에 있었지만 주변 지대는 예를 들자면 리움이나 이태원 방향 쪽 뒷편은 오르막이 심해 나같이 매일 뜀뛰고 자전거 타야 하는 사람은 살수 없는 동네였다. 차를 타고 다니면 되는거 아니냐고 말할 사람이 있다면 차를 매일 안타본 사람일 거다. 비오면 물이 폭포처럼 샌다던 그 아파트도 최근엔 최고가 거래가 성사되었다느니 하는 기사가 나오기도 했다.

몇주전에 세계적 아이돌 그룹의 아티스트 한명이 그 동네에서 술마시고 전기 스쿠터 타고 귀가하다 적발돼 문제가 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렸다. 하필 차도 아니고 스쿠터를 타고 돌아다니다 걸렸냐고 누가 말하기에 스쿠터가 꼭 필요한 동네란 그놈 말이 문득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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